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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복음 맛들이기 - 연중 제 29 주일, 전교주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9 조회수835 추천수9 반대(0) 신고

연중 제 29 주일 전교주일 - 삼종기도와 전교

 

우리가 매일 세 번씩 하는 삼종기도는 우리에게 선교의 핵심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천사 가브리엘은 성모님께 아들이 잉태되리라고 전해줍니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루카 1,31)

이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기쁨보다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당해야 할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루카 2,35)

성모님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기에 모든 고통을 달게 받겠다고 대답합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이 순종의 응답에 말씀이신 성자께서 세상에 내려오시게 됩니다.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선교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여서 그들이 하느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통해서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기를 원하셨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성모님의 ‘Yes!’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 ‘Yes!’는 세상에 하느님을 드러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는 ‘Yes!’입니다. 하느님은 성모님을 희생으로 초대하시고 성모님은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랬더니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어 아버지 하느님을 드러내셨고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성모님처럼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하며 매일 받아들이는 희생을 통하여 세상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고 많은 이들을 믿음으로 초대하십니다.

 

-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오니 성령으로 잉태하셨나이다 -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중매에서 만났을 때 아버지가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그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빚 많은 집이었고 집도 머리를 숙이고 들락날락 해야 하는 가난한 가정이었으면 한 명 있는 시누이는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다면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성당에 다니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어머니와 혼인하기를 원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혼인한다는 것은 불교집안에 들어와 시부모님을 모시며 많은 빚을 갚으며 살아야하는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였습니다. 옛날에는 가톨릭 집안에서 비신자 집으로 딸을 시집보내면 부모님도 영성체를 하지 못했다고 하니 친정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아버지와 혼인하셨습니다.

물론 시부모님과 시누이의 반대에 의해 성당은 다닐 수 없었고 가난의 쓰라림도 맛보아야 했습니다. 또 매일 매일 새롭게 닥치는 어려움은 당장 집을 뛰쳐나가고픈 마음까지 일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주님의 뜻이라 여기며 묵묵히 참고 또 참았습니다.

 

-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

 

할머니의 임종 직전에 할머니는 밭에서 일하고 계신 어머니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성당 다니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시며 앞으로는 성당 열심히 다니라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마리아란 본명을 주시고 대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들 셋을 성당에 내보냈고 그 중에 하나는 사제까지 되었습니다. 물론 아버지도 나중에 세례를 받으셨고 지금 열심히 성당에 다니고 계십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같은 마을 많은 가정도 천주교로 이끌었고 그 중에 같은 마을 살았던 두 명의 저의 친구도 사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당신이 겪어온 힘든 삶을 되새기시며 당신 스스로 자랑스럽고 잘 산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하느님은 먼저 십자가를 우리에게 제시하십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지고 갈 것인가 아니면 피해 갈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성모님처럼 그 십자가를 받아들인다면 나중에 하느님도 세상에 드러내고 많은 사람도 믿음으로 이끌며 자신도 부활의 여광을 얻게 됩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증거와 선교는 이 공식을 따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성령으로 잉태하셨나이다 -

 

저의 첫 기억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고 상여가 나가는 등의 것들입니다.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살자는 좌우명이 생겼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괜찮은 대학에 들어갔고 군대도 마치고 복학하기 전에 남은 대학 마칠 학비까지 다 벌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매번 더 크게 저에게 밀려왔습니다. 대학 나와 좋은 직장 취직하여 예쁜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과 오순도순 사는 것만 생각해오던 저에게 그런 모든 것들을 포기하라는 것은 너무 버거운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부르시고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저는 그 뜻을 거부하기로 하였습니다.

 

-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

 

그렇게 일 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면 가장 행복한 길로 부르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제로 살면 진정 행복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자 없이 혼자 사는 것은 참아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는데 어느 순간 여자 없이 혼자 사는 것을 매일의 십자가로 생각하며 산다면 참아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주님의 부르심에 항복했고 매일의 십자가를 지고 살기로 했습니다.

 

-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저희 가운데 계시도다 -

 

지금은 사제가 되었고 저를 통해 많은 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의 양식을 얻습니다.

제가 여자와 만날 때 느낀 것 하나는 한 남자로서 한 여자를 만족시켜주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말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지금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사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신학교 들어오면서부터 단 한 번도 이 선택에 대해 후회하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제의 삶을 계속 더 행복하고 만족하게 느끼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어머니의 희생을 통하여 저를 당신께로 불러주셨고 저는 매일 매일의 십자가를 통하여 많은 이들을 하느님께 부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시고 당신께로 사람들을 이끄십니다. 가장 먼저 십자가의 희생에 ‘Yes!’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의 모범이 바로 선교의 모범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매일 삼종기도를 바치며 되새깁니다.

 

오늘도 우리가 참아 받아야 할 무언가가 반드시 있습니다. 매일 지고가야 하는 각자의 십자가, 이것은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이제는 하느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좋은 일을 하시고자 하심을 깨닫고 “주님의 종이오니,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하며 기꺼이 희생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지녀보는 것은 어떨까요?

 

- 로마에서 공부하시는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묵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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