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 나 하나가 전부이다.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4 조회수1,270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11월4일(목) -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 성 가롤로 보로메오 (1538-1584) 주교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신학생에게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하는 것은 성덕(聖德), 지덕(知德), 체덕(體德)의 세 가지 덕목이다. 이는 곧 3S, 거룩함(Sanctitas)과 학문(Scientia)과 건강(Sanitas)을 말한다. 모든 신학생들은 이를 연마하여 사제로 양성된다. 그러나 정작 사제가 되었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랑실천과 봉사를 의미하는 애덕(愛德)이다. 그런데 이런 덕목들을 배우는 과정의 신학교를 거치지 않고 외삼촌 백(bag)으로 먼저 추기경이 되었다가, 나중에 사제가, 그리고 밀라노의 대주교로 승품된 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가롤로 보로메오 성인이다. 그러나 가롤로 성인은 사제양성과정을 마친 어느 누구보다 이를 다 갖춘 사제였다.


  가롤로 보로메오는 1538년 롬바르디아의 아로나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비아에서 민법과 교회법 학위를 받은 가롤로는 1559년 교황 비오 4세로 선출된 외삼촌에 의해 21살의 나이로 부제 추기경에 임명되어 밀라노 대교구의 행정관으로 일하게 된다. 뛰어난 지식수준을 인정받은 그는 바티칸과 관련된 중요 임무를 맡게 되었고, 나중에는 교황령의 행정을 전담하는 국무성 장관에 임명된다. 갑작스런 형의 죽음으로 부모 친지들로부터 결혼을 강요받았으나, 1563년 사제서품과 주교서품을 잇따라 받고 밀라노의 주교가 된다. 그러나 가롤로 주교는 밀라노의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다. 그것은 교회의 내적 쇄신에 대한 그의 불타는 열정 때문이었다. 1530년 종교개혁이후 교회는 안팎으로 피폐해 있었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1545년에 개최된 트리엔트공의회도 1549년에 중단되었고, 1551년에 재개하였다가 다시 1552년에 중단된 채 속수무책이었다. 교회역사 속에 하나의 공의회가 이렇게 오랜 세월을 두고 여러 차례 중단된 것을 보면 당시 교회의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다. 1562년 1월에 이 공의회를 재개하여 1963년 3월에 종결하는데 성인의 역할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여러 번 무산될 위기의 공의회를 지속시키고, 마지막 단계의 모든 업무를 도맡아 주도했던 성인은 폐회 후에도 교황 옆에서 공의회의 정신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다. 1566년 비로소 밀라노 대교구의 주교로 그의 모든 시간을 바치는 것이 허용되었다.


  가롤로 대주교는 기도하고 일하면서 공의회의 정신과 결의를 신앙생활의 모든 면에 적용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는 교회 안의 나쁜 관습을 과감히 폐기하고, 교구시노드 개최, 신학교 설립, 소속교회 방문 등을 통해 성직자, 수도자, 사목자들의 우선적인 회개와 쇄신을 강조하였다. 특히 병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애덕실천은 끝이 없었다. 성인은 스스로 좋은 표양을 보이는데 앞장섰으며, 수입의 대부분을 자선 사업에 충당했고, 모든 사치를 피하며 자신에 대해 엄한 보속을 했다. 그는 자신의 부귀와 명예, 존경과 영향력을 희생한 성인이었다. 1576년 전 유럽을 휩쓴 페스트 속에서 도시의 관리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성인은 홀로 남아 빚까지 내어 매일 수만 명의 환자들을 돌보고 먹여 살리려고 애썼다. 성인은 1584년 몬테 바랄로에서 가진 피정에서 밀라노로 돌아온 직후 4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결코 체덕이 모자라 허약한 성인이 아니었던 가롤로 주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애덕실천에 바쳤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에 바친 것이다.◆


