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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마다 십자가의 무게는 과연 어떻게 결정이 될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28 조회수1,388 추천수1 반대(0) 신고

 

이젠 부활을 하기 위해서 죽어야만 하는 시간이 눈앞에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차피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라면 죽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더 좋을 텐데 왜 굳이 죽는 과정을 거쳐서 다시 새롭게 부활해야만 하는 것일까? 여기서 죽음은 단순한 죽음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죽음 자체가 별 의미가 없는 죽음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 어쩌면 인간의 모든 죄가 소멸과 정화의 수단으로써 통로가 되는 길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음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장소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전에 이미 당신께서는 당신이 못 박히실 십자가를 당신 친히 짊어지셨습니다. 마지막 운명을 하시는 순간까지 십자가에 달려서 십자가와 혼연일체라도 되듯이 십자가가 당신을 품었는지 당신이 십자가를 품었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십자가를 하나의 운명처럼 함께하셨습니다.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최후의 순간을 십자가에서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운명을 같이 한 십자가를 일주일간 묵상했습니다. 이틀 전에는 몇 달 만에 가까운 산을 찾았습니다. 지금 거의 두 달에 걸쳐서 목디스크 치료를 받고 있어서 활동에 지장이 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집에서만 활동을 하고 외출을 자제합니다. 그렇다 보니 몸이 많이 둔해지는 느낌이라 간만에 등산을 했습니다. 등산을 하면서 지금이 사순시기이고 해서 정상까지 가면서 골고타를 오르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등산에서는 비무장으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아직 무더운 여름도 아니라서 물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산에 올라서 그런지 다리와 허리 근육이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빠르면 한 시간 안에 정상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두 시간 조금 넘게 걸렸습니다. 중간 중간에 많이 쉬었습니다. 근육이 당기고 하는 모습에서 아무것도 없는 비무장으로 가는 데에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니 예수님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을지 가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몸이 당기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이번에 물을 가지고 가지를 않아서 중간에 목이 많이 말랐습니다. 이번 등산에서 목이 마를 때 가장 예수님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얼마나 힘든 고통이셨을까를 묵상했습니다.

 

십자가는 누구나 피하고 싶지 자진해서 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초청하지도 않는데도 십자가는 옵니다. 예전에도 생각한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하느님이 세상에 주신 것 중에서 가장 공평한 것은 인간의 죽음과 십자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사람에 따라 조금 더 오래살고 덜 오래 사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은 차별이 없다는 점에서는 가장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아울러 또 하나가 십자가의 무게였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십자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자기가 몰라서 그렇지 남모르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또한 이런 걸 인정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누구는 십자가가 무겁고 누구는 십자가가 덜 무겁다는 생각 말입니다. 저는 죽음만큼이나 십자가 또한 하느님께서 공평하게 똑같은 무게로 모든 사람에게 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십자가를 허용하실 때 우리에게 가장 맞는 십자가를 정확하게 계산하셔서 주셨을 겁니다.

 

십자가는 절대적인 관점에서는 똑같지만 상대적인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그 무게가 다르게 느낄 뿐일 겁니다. 원래 남의 떡이 크게 보인다고 하는 말처럼 오히려 십자가는 자기의 십자가가 가장 무거운 십자가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만큼 그 고통의 무게만큼 하느님의 사랑이 그만큼 더 크다고 한다면 이 말에 동의하실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아마 동의하시지 않을 겁니다. 근데 이렇게 생각한다면 아마 십분 이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어떤 농부에게 소가 두 마리 있습니다. 두 마리 소에게 무거운 짐과 가벼운 짐이 있다면 어떤 소에게 무거운 짐을 싣고 가려고 할까요? 그야 힘이 센 소에게 무거운 짐을 얹고 가려고 할 겁니다. 우리의 십자가도 이런 원리에서 바라본다면 어떤 결론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십자가의 무게는 누구나 동일하다는 조건이고 둘째는 만약 상대적으로 크고 작은 무게라면 이 두 조건을 하나로 정리하면 이런 결론이 날 겁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불공평한 십자가를 하느님께서 주셨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느님 입장에서 저희를 바라보신다면 상대적으로 그만큼 십자가를 지고 갈 수가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런 십자가를 주셨다고 생각한다면 하느님으로부터 그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더 듬직한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으로부터 더 많은 인정을 받는다고도 볼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성경 말씀을 보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감당하지 못할 십자가는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만 놓고 보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자신에게 맞는 십자가를 주신다고 봐야 할 겁니다. 문제는 그걸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설사 아무리 작은 십자가를 하느님께서 주셨다고 하더라도 그걸 지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그건 상당히 무거운 십자가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십자가의 무게는 십자가의 무게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이 문제입니다.

 

마음가짐의 정도에 차이가 나는 것에는 딱 하나의 변수가 좌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똑같은 십자가의 무게일지라도 실제 몸으로 느끼는 십자가의 무게는 그만큼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질 거라고 봅니다.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십자가의 무게는 결정이 된다고 보는 게 타당한 생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자신의 십자가가 실제 무겁다는 게 사실이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생각의 관점만 다르게 본다면 물론 지금이야 힘들겠지만 나중에 하느님 앞에 갔을 때,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까지 지고 가신 것처럼 저희도 마지막에 자신이 지고 간 십자가를 하느님 앞에 내려놓아 보여드린다면 그 십자가의 무게만큼 영광도 비례하리라고 봅니다. 그럼 마냥 십자가가 애물단지처럼은 되지 않을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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