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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하필이면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을까?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11 조회수503 추천수7 반대(0) 신고
 

왜 하필이면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을까?

(분열 조장자, 예수님)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나는 말하거니와 ,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습니다.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다면, 이제부터 셋이

둘에 맞서고 둘이 셋에 맞서서 갈라질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 아들이 아버지에 맞서고 어머니가 딸에,

딸이 어머니에게 맞서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 며느리가

시어머니에 맞서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루가 12, 51-53)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사람은 스스로 내적 분열을 겪고 있는

사람이다.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평화롭다. 심리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께서 자신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며 사신 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몹시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예수님은 무슨 뜻으로 ‘분열’이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에 반대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두루뭉실하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사람들이 결단을 내리게 하신다.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일로 가족이 완전히 분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신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삶의 근본적인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해서 사람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반목하는 모습을 지적하셨을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 화목한 가족도 사실은 허울만 그럴 뿐 가족 간에

사랑이 없고 형식적인 관계만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셨다.


이런 형식적인 관계의 이면에는 가족의 유대가 끊어질 수 있는

커다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당신 편에 서든지 반대편에 서든지

분명한 입장을 밝히도록,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겠다는 결단을 내리도록,

자기만의 고유한 삶의 빛깔을 내도록,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극적인

말씀을 하신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으로 오로지 눈앞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사회의 모든 정신적 구조를 교란시키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분란을

일으키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정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

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견고한 삶의 건물을 지어 놓고 그 속에 들어가 숨어

버리면 분란을 일으키신다. 그러나 이 분열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다른 측면에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과 공생하고 가족과도 공생한다.

사람들은 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며 산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신의 길을 찾고 자아를 찾으라고 자극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의 기대에 연연하지 말고 거리를 두고 살펴봐야

한다. 내가 내적으로 다른 사람의 기대에 얽매여 있는 한, 주위의 기대와

자신의 바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절대로 나에게

이르지 못한다.


내 힘으로 일어서야 주위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그래야 만남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서로 얽히고설킨 채 경계를 분명히

긋지 않고 살면 다른 사람의 신비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도

깨닫지 못한다. 예수님은 성숙한 사람, 스스로 홀로서는 사람들이 서로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란이 일어나야 하고, 거리를

두어야 하고, 자신의 경계를 그어야 한다. 이 길을 통해서만 결실을 맺는

삶, 함께하는 삶이 가능해진다.


여러분은 주관을 뚜렷이 밝힙니까? 아니면 여러분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을 언짢게 생각합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기대를 걸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킬 것인지는 여러분의 자유로운 결정입니다.


그런데 기대를 거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주관을 밝히지 못해 자신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주관이 뚜렷해야 대인 관계가 원만해지고 분명해집니다.

여러분의 대인관계는 어떻습니까? 가깝게 지내는 관계와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50가지 모습

오늘의 묵상: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어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수요일이었기에 한림대 병원 원목 실에 가서

배당 구역의 교우 환자들의 명단을 뽑는데 60대 초반의 자매님 옆에 “예비자‘란

표시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분들 앞에 가서 어떤 말로 그리고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할지가 참으로 망설여지게 됩니다.


마침 그 병실에 들어서니 그 자매님 곁에 60대 중반의 남편 되시는 분이 병간호를

하고 계신 것으로 파악이 되었고 우리가 성당에서 왔음을 밝혀드리고 ‘예비신자’임을

알고 찾아왔으며 병상에 계신 분들을 위해 매주 이 시간에 병원을 방문하여,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주님의 자비하신 치유의 은총이 자매님에게 임하시어 하루

속히 쾌유되시기를 바라고 성모님의 온화한 사랑이 자매님의 마음을 위로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주모경을 바치시겠습니다.”


그 옆에 계셨던 남편 되시는 분은 멀쑥한 모습에 “뭐 이런 사람들이 있나?” 하는 의아함을

드러내셨지만 ‘예비신자’인 자매님은 자세를 고쳐 세우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앉고 두 손을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지향을 몇 마디 더하고 참으로 진지하게 기도를

바쳐드렸습니다. 기도를 바치고 내려다보니 자매님의 눈에 눈물이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들이 70대 초반의 머리가 허연 늙은이들이 찾아와서 그런 것인지 또는

기도드리는 모습이 진지해서 였는지 또는 갈망하던 성당의 문을 열고 ‘예비신자가 되어서

이런 순간을 맞아 감동을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흘리는 눈물은 진실이었고 우리도 감격의 순간을 맞보았습니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삶의 근본적인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분열이란, 주관을 갖고 분명한 길을 선택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었습니다. 그래서 선택의 기로에서 믿음의 길로 들어서는 이들이

겪는 분열을 조장하러 오셨다는 말에 이제 수긍이 갑니다.


단호한 결단으로,

믿음의 길로 들어서는 분들에게 또 그 가정에 축복이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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