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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1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11 조회수558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 32주간 화요일, (백)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요즘 정부 여당에서는 지방소비세와 지방 소득세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특정 부자들을 위한 종부세 경감이나 폐지로 인한 지방 재정의 부족분을 충당하려는 것으로 종부세는 세목만 국세이고 100% 지방자치단체에 교부금으로 지원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금에 대한 논리를 개발하지 못하여 지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수도권과 지방 격차가 너무 크므로 "공동세를 도입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이럴 경우에는 "왜 특정 지방자치단체에서 걷은 세금을 다른 단체로 주느냐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으며

"지방소비세. 소득세를 도입한다고 해도 세금을 올리는 게 아니고, 기존 세금을 지방소비세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부연설명하고 있으나 세금을 더 징수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골치 아프게 세금을 신설하지 말고 종부세 경감이나 폐지로 인한 지방재정 부족분만큼 국가 재정에서 지방자치단체에 교부금을 더 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를 왜 새로운 세금을 신설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일부 부자들을 위해 종부세를 경감또는 폐지하고 그 부족분만큼 일반 국민들이 세금을 더 부담하라는 것입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7-10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 어떤 보상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할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복 받고 악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징벌을 내려 주신다면 악한 짓을 하라고 해도 악한 짓을 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복 받고 징벌을 받는 경우를 조합하면 네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네 가지 경우는 선하고 잘사는 사람, 선하지만 못사는 사람, 악하지만 잘사는 사람, 악하고 못사는 사람입니다. 잘살고 못사는 기준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없지만 세속적 기준으로만 생각한다면 자신과 가족의 부, 명예. 건강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 네 가지의 경우의 수는 거의 비슷한 비율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선하고 잘사는 사람들과 악하고 못사는 사람들만을 특별히 부각시켜서 사필귀정이라 하고 또는 뿌린 데로 거둔다는 말로 자주 애용하고 있으며 예수님은 이를 선인선과와 독수독과로 말씀하였습니다.

이와 반대의 경우로 선하지만 못사는 경우와 악하지만 잘사는 사람들은 달리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사실 이를 마땅히 설명할 길이 없으므로 도덕과 종교는 갈수록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인류가 생각해 낸 것은 잘살고 못사는 기준은 과연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고, 그 기준을 가지고 설왕설래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하나는 현재의 개념을 내세까지 더 확장하고 있습니다.

성현들은 행복과 불행의 기준을 일반인들과 다른 관점에서, 종교는 내세의 관점에서 이를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현들의 가르침은 우리가 그렇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대부분 그 당위성은 인정하고 있지만 종교적 내세관은 이를 실제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의문입니다. 이런 종교적 내세관은 인간의 이성이 발전함에 따라 그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정안수를 떠놓고 천지신명님과 조상님에게 새벽마다 빌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민족은 비나이다!가 몸에 벤 민족이어서 아마 우리나라처럼 매일 새벽미사를 하는 나라가 또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땅의 우리 그리스도교는 믿나이다! 보다는 비나이다!가 더 정확할 것입니다. 지금은 천지신명의 자리에 하느님과 예수님이 계시며 정안수를 지금 교회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종교도 내세관의 관점과 기복에서 벗어나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신 오늘 말씀을 거울삼아서 도덕률과 현실 문제를 더 중시하는 종교로 변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하며 오늘 묵상을 시작합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종은 제자들이 확실하지만 주인은 하느님인지 아니면 민중들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누가 더 높으냐? 식탁에 앉은 이냐, 아니면 시중들며 섬기는 이냐?  식탁에 앉은 이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22, 26-27) 하신 말씀으로 주인은 민중들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 주인을 하느님으로 생각한다면 정승집 하인도 밖에 나오면 정승 노릇을 하므로 요즘 일부 못된 제자들은 하느님의 뜻이라며 하느님처럼 민중들에게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천대받고 병들고 배고프고 추위에 떨며 오갈 곳 없는 가장 비천한 사람들을 하느님처럼 섬겼을 것입니다.

모두가 이렇게 서로 가장 낮은 사람이 되어 섬기려 한다면 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 까요? 인간의 지능은 상상을 초월하므로 쉽게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우스개 얘기가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서로 자전거를 바꿔 달라 하였으나 아버지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꾀를 내었습니다. 자전거를 지금은 1대 밖에 살 돈이 없으므로 너희들 자전거 중에 더 헌 자전거를 바꿔 줄 테니 여기서 저기까지 경주를 하여 늦게 들어오는 자전거를 새 자전거로 바꿔 준다 하였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자전거 경주가 성사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자전거 경주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혼신의 힘을 다한 이유는 아이들이 서로 자전거를 바꿔 타고 경주를 하였습니다. 그 아버지보다 더 영리한 아들들입니다.

모두가 서로 낮은 사람이 되어 섬기려 한다면 아마 물과 같을 것입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것으로 흘러가 수평이 될 때까지 계속하여 흘러갑니다.
예수님이 늘 낮은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 이유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上下高低가 없는 세상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일 것입니다.

혹자는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다고 말 할 것이나 계곡은 죽지 않고 물을 끊임없이 흘러 보내고 있듯이(谷神不死)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음으로서 그 흐름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하느님의 종이 되고 싶습니다. 아니 차라리 하느님이 안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거룩한 분도 하느님이시며 가장 비천한 분도 하느님이시기에 가장 비천한 분이 안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무수한 하느님을 만날 것이지만 그들이 하느님인줄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오늘도 아빠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언제나 종이 되어 섬기는 사람이 되라 하였습니다.
제가 섬겨야 할 분은 아빠 하느님으로 알고 있었으나
가장 비천한 사람들을 섬겨라 하셨으니 오늘 부터는 그분들을 아빠 하느님으로 알고 아빠 하느님처럼 섬기겠습니다.
오늘 이 마음이 변함이 없도록 언제나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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