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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2주(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08 조회수1,014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32주(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 로마에 있는 라테라노 대성전 ☆



☆ 라테라노 대성전의 내부 ☆



☆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

 

 

    요한 2,13-22/한 사람의 힘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결법에 따라 거룩한 돈인 옛 히브리 화폐로 성전세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환전이 필요했고, 이방인의 뜰’앞에서 바꾸어 주니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하지도 않았다.상인들 역시 멀리서 온 순례자들이 제물로 바칠 동물을 구하는 수고를 덜어주었다. 성전의 고상한 사제단 이나 상인들이나 순례자 모두에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예수께서 상인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의 탁자를 엎어버리셨 다고 해서 그런 일이 없어졌을까? 이 일은 일종의 해프닝 으로 끝나고,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행실을 고치지않았다. 결국 로마의 침공으로 성전이 없어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예수께서는 성전을‘내 아버지의 집'으로 여기셨기 때문에 그대로 놓아둘 수 없으셨다.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것을 되돌려 놓으셔야 했다. 그러나 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것이었다.결국 이 일로 제거된 것은 성전 상인들이 아니라 예수님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셀 수 없이 많은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과 성전이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그분 혼자서 시작하신 일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영화 <파워 오브 원>에서도 그랬듯이, 세상을 바꾸어 놓는 일은 늘 한 사람으로 시작된다. 예수님은 당신 몸을 성전에 비유하신다. 우리의 몸도 하느님 의 성령을 모시는 성전이라면, 이 속에 은근슬쩍 잡상인들이 끼어 들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것들을 몰아내는 일 역시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하고 슬그머니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한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 김광태 신부 ◇ ............ † ........... † ........... <요한과 함께하는 묵상> † 기도 없는 성전은 건물에 불과하다. 오늘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로마교구의 주교좌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기념한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324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274-337) 황제가 세웠고, 실베스터 1세 교황(314-335)이 축성하여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주교좌성당으로 삼았다. 대성전에 인접한 라테라노 궁전에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약 1,000년 동안 역대 교황들이 거주하였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그 후 ‘전 세계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머리’ 라는 명칭으로 베드로좌에 대한 전 세계 교회의 존경과 일치의 표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12세기부터는 세례자 요한의 대성전 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후 수세기를 걸쳐 화재, 지진, 약탈로 말미암아 훼손된 부분을 복구하였고,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이 대대적으로 증축하여 ‘가장 거룩한 구세주 예수’께 성전을 봉헌하고, 11월 9일을 봉헌 축일로 확정하였다. 오늘날 교황은 성목요일 주님 만찬미사를 이 곳 대성전에서 집전한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에 뒤지지 않을 만큼 웅장한 성전이다. 우리가 오늘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지낸다고 해서 대성전의 건축물을 놓고 기념하거나 축하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주교좌성당을 중심으로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믿음과 사랑의 일치를 기원하고 기념하는 축일이다. 오늘은 곧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 신비체요, 신앙의 공동체 인 우리 전체교회 및 개별교회의 축일인 셈이다. 이 축일에 우리 는 예수님의 예루살렘성전 정화에 관한 복음을 듣게 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성전 정화는 네 복음서 모두가 전하고 있는 사건이다.(마태 21,12-13; 마르 11,15-18; 루가 19,45-46; 요한 2,13-22) 그런데 공관복음서들이 이를 예수님의 공생활 말기에 있었던 사건으로 전하고 있는 데 비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 생활 시작에 두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수님의 성전정화사건 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발생했던 간에 그 내용은 같다. 요한복음사가는 이 사건을 예수님의 공생활 서두에 둠으로써 성전정화의 의미가 공생활 시작과 큰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예수께서 의로(義怒)와 열정으로 정화하시는 예루살렘성전은 이스 라엘의 종교와 삶의 모든 것이었다. 그 안에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의 궤가 모셔져 있었고 이는 야훼 하느님의 현존과 그 들의 선민(選民)과 구원(救援)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성전의 참된 상징은 장사꾼들의 지나친 상혼(商魂)에 가려있었고, 그 뒤엔 제사장들의 권력과의 결탁이 있었으리라. 이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한 사역(使役)의 시작에서 예수님은 빗자루를 손에 들었다. 이는 유대교를 말끔히 청소하기 위함이다. 구약(舊約)을 폐기하고 신약(新約)을 세우시기 위함이다. 무슨 권한으로 정화행위를 하느냐(18절)는 유다인들의 비난에 맞서, 예수님 스스로가 ‘새로운 성전’임을 암시한다.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세우시기 위하여 이제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것이다.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 스스로가 새로운 성전이 되신다는 것은 유다인들은 물론이고, 제자들까지도 나중에 가서 야 알게 된다. 신약의 참된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바치는 건물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몸이다. 신약의 성전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 자신들 의 몸이다. 물론 신앙의 공동체가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며 성체성사를 거행하기 위하여 함께 모이는 성당 또한 하느님의 성 전이다. 성전은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고,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 하는 곳이다. 성전은 무엇보다 기도하는 곳이다. 기도가 없는 성당은 성전이기 보다 하나의 건물이 되고 만다. 예수께서 아버지께 드렸던 기도, 예수님의 세상에 대한 열정으로 선포하셨던 말씀과 성사, 이것이 없는 성당은 하나의 건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목자들은 물론 신자들도 예수님처럼 자주 손에 빗자루를 들고 우리의 성전 과 마음의 성전을 정화하여야 한다........◆ ◇ 박상대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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