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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명이다 내가 살기 위해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9 조회수567 추천수3 반대(0) 신고
 
 
 
 
무협지 줄거리는 거의 비슷하다.
주인공은 대단한 무공을 타고난 사람인데
아직 자기 재능을 발견하지 못해 흙 속에 묻힌 진주처럼 지낸다.
그러다가 괴상한 도사가 나타나서
주인공이 지닌 엄청난 내공과 내력을 발견하고 무술을 전수해준다.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무림의 평화를 이룩하는 진정한 고수가 된다.

그 과정 중에 꼭 나타나는 내용이 하나 둘 있다.
예컨대, 주인공이 완전히 회생불능의 상태에 빠졌다가
기이한 인연을 만나 그전보다는 비교가 안되는
엄청난 무림의 절대고수로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그런 절대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당대 최고의 스승을 만나야 하거나,
천년 만년에 한 번 생기는 귀한 신약을 복용해야 하는데
그런 스승이나 신약은 언제나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절해고도(絶海孤島)의 높은 산중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곳에 들어가서 살아나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그런 식이다.

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해서도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해야 하는데,
하물며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파자가 되려면 얼마나 엄청난 내공을 쌓아야 할까?

그러나 오늘 예수님이 하늘로 오르기전에 마지막으로 사명을 주신 산은 동네 산이다.
쉬엄 쉬엄 걸어도 한 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그런 산이다.
이스라엘에는 높은 산이 없다. 대부분 낮은 산들이다. 갈릴래아에 있는 산도 그런 산이다.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산으로 제자들을 부르신다.
무림고수처럼 험난한 산이 아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사명을 주기 위해 제자들을 불러모은 산은 그런 산이었다.

그리스도 신자가 되고 제자가 되는 일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다.
단지 의심만 버리면 된다.
제자들 중에도 “더러는 의심하였다.”

그 산 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절대절명의 사명을 주신다.
당신 생애를 마감하면서 주는 사명이니 이보다 더한 명령은 없는 것이다.
사람이 생을 마감하면서 당부하는 것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것은 선교였다.
우리 신자들이 받아들이기에 조금 김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뭐 그런 걸 가장 중요하다고 마지막 유언으로 주는가 싶을 것이다.
“너희는 내가 가르쳐 준 무공을 갈고 닦아서 천하를 호령하는 절대고수가 되도록 하여라.
피 나는 훈련을 한다면 가히 무림천왕이 될 것이다!”
머 이런 정도의 유언이 되어야 심각하게 받아들인텐데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라”하니 싱겁구만 할 사람도 있을 거 같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수님의 사명은 이 지상에 천국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이 인간이 되실 까닭이 없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하늘이 지상에 내려온 것이다.

그것은 하늘나라를 저 높은 곳에만 있게 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갈 수 있는 지상의 나라로 만들어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분이 제자들을 불러 모은 산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갈릴래아 산이었고,
그분이 다시 제자들을 불러모은 것도
오만한 유다인들이 이방인들의 도시라고 경멸하던 갈릴래아였다.

죄인들, 이방인들, 하느님과 동떨어진 낯선 곳,
신앙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그런 곳에서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살아가셨고
다시 부활하셔서 나타나신 곳도 갈릴래아였다.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하느님은 제일 먼저 찾아가시고 머무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세상 모든 사람을 당신 제자로 삼으라는
사명이 장엄하게 선포되었다!

우리는 어떤 대단한 장면이 연출되는 곳에서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여기며 성전을 꾸미고
촛불을 밝히고 온갖 거룩한 신심행위들로 하느님을 찬양한다고 하지만
정작 하느님은 가장 안 계실 것 같은 그런 곳에 계시다는 사실이
속은 것 같지만 한편으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정성을 들이고 노력한들
얼마나 그분 마음에 들겠는가 싶기 때문이다.
때로는 생활전체가 엉망이고 기도도 되지 않고
앞뒤가 꽉 막힌 느낌이 들 때,
그 때 하느님이 나와 가장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으라”고 하셨다.
자기 안에만 갇힌 사람이 되지 말고
모든 종류의 사람을 다 받아들이라는 말씀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부족해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변명할 생각은 말자.
최소한 한 사람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은가?
한 사람씩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까지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다.
임마누엘 하느님은 이렇게 태어나실때부터 승천하시고 세상 종말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선교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의 연장이다.
천국이 지상에 왔다는 것, 하느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
하느님이 가장 부족한 사람부터 찾아가신다는 사실을
세상 마지막날까지 연장시키는 것이 바로 선교다.

때문에, 선교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사실을 모두 되돌리는 것이다.
가장 부족할 것 같은 나를 먼저 찾아주신 예수님을 돌려보내고
그분이 인간이 되신 것을 없던 일로 하고
하늘나라가 땅에 내려온 것도 없던 걸로 하고
하느님과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다가 죽고
하느님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으로 결판내는 것이다.

선교는 명령이기 이전에 우리가 살기 위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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