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기도와 삶의 관계 [예수의 데레사] / 깨어 기도하라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4 조회수646 추천수3 반대(0) 신고

<사진은 중세의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아빌라의 시 전경>

'완덕의 길' , '영혼의 성' 등의 저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관상기도의 권위자인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세상의 어느 사건이나 상황, 그 무엇에도 마음을 빼앗겨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신뢰하며 의탁하도록 가르쳤다. 성녀께서는 세상의 풍랑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는 것임을 일깨워 주었다. 살아가다 보면 낙심하거나 고심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가장 분명한 사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교훈이다. 기도할 때 우리 '내면의 성' (영혼의 성)에 하느님께서 머무시어 하나가 된다. 하느님의 현존과 일치는 당신의 사랑을 수취(실천)하게 하며 온종일 주님과 대화를 나누게 해 준다.

....................................................................................................................................... 


<기도의 깊이>는 기도자의 삶에 의해 조절된다. 물론 그 반대로 기도에 의해 기도자의 <삶의 깊이>가 드러난다. 기도와 행동은 늘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인간이 친구가 되어 서로 우정을 나누는 “상호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알고 있는 그분과 나누는 우정이라고 하면서 신비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몇 가지를 항상 전제하고 있다.

하나는 상호 관계에서 인간의 입장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새롭게 하느님의 행위를 준비한다. 그러나 두 번째 시기에서 입장이란 하느님의 행위와 현존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우정을 나누는 것으로 이해된 <기도란 실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삶의 형태>라는 것이다.

기도와 삶이 퇴보하거나 고착된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사랑이란 같은 상태에 있으면서 만족할 수 없다.” ( 영혼의 성, 7궁방, 4,9 ) 그리고 “사랑은 절대로 게으르지 않다.” ( 영혼의 성, 5궁방, 5,10 ) 바로 여기에서 “기도의 단계”가 마치 우정의 정도와 삶의 수준처럼 드러나는 것이다. 기도에 대한 이런 특별한 개념과 더불어 양극화된 관계로 기도가 이해되었다면 그것은 바로 수덕적 행위와 신비적 행위로 이해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항상 인간에 의존해서 하는 수덕적 기도는 물론이요 동시에 거룩한 친구( 하느님 )께서 시작하시는 것에서 파생되는 신비적 기도의 높은 단계들로 기도의 단계를 구분한다. 성녀 데레사가 말하는 기도의 단계들은 여러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은총을 받는 영혼에 관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의 샘물을 위로부터 눈처럼 소나기처럼 쏟아 부어 주시는데 과연 우리는 우물에서 물을 마셔야 할 것인가? 또한 하늘에서 우리에게 신화(神話)에 나오는 신들의 음식보다 훨씬 좋은 자양분을 끊임없이 내려부어 주시는데 우리는 어찌하여 땅 밑에 흐르는 빈약한 샘을 찾아 헤매고, 사람이 고안하여 저장한 물을 밧줄로 길어 올려야 하며, 만유의 구세주께서 하늘나라의 보물을 우리가 쓰고 즐길 수 있도록 활짝 열어주셨는데도 참다운 희망이 부족한 탓으로 … 아니다. 하느님께서 황홀감을 불러일으키는 음료를 애초에 진한 그대로 묽게 하지 않은 채 흠뻑 부어주시니 축복이 그같이 쏟아 부어지는 자라면 우물에서 길어서 마시지는 아니할 것이다.” / 하느님의 불변성.

성녀의 글에서 '정원'은 영혼을 말하며, '정원의 주인'은 주님을 뜻하고, '물을 주는 것'은 기도를 뜻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물을 줄 수 있듯이 기도의 방법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첫째 단계는 밭을 가꾸는 사람 자신( 기도하는 사람 )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나머지 둘째, 셋째, 넷째 방법들은 밭의 최고 주인이신 주님의 신비스러운 개입에 달려있다. 물론 중요한 것은 뒷부분의 세 단계들이다.