[오늘의 복음]  루가 15,1-10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2)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누가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 마리를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아흔 아홉 마리는 들판에 그대로 둔 채 잃은 양을 찾아 헤매지 않겠느냐? 5) 그러다가 찾게 되면 기뻐서 양을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자, 같이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양을 찾았습니다.’ 하며 좋아할 것이다. 7) 잘 들어 두어라. 이와 같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여자에게 은전 열 닢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닢을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여자는 등불을 켜고 집안을 온통 쓸며 그 돈을 찾기까지 샅샅이 다 뒤져 볼 것이다. 9) 그러다가 돈을 찾게 되면 자기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같이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10) 잘 들어 두어라.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복음산책]  나 하나가 곧 전부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교회 전례력상 대림시기, 성탄시기, 연중시기(1), 사순시기, 부활시기, 연중시기(2)를 통틀어 평일미사의 복음은 매년 같은 복음이다. 그 중에서 연중시기를 살펴보면, 연중 제1주간 월요일부터 제9주간 토요일까지는 마르코복음(1,14-12,44)을, 연중 제10주간 월요일부터 제21주간 토요일까지 마태오복음(5,1-25,30)을, 연중 제22주간 월요일부터 교회 전례력의 마지막 날인 34주간 토요일까지 루가복음(4,16-21,36)을 매일미사의 복음으로 듣게 된다. 우리는 지난 연중 제22주간 월요일부터 계속해서 루가복음을 평일미사의 복음으로 봉독하고 묵상하여 왔다. 그 중에서 연중 26주간 월요일까지의 복음(4,16-9,50)은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에 관한 보도이고, 그 후부터는(9,5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상경하시는 도중의 활동에 관한 보도이다. 후자의 보도에서 우리가 받은 느낌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상당부분 대단히 무겁다는 것이었다.(9,51-14,35) 갈릴래아 주변도시들에 대한 불행선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 대한 불행선언, 반대자들의 모함, 바리사이들의 누룩에 대한 경고, 어리석은 부자의 예화, 재물에 대한 경고, 준비와 기다림, 회개와 속죄, 예루살렘에 대한 저주와 불행선언, 동행과 추종의 구별 및 엄한 예수추종의 조건 등이 바로 그랬다.


  오늘부터 봉독되는 루가복음 15장은 새로운 주제들로 전개된다. 루가복음사가의 고유한 하느님 자비와 사랑에 관한 것이다. 우선 예수님 말씀의 청자(聽者)로 세리와 죄인들이 거론된다.(1절) 예수님의 말씀을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듣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바리사이와 율사들에게는 모욕적인 일이었고, 예수에게 대한 비난의 빌미가 된다. 세리와 죄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당함과 어둠을 가까이 하고 지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외형상 죄인으로 낙인을 받았고 내적으로도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고 있기에, 어쩌면 하느님과 종교에 관한 생각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이 편한 자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에 비하여 바리사이와 율사들은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이고 종교 전문가들이며 직업적인 신심수행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외형상 의인으로 자부한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 즉 ‘잃어버린’ 사람들과 ‘선택받은’ 사람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온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한 사실은 같은 이유에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가 어려운 걸음으로 예수께 다가왔으나 내심(內心)은 전혀 다르다. 윤리적 병자들과 같은 세리와 죄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그들에게 의사(醫師)요 빛이다. 반면에 종교적 전문가요 의사(醫師)로 자처하는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는 자기들에게 비치는 빛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요 ‘돌팔이 의사’로 보이는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들 모두에게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신다. 잃은 양(4-7절), 잃은 은전(8-10절), 잃은 아들11-32절)에 관한 비유가 그것이다. 하느님은 잃은 것을 찾아 나서시는 분이며, 죄인들을 회개로 초대하시는 분이시다. 바리사이와 율사들에게는 스캔들이 될지는 몰라도 하늘에서는 죄인의 회개와 잃은 것의 되찾음이 기쁨의 큰 잔치를 베푸는 이유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잔칫상이 꽉 차기를 바라신다.(루가 14,23) 그러나 아직도 자리가 남아있다. 100마리의 양 중에 99마리가 왔다 해도, 은전 10개중에 9개가 있다 해도, 그 잃은 것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찾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과 자비를 통해 예수님 자신의 행동을 정당한 것으로 주장하실 뿐 아니라, 이참에 바리사이와 율사들의 그릇된 하느님 상을 고치자는 것이다.


  이 세상에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우리 자신 스스로가 잃은 양 한 마리이며, 잃은 은전 하나에 속한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그렇게 잃은 것에 속한다고 주저할 것이 아니라, 잃은 것을 향하여 다가오는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과 자비를 외면하지 않고 회개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100 중에 1개인 나 자신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다.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버리고, 바로 나 하나 때문에 세상 끝까지 찾아 나서시고, 찾을 때까지 하늘나라의 잔치를 미루고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나 하나의 회개를 하느님과 하늘의 천사들이 그렇게 기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나 하나가 하느님께는 곧 전부(全部)일 수 있기 때문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