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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각대로 하면! 될까?-판관기75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7 조회수474 추천수6 반대(0) 신고

생각대로 하면! 될까?-판관기75

  <생명의 말씀>
 에브라임 산악지대에 미가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어머니는 은화 천 백 냥을 잃어 버린 일이 있으시죠? 그 때 어머니는 그것을 훔친 사람을 저주하셨습니다. 저도 이 귀로 어머니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돈이 여기 있습니다. 그것을 훔친 것은 바로 저입니다. 여기 있으니 받아 주십시오." 그의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그래? 괜찮다. 너는 야훼께 복을 받아라." 그들은 돈 천 백 냥을 어머니에게 돌려 드렸다. 어머니는 그것을 받고 말하였다. "내가 이 돈을 이 손으로 야훼께 거룩하게 바쳐, 내 아들을 위하여 신상을 부어 만들리라."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은화 이백 냥을 은장이에게 주어 신상을 만들게 하였다. 미가는 그 신상을 집에 모셨다. 미가는 그 신상을 모실 신당을 짓고 에봇과 데라빔을 만들고 아들 하나를 사제로 임명하였다. 그 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제 멋대로 하던 시대였다. (판관기 17:1-6)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이스라엘 역사에 아무 위대한 일도 하지 않고 능력만 탕진한 삼손의 이야기가 허무하게 끝을 맺자마자 삼손의 이야기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 하나가 뜬금없이 시작됩니다. 아무 분별도 생각도 없는 모자(母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은화 천 백냥을 도둑 맞아서 저주를 해 놓고는 그 아들에게 도둑질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고, 돈을 가져 왔으니 야훼께 복을 받으라고 복을 빌어주고, 모세에게 주신 율법으로 금지된 신상을 만들어 놓고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고... 또 자기 아들을 자기가 사제로 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삼손이 자기 책임을 망각한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하느님의 뜻과 계획 그리고 자신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자각이 거의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막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제일 마지막의 '그 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제 멋대로 하던 시대였다.'를 보면  이 이야기는 어느 특이한 콩가루 가정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 백성의 삶이 이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 자기 욕망만을 따라 살며 능력을 탕진하고 그 능력에 붙어 있는 사명을 망각해 버리니까, 이렇게 시대가 어두워져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더 우스운 건, 이처럼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서 제 멋대로 하면서도 그 어머니가 하는 말이 '내가 이 돈을 이 손으로 야훼께 거룩하게 바쳐, 내 아들을 위하여 신상을 부어 만들리라.'하는 것입니다. 제 좋을 대로 자기 욕심대로 살면서도 자기가 하느님을 섬기고 따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과연 삼손 이후 판관기 시대의 사람들에게서만 보이는 행태일까요? 돈을 최우선시하는 현대를 사는 우리 안에서도 너무나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 되는 것-돈을 많이 벌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져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길이다. 그러니까 나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 세상에서 인정해주는 방식의 성공을 해야 한다. 부(富)는 하느님 복의 표시니까 부(富)를 많이 가질수록 그 사람이 하느님께 더 큰 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단 한 번도 간접적으로건 직접적으로건 말씀하신 바 없는 위와 같은 생각이 하느님을 따르는 우리의 머릿속에 강하게 들어와서 하느님 말씀인냥 위세를 부리며 행세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의식·무의식으로 그 생각을 따라 삽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과는 멀어지면서 욕망을 따라 사는데 더 큰 문제는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그분을 위해 살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자기 의로움(self-righteousness)에 빠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기 쳐서 수천억의 돈을 벌고도 그 돈으로 십일조하고 부끄러움도 없이 의로운 그리스도인인냥 하느님께 영광 돌린다고 신앙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사람의 번영과 성공은 하느님이 저 사람을 축복하신 것이다 하며 마치 마케팅 하듯이 하느님을 광고하려는 사람들도 있고, 분별없는 사람들은 마치 상품 광고에 이끌리듯이 예수님 믿으면 다 저렇게 재물의 복, 사회적 성공의 복을 영화롭게 누려야 하는가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따랐던 사람 중에-우리 가톨릭 교회의 성인성녀 중에 물질적 부를 극대로 누리고 극상의 사회적 성공과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인 성녀들은 묵묵히 자기 소명의 길을 갔고, 그래서 그 소명의 자리에서 자기 성품이 예수님과 일치해 가는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보다는 고난의 길을 갔던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애써 혹은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하느님을 통해서 뭔가 가시적이며 물질적인 이득을 얻고만 싶어합니다. 특히 내 능력만으로 이루기 어려운 어떤 것을 하느님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건 제대로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 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제 멋대로 하던 시대였다."

 판관기 시대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하는 말이기도 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의 우리 모습을 요약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판관기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자기 스타일대로 자기 생각도 하느님을 대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아무데나 하느님의 이름을 갖다 붙이고 자기 좋을 대로 하면서 하느님의 뜻으로 합리화하며 스스로 만족해합니다.

 요새 유행하는 어떤 광고는 '생각대로 하면 된다'고 하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 우리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정말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살면서도 하느님을 따른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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