첫째 단계는 수덕적 기도에 관한 부분이다 : 이 부분은 주님의 말씀이나 혹은 주님의 신비스러운 생애에 대한 단순한 묵상을 말할 수 있다. 묵상기도에서 큰일을 이루어보겠다고 떨치고 일어나는 것, 즉 높이 오르기를 시도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하면서 묵상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이 첫 단계에서는 사랑스럽고 침묵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견디신 고통, 그 고통을 참으신 이유, 고통 받는 분이 어떤 분이며, 어떤 사랑으로써 괴로워하시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이요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며, 우리는 그분의 벗이 되어 있음을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둘째 단계는 고요의 기도, 혹은 신비적 기도라고 불리며 : 돌발적으로 황홀함에 끌려들어가는 순간을 말한다. 이 순간을 표현하는 용어인 “고요의 기도”라는 말은 “주님께서 영혼 안에 불붙이시는 참사랑의 작은 불꽃”을 말하는 데 아마도 예수의 데레사 성녀만 사용했던 표현일 것이다. 이 단계는 거룩한 신비로 말미암아 놀란 의지가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고 수동적인 쉼( 홀로 있고 싶어짐 )에 들어간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분의 포로가 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감관의 온갖 능력을 자기 안으로 집중시키는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 때에 하느님께서는 영혼에게 당신을 주시며 그와 사귀기 시작하시고 영혼은 이런 사귐을 느끼도록 더욱 더 간절히 바라면서 이 상태에 이르기 시작하자마자 영혼은 세상의 사물에 대해 욕망을 잃기 시작한다.

셋째 단계는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 채워지면서 : 오관의 능력들은 잠이 들고 힘찬 기도의 다양한 모습들이 드러나는 순간을 말한다. 이 때에 영혼은 은총의 물에 너무 흠뻑 젖어 있어서 어떻게 된 셈인지도 모르는 채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면서 다만 주님의 위대함을 즐기고 싶을 따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성녀는 여기에서 영혼은 참다운 지혜를 터득하게 되고 엄청난 즐거움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넷째 단계는 거룩한 일치의 순간을 말하는 것으로 : 정신의 모든 행위들이 주님의 뜻에 일치하고, 자신 안에서 말씀하시는 거룩한 분과 일치하는 영적 상승의 상황과 체험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순간에 영혼이 경험하는 일은 분명치 않아서 뚜렷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는 것을 본다는 것과 이 은총의 확실성이 영혼 안에 사랑의 상처가 되어 너무나도 깊게 남기 때문에 영혼이 그것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을 품을 수가 없다고 한다.

<출처 : 방효익 신부님 글 참조>


 ....................................................................................................................................... 

 

<예> 3일 전의 일이다. / 우연하게 금 팔찌를 주었다. 마음 속에는 '도둑질 처럼 몰래 가지면 안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벌을 주신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금 팔찌를 주인을 찾아 돌려 주었다. 30만원 짜리라고 했으니 지금 금값으로 따지면 무척 큰 돈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고 나서도 영혼은 왠지 기쁘지 않았다. 늘 가는 나의 기도 장소로 발길이 옮겨갔다. 아무 생각도 없는 빈 상태에서 주님만이 내 곁에 계셨다. '너는 나를 먼저 사랑했느냐, 어떻게 했느냐' 하는 내면의 말씀과 함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계명과 벌' 때문에 그 일을 해서 기쁘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고 곧이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회개하였다. 주님을 사랑하는 열망이 가득하지 못했음을 깨닫고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ㅡ 주님, 제게 늘 머물러 주십시오' 하며 청원 드렸다. 이것은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킬 때에 비로소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자는 거짓말쟁이이고 진리를 저버리는 자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느님의 말씀(게시자 : 성경)을 지키면 그 사람은 진실로 하느님을 완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 요한 2, 3 - 5> "누구든지 하느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자기 안에 하느님의 본성(게시자 : 사랑)을 지녔으므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께로부터 난 사람이기 때문에 도대체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1 요한 3, 9>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