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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촛불시위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3 조회수567 추천수2 반대(0) 신고
촛불시위 때문에 시끄럽다. 이들을 보면 피곤하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d)가 1846년에 쓴 『The Present Age』중에 나오는
<On the Difference Between a Genius and an Apostle>를 보면
마치 오늘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현 시대는 서로 이해하고 반성하는 시대이며 정열이 없는 시대이며
틈만 나면 게으름을 부리려고 하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너무나 절망하여 비록 자살은 하지 않았으나
무언가를 너무 오래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생각에 빠져 죽어 가고 있다.
평생 동안 생각만 하고 살기 때문에 “자살”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싶다.
숙고한 나머지 자살은 하지 않았지만 너무 생각이 많아서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행동하지는 않지만
괄목할만한 예술을 창작하고 상호간의 이해와 탁월한 선택과 옳은 판단과 결정을 하는
이 세대를 아무도 비난할 수는 없다.
 
 걷잡을 수 없이 역동적이었던 혁명시대와는 달리 현 시대 사람들은 너무나 게으르다.
개인이 모여서 한 세대를 이루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우두커니 서서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대가 과연 있는 것인가를 의심하게 한다.
이 세대에서는 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으므로
검사들도 특이 사실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검사들은 여러 가지 조짐을 보고
특이(特異)한 사건이 생겼거나 생길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 시대의 사람들은 성공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고 엉뚱한 환상을 갖고 있으므로
검사들이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현실에서의 변화에서 도피하려고
자신의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변화에 열정을 바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혁명 시절에 비축한 열정과 에너지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
마침내 현 시대의 사람들은 터무니 없는 시도에 식상하여 게을러지고 있다.
마치 방금 아침 잠에 골아 떨어진 사람 같다.
즉 먼저 위대한 꿈을 꾸고 다음에는 게을러지고 잠을 자야 하는 핑계를 댄다.
개인은 사색이나 사색의 매력적인 모호성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지 않으며
어떤 큰 사건을 만들거나 열정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자신이 갖고 있던 나쁜 환상에 놀아나서 결국 자신을 배반하게 만들고,
스스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을 만들고 있다.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핑계를 대는 타성(惰性)에 젖어 있으며
열정이 없는 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처음으로 핑계를 찾아 내었기 때문에
더욱더 현명해졌다고 자축(自祝)하고 있다.
혁명 시절에는 개인에게 공짜로 무기를 주었지만
현 시대에는 개인에게 쓸데 없는 생각을 많이 하도록
현명한 규율들과 계산기가 주어졌다.
실제로는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어떤 세대가 외교가들이 하는 것처럼 어떤 행동을 지연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 시대는 혁명시절 못지 않게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말하려고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시험한다.
즉 이 시대와 자신이 맺고 있던 관계에 대하여 아는 것을 모두 잊어버리고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어떤 책을 읽거나 신문에 실린 기사를 읽는다.
그리하여 “무슨 일이 오늘 밤에 일어나거나
지난 밤에 일어났음에 틀림이 없어.”하고 생각할 것이다.
 
 혁명 시절은 행동의 시대였지만 현 시대는 광고의 시대이고 소문의 시대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항상 무슨 소문이 떠 돌아 다닌다.
현 시대의 반란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힘의 과시는 매사를 계산하는 사람들의 총명을 흐리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치적인 거물인사는 위대한 음모를 꾸밀지도 모른다.
그는 혁명을 결정하기 위하여 검열관이 보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도록
국회를 소집하는 성명을 조심스럽게 작성한다.
그리고 국회에서 의원들이 실제로 반란이 일어난 것으로 믿도록 한 결과
의원들의 동의를 받아내고 의원들은 훌륭한 저녁시간을 보낸 후
맘 편하게 귀가하게 된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는 학문은 심드렁하며 심지어는 웃음거리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과학자들은 보다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위대한 과학자들은 그가 논문을 써서 위업을 이루려는 시스템의 초록을 만들어
실제로는 전 시스템을 다 읽은 독자에게 그것을 읽히려고 한다.
고통스럽게 방대한 분량을 써야 하는 백과사전 편집자의 시대는 지나가고
여기저기서 모든 과학과 모든 존재를 다루는
소 백과사전 편집자와 지적인 관광객의 시대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순진한 젊은이들은 종교를 거부하고 항상 자아부정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대학의 젊은 학생들은
탁월한 재능을 이용하여 보다 위대한 무엇을 이루려고 한다.
그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그가 생각하는 단체나 사회를 이룩하려고 한다.
크게 성공하는 사람들의 시대는 지나가고 현 시대는 기대하는 사람들의 시대이다....
시험에 대비하여 9월 1일부터 부지런히 공부할 계획을 세우고,
그들의 결심을 다지기 위해 8월 한 달 동안 실컷 놀아 때리는 젊은이들 같이,
기대하는 사람들의 시대이다.
현 시대의 사람들은 다음 세대는 아주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다음 세대를 간섭하거나 지연시키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파티에 간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에는 차이가 하나 있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골치 아픈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반대로 현 시대의 사람들은 파티에서조차도 아주 진지하다는 것이다.
 
