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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20 조회수536 추천수3 반대(0) 신고

 

한상기님의 오늘의 묵상 오늘의 묵상입니다. 요즘은 뉴스를 접하기도 겁이 납니다. 정부 당국자는 세계 금융공황의 공포에서 우리나라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으나 어제 보도된 고강도 금융정책 대책 안을 보면 향후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차입하는 외환채무에 대하여는 1000억불 까지는 국가가 지급 보증을 한다고 합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십 년 전 IMF구제 금융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이번에도 정부가 지급보증을 할 만큼 금융기관이 당시처럼 위기상황에 처한 것인지 아닌가하여 불안하기만 합니다. 쌀 직불금 부당 수령사건으로 농민들의 분노는 들끓고 있음에도 정치권은 책임 공방만 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분노는 어느 정부의 책임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도덕한 고위공무원 등 사회 지도층의 도덕 불감증에 대한 분노임을 그들만 모르는 것 같습니다.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21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말씀을 공부하며 의문으로 남겨둔 성구중의 하나였습니다. 오늘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재산상속의 중재를 요청한 경우처럼 저는 이런 경우를 가끔 접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쟁을 예수님은 어떠한 현명한 답을 내려 주실지, 사실 이에 대하여 기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답변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분쟁을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하시며 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신 말씀은 재물을 멀리하라는 가르침이 전부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사적인 청을 들어 주시고 해결해 주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님을 말씀하셨기에 개인의 기복을 바라는 기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님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더욱 확실하게 확인 하였기에 제 신앙생활의 큰 방향을 알려주신 말씀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묵상은 재물을 멀리하라는 관점에서 묵상하여야 하나 재물에 관한 말씀은 너무나 많은 말씀이 계시므로 이에 대한 묵상은 앞으로도 많은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여 오늘 묵상은 재산분쟁의 중재 요청과 예수님의 답변에 대하여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 재산분쟁에 관한 예수님 답변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 수 있었던 계기는 1945년 이집트 나지 함마드에서 발견된 도마 복음을 통해서 였습니다. 신약 27권 정경화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므로 많은 곡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397년 3차 칼타고 회의에서 신약 27권 정경목록에서 제외된 성경들은 교회에서 사용할 수 없음을 공식 선포하였으므로 정경화 과정에서 정경으로 채택되지 못한 성경들은 모두 폐기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정경이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는 모두가 성경였으므로 그동안 성스럽게 취급하였던 성경을 폐기하는 것은 일부에서 반발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때 항아리에 담아 동굴 속에 숨겨둔 당시의 성경과 많은 문서들이 1,400 여년이 지나서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문서는 예수님의 말씀만을 기록한 도마 복음이며 지금의 4복음서와 동일한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일부 성서학자들은 당시를 알 수 있는 귀한 문서로 그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외경으로 취급하고 있으므로 도마 복음의 구절을 언급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도마 복음에 오늘 복음처럼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공정한 재산상속을 형제들에게 말씀해 달라는 요청과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있으며 그 답변을 통해서 오늘 묵상을 보다 유익하게 풀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2> A [person said] to him, "Tell my brothers to divide my father"s possessions with me."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나의 형제들에게 말씀하시어 내 아버지의 재산을 나와 나누도록 해주소서." He said to the person, "Mister, who made me a divider?" 그 사람에게 이르시길, "그대여, 누가 나를 나누는 자로 만들었는가?" He turned to his disciples and said to them, "I"m not a divider, am I?" 제자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길, "나는 나누는 자가 아니도다. 그러한가?" 예수님은 나누어 지는 것을 반대하였으며 모든 것이 하나 됨을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였음을 엿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쟁의 원인은 '내 것 네 것' 이렇게 구분하려는데, 또 배분의 불공평에서 기인되고 있습니다. 사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런 뜻을 받들어 공동체 생활을 하였으며 이런 초기 공동체의 모습이 바로 교회의 원형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분배의 불공정은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그 해결 방법은 나눔을 실천하는 길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실천하는 길 만이 온 인류가 구원받는 길이며 이를 실천하는 것이 그 어떤 행위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길 임을 오늘도 명심하고 있습니다. 하여 오늘은 나눔을 통하여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위 도마 복음에서 예수님은 재물을 나누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눔도 나눔 나름이므로 여기서 나눔의 의미는 집안이 불화로 분열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묵상하고 있으며, 나눔을 실천하지 못하여 하나되지 못하고 형제간에 분열된 모습을 알려 주시는 말씀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나눔을 실천하지 않으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하여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음은 오늘 복음의 어떤 사람의 형제간 다툼을 통해 이를 저희에게 알려 주시고 계십니다. 나눔을 통하여 하나가 되지 못하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은 평화가 깃들 수 없음을 우리 모두가 이를 깨달아 이 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복된 지혜의 말씀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우리는 잘못된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정당한 우리의 주장을 해야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분열만큼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분열의 뼈아픈 역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종교 개혁에 따른 교회의 분열, 종교 개혁은 당시의 시대적 요구였지만 교회의 분열만큼은 결코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분열하자고 개혁한 것이 아니라면 당초의 목적에서 벗어난 개혁이므로 잘못된 결과를 가져 올 수 밖에 없습니다. 현 우리 사회도 숱한 개혁논쟁이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사회적 분열만큼은 막아야 하나 지지층의 결집을 통하여 오히려 사회적 통합을 반대하는 그런 모습에 양식있는 대다수 국민들은 이에 실망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조국으로 통일되지 못하여 지금도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작금의 이 땅의 아픔도 서럽기만 합니다. 거기서 또다시 동서로, 이념같지도 않은 이념으로 대립한다면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 그토록 바라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대가를 또 치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대가를 지난 세월 무수한 피로 그 대가를 치뤘지만 지금도 계속하여 치루고 있고 또 얼마나 많은 대가를 우리 후손들이 치뤄야 할 지는 오직 아빠 하느님 한 분만 알고 계십니다. 이런 전철을 또다시 밟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주님의 참된 가르침으로 다스려 져야 함을,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늘 묵상하며 공통적으로 느끼는 아쉬운 점은 하루를 시작하며 주어진 짧은 시간내에서 묵상하고 이를 정리하다보니 뒤늦게 다시 읽어보면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음을 발견하여 늘 부끄러운 글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처럼 묵상을 하였지만 오늘 묵상은 오늘의 묵상이며, 오늘 말씀을 내일 다시 묵상한다면 오늘의 의미와 또 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주실 것입니다. 같은 말씀도 늘 새로움을 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감사하며 주님의 말씀을 양식삼아 새로운 한 주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아빠 하느님! 저희 모두가 사랑을 실천하는 증표로 나눔을 실천하는 예수님의 따르미가 될수록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이 땅에 영원한 평화가 깃들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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