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02 조회수883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11월 2일 위령의 날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Mt.11.28)
 
 
제1독서 욥기 19,1.23-27ㄴ
제2독서 로마서 5,5-11
복음 마태 5,1-12ㄴ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차가움을 느끼는 계절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갑곶성지에 있을 때가 문득 떠올려지네요. 이 맘 때 갑곶성지에서의 아침은 무척이나 바빴습니다. 왜냐하면 아침에 일어나면 성지 마당을 가득 메운 낙엽들을 쓸어야 하거든요. 힘들게 낙엽을 쓸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마당을 쓸기 전에 나무를 흔들어서 나뭇잎을 떨어뜨리면 어떨까? 그러면 낙엽 쓸 일이 없을 거야.”

나무를 힘차게 흔들기 시작했지요. 정말로 많은 낙엽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일에는 낙엽 쓸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저는 어제만큼이나 많이 떨어져 있는 낙엽을 보고서는 할 말을 잊었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지요. 나무를 흔들어서 나뭇잎을 떨어뜨려도, 내일이면 나뭇잎이 바람에 의해서 또 떨어진다는 것을 말이지요. 이처럼 세상에는 미리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으므로 성실하게 이 순간을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자세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일 일을 걱정하기보다는 오늘을 잘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현재보다는 내일 일을 걱정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할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지요. 그리고 그분들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인지, 정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단순히 미래를 걱정하는 것으로 그칠 때가 많습니다. 오늘을 잘 보내는 것이 바로 죽음을 가장 잘 준비하는 것인데, 또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가장 큰 준비인데 걱정만을 하면서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소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가난에 지친 청년이 본당의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신부님, 정말로 힘들어 죽겠습니다. 제가 언제쯤이나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라고 묻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자기를 점쟁이처럼 보는 청년의 말에 어이없어 하기도 했지만 얼마나 힘들면 이런 질문을 던질까 싶었지요. 그리고는 “자네... 지금도 부자인데?”라고 말씀하십니다. 청년은 기가 막혀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지자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세요.

“자네 눈은 세상을 볼 수 있고, 수많은 책을 볼 수 있는 재산이지. 두 손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재산이야. 두 다리로는 이 세상의 가고 싶은 곳을 다 갈 수 있으니 재산이라 할 수 있어. 게다가 머리와 영혼도 잘 활용하면 큰 재산이 될 거네.”

사람들은 몸에 지닌 것이 모두 재산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몸 밖의 것들을 구하느라 전전긍긍하다 청춘과 건강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미리 많은 재산을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즉, 지금이라는 시간에 보다 더 충실할 수 있는 능력과 재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위령의 날인 오늘,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동시에 우리들의 모습도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그 많은 재산들을 잘 관리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눈으로는 타인의 장점을 보고, 입으로는 타인을 격려하고 칭찬하고, 두 손으로는 남을 위해 봉사하고, 귀로는 좋은 의견들을 듣도록 합시다.




깨어짐의 법칙(‘좋은 생각’ 중에서)

아주 노련하고 존경받는 수도사가 젊은 수도사의 교육을 맡게 되었습니다.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수도사는 교만했지요. 늙은 수도사는 고심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 수도사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교만함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늙은 수도사는 딱딱하게 굳은 흙을 만지면서 젊은 수도사에게 “여기에 물을 좀 붓게.”라고 말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젊은 수도사는 물을 가져와 부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흙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옆으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러자 늙은 수도사는 말없이 망치를 집어 들더니 딱딱한 흙덩이를 잘게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이 흙은 너무 딱딱해서 물을 흡수하지 못한다네. 그래서 이렇게 깨 줘야 하지.”

그런 뒤 젊은 수도사에게 다시 물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젊은 수도사가 물을 붓자 부드러워진 흙 속으로 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늙은 수도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여기에다 씨를 뿌리면 틀림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걸세. 딱딱한 흙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네. 씨를 뿌려도 곧 죽고 말지. 사람도 이와 같다네. 교만한 마음에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어. 내가 깨어지고 부서지지 않으면 그곳에 아무것도 담을 수 없지. 수도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깨어짐의 법칙이라고 말한다네.”

그제야 젊은 수도사는 늙은 스승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자신의 교만함을 뉘우쳤습니다.
 


 

 Variations of kanon
 
 Whitney Houston - I believe in you and me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