위험이 없는 얕은 물에서 헤엄치듯이 현 시대에는 행동과 정열이 없다....
 
 호수가 아주 엷게 얼어 있어서 호숫가는 안전하지만,
멀리 나가면 위험하여 생명을 위협하는 그런 호수 위에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아주 귀 중한 보석이 놓여 있을 때
정열적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빙판 위를 멀리 나간 사람에게,
비록 걱정을 하고는 있지만, 소리쳐서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들은 그가 물에 빠진다면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보석을 갖고 돌아 온다면 그를 신성시할 것이다.
하지만 정열이 없고 쓸데없는 생각만 많이 하는 이 시대는 사정이 다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주 총명하여 쓸데없이 얼음 판 위를 걸어나가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하며
보석을 가지러 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웃을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열정을 잔재주를 부리는데 사용할 것이다....
즉 사람들은 안전을 점검하기 위하여 마치 감정가가 맛을 미리 보듯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곳까지만 가고 더 이상 가지 않고 돌아오는
숙달된 스케이트 선수를 주의 깊게 보고 판단할 것이다.  
사람들이 흥분하여 “오 하느님! 그는 제 정신이 아닙니다.
그는 아마 죽을 것입니다.”하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가장 숙달된 스케이트 선수가 가장 먼 곳까지 가는 위험을 무릅쓴다.
그러나 그의 기량은 완벽하여 빙판은 아직 안전하며
그의 생명은 전혀 위험이 없다는 것을 알리며 손을 흔드는 것을
사람들은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의 유일한 소망은 돈이다.
그러나 돈은 쓸데없는 생각의 추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남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재능이나 재주
또는 그들의 아내의 사랑을 부러워하지 않고
오로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돈을 부러워한다.
이런 사람들은 돈만 있었더라면
더 멋지게 살고 무언가를 성취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회개하지 않고 죽을 것이다.
 
 틀에 박힌 듯이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지만
부질없는 생각과 열정이 없음으로 인하여 거짓 만족을 하고 있다.
아무도 하느님 왕국의 권능이 파괴되기를 바라지 않지만
사람들은 조금씩 자신이 작아지게 되고 허황된 것을 발견하게 되어야 왕을 칭송한다.
과거의 성과가 뜬 구름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아무도 과거에 이루었던 성과를 폄하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이 뜬 구름을 보고 만족을 한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아무도 “말씀”을 외면하지 않지만  
말씀”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거나 행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말씀”을 바꾸기도 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끌어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은 틀에 박힌 삶을 계속하기를 바라며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할지라도
판에 박힌듯한 그들의 삶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종교적인 권위에 따라 살지 않고 스스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며
또 영웅으로 생각하며 더 이상 전지전능한 왕을 바라지 않는다....
 
 이렇게 긴장 속에서 부질없는 생각들을 하면서,
마치 정열적인 시대에 똘똘 뭉쳐 한 원칙을 고수했던 것처럼,
부질없이 선망만 하는 정열이 없는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부정적인 생각을 일삼으면서 이를 삶의 새로운 원칙으로 삼고 있다.
도덕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부질없는 생각들이 신앙인양 더욱더 엉뚱한 선망을 일삼고 있다.
사회는 개인주의에 빠진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러한 부질없는 선망은 정열적으로 일하려고 하는 결심을 하지 못하게 한다.
즉 이러한 부질없는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부질없는 생각만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가
다시 그를 사로 잡아 벗어 나지 못하게 한다.
결국 아무 개성도 없는 원칙에 얽매이면서
아무 성과도 없이 타협하는 비극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개성이 없는 선망 때문에
그들이 한 판단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또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판단을 흐지부지하게 만들어 버린다.
즉 선망은 제대로 판단을 못하게 할뿐만 아니라 판단에 저해요소가 된다.
 
