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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 15일 야곱의 우물- 루카 11, 42-46 묵상/ 누구를 위한 행동인가?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5 조회수573 추천수2 반대(0) 신고
누구를 위한 행동인가?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율법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카 11,42-­46)
 
 
 
 
◆예수님은 누구보다 약하고 작은 사람들, 고통 받으며 사는 불쌍한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그들에게 천국을 말하고 희망을 주셨습니다. 이 때문에 성경에서는 화두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고, 또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뜻에 따르면 교회는 당연히 약하고 작은 사람들, 고통을 안고 사는 불쌍한 사람들 중심의 체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인의 영적 구원과 교회체제 유지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웃 특히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행동하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교회는 대형화·물량화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무릇 대형화나 물량화의 그늘에서는 약하고 작은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의 소외가 더욱 심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된 교회 내의 담론 구조에서는 처지가 어려운 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또 이들에게는 교회가 대형화나 물량화하는 데 내놓을 물질이 없어 기여할 방도가 마땅치 않습니다.
 
결국 어렵게 살아가는 가운데 그나마 영적으로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고자 찾아갔던 교회이지만 죄송해서라도 멀리하게 되지요. 이들 중 일부는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반겨주는 사이비 종교 집단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신도시처럼 아파트 밀집 지역이라면 교회가 대형화되지 않을 수도 없지요. 그러니까 대형화나 물량화할수록 교회는 스스로 더 경계하고 더 자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영혼의 구원은 기적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들이 하루하루 사는 일도 그 못지않은 기적입니다. 이들에게 힘겨운 짐을 지워놓고 ‘주님’을 찾는다면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실까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고 하셨습니다.
김지영(한국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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