 선망은 평등화를 이루게 한다.
그러나 열정적인 시대에서는 전향적으로 생각하여
새로운 원칙을 만들고 낡은 것들은 파괴해버리지만,
부질없는 생각만 하는 정열이 없는 시대에서는 반대로 하향 평준화를 이룬다.
이러한 하향 평준화는 발전을 못하게 막으면서 조용히
그리고 계산적으로 또 추상적으로 진행이 된다.
고작 그들이 하는 평등화는 자신의 심장박동만 들을 수 있는 죽음과 같은 고요함으로
모든 것이 침체되고 힘이 빠지게 된다.
 
 가끔 용감하게 이러한 분위기에서 탈피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준화 되면 자신이 영웅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반발한다.
개인은 이 평준화에 나름대로 참여하지만 극히 지엽적이며
평준화는 아주 추상적이며
개인이 함몰되어 사라져 버리는 추상화 과정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평준화도 과거에 숱하게 시도되었던 부질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에는 영웅(백성을 지배하는 위대한 사람으로 백성을 노예로 만든)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리스도인들은 무명의 순교자를 지향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범을 보이면서 결코 대표자로 나서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 시대의 사람들도 평등화를 지향하고 있지만
결과는 각 개인 사이에 부정적인 것들만 있는 하향 평준화를 낳고 있다.
 
 평등화의 의미는 “개인의 범주”’가 아니라 “세대의 범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주관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 각 개인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과거에는 한 개인은 군중을 만들지 못했으며 오직 깨달은 개인들만이 군중을 이루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 시대에는 계산적인 평준화를 지향하고 있다.
 
 진정한 평준화를 이루려면 먼저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평준화의 목표이며 이렇게 해야만 평준화가 환상으로 끝나지 않게 된다.
사실상의 평준화가 된 사람들이 “군중(the public)”이다.
“평준화를 하는 사람으로 그치지 않는 스승님!
군중은 거대하지만 아무것도 모릅니다.
평준화는 깨달음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군중”은 과거에 한 번도 성취하지 못한 이상적인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떼를 지어 행동에 옮기고 각 개인에 대한 책임을 지며
각 개인이 자신을 표현해야 하며 가부간(可否間)의 결정을 즉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회가 현실을 은폐하여
아무런 사조(思潮)를 이루지 못하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이나 조직에서도 한 번도 뭉치지 못하고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비현실적인 개인들을
미디어에서는 “군중” 또는 “여론”이라고 부르면서 추상을 만들어 낸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 군중이지만 이러한 몸을 발견할 수가 없다.
모두들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하고 있고 너무나 추상적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그들을 “군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군중이 점점 커져서
열정이 없고 부질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시대를 많이 만들어서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다.
이 거대한 군중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삼켜버려 형체가 없는 그런 시대가 곧 올 것이다.
 
 군중”은 사람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며
한 세대가 아니며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며
공동체가 아니며 사회가 아니며
연대(連帶)도 아니며 그 장소에 모인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실체로서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중에 속한 개인은 아무도 자신의 권한을 남에게 위임할 수 없다.
그가 군중에 참여하고 있을 때나 그가 두드러지게 표나지 않을 때에만
군중에 속하게 되며 표나게 두드러진 사람이면 군중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개인들로 구성된 군중은 거대한 힘을 갖고 있지만
두드러지지 않고 추상적인 사막이며 무(無)이므로
막강하기도 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도 된다.
 
 열정이 없고 부질없는 생각만 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과 관련하여
매체는 추상적인 유령인 군중을 만들고 있으며
군중은 이러한 평준화의 결과로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신문은 개인을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의미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피를 흘리지도 않고 게으르기 때문에
더 많은 개인들이 군중이 되기 위하여 즉 추상적인 하나가 되기를 열망한다.
그것도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군중은 모든 참여자가 매사에 제3자의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으른 집단인 군중이
기분전환을 위하여 어떤 사람이 했거나 성취한 것을
군중에게 화제거리로 제공할 생각을 한다.
 
군중은 애완견을 갖고 있다.
이 개가 매체이다.
군중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분수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군중은 애완견을 그에게 보내어 즐기게 한다.
물기도 하는 이 개가 그의 옷을 물어뜯고
꼬리를 치며 군중이 싫증이 나서 그 개를 물리칠 때까지
개는 그의 다리로 모든 저속한 자유를 누린다.
그것이 군중을 평준화시키는 방법이다.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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