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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5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25 조회수1,308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복음묵상 길잡이

 

1. 하느님이나 예수님을 뵙고도 알아볼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2. 우리는 과연 진짜 예수님을 바라보기는 하는 걸까?

 

집을 하나 짓는 데에도 다양한 일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목수도 있어야 하고 미장을 하는 인부도 있어야 하고 실내에 들어오는 전기 배선과 관련해서 전기 전문인 전공도 있어야 합니다. 집을 건축하는 데 비전문가라도 최소한 그 사람이 미장을 하는 사람인지 목수인지 전기공인지는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각자의 일을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옷 유니폼으로 구분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복음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하기 위해 돌을 던지려고 하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왜 나에게 돌을 던지며 박해를 하려고 하느냐고 하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모독했고 또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한다는 사실이 그들이 말하는 돌을 던지려고 하는 명분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에 오류가 있다는 걸 밝히셨지만 그들은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말하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시는 주장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가 오늘 복음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자체를 믿지 않아도 되지만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면 예수님 속에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 속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논리는 아주 명확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그간 하신 일들을 보면 그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고 하느님의 아들이시인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걸 유다인들이 알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늘 복음 앞 부분에서는 예수님을 두고 유다인들 사이에 예수님에 대한 시시비비가 있었습니다. 이들 중 예수님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말을 보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논리가 더 명확하게 이해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약 그들이 말하는 논리로 설령 마귀들린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마귀 들린 사람이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할 수가 있느냐고 말을 하는 유다인의 말로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마귀 들린 사람이 아니라는 반증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마귀 들렸다고 하는 이유를 복음에서 나와 있는 말씀으로 이해를 하자면, 예수님의 목숨을 아무도 빼앗을 수가 없고 예수님의 의지에 따라 목숨도 내놓을 수도 있고 다시 얻을 수도 있다는 말씀에 마귀가 들린 것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단순히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한 이적을 행하신 일로만 가지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도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땐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약간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마음 자체가 완고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건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어느 정도는 봐줄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보지 못한 안타까운 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는 이런 것도 포함될 수가 있지만 예수님께서 그간 그들에게 한 말씀을 가지고 판단하면 그게 단순히 이 세상의 그 어떤 현자가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실제 그 말씀만을 가지고도 그들이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예수님이 세상 분이 아니라는 걸 인정했어야 하는데 그들은 조금도 인정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인정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고도 인정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게 아니고 일부는 인정을 한 유다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어찌 목수가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겠느냐고 이런 논리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근거로 제시했다고 추측을 한다면, 일면 그들의 주장도 이해가 될 수 있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여기서 그들이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사고방식이 단순하거나 아니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동안 하신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는 있지만 실제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라는 걸 알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으면 모르겠지만, 인정하는 사람이 있는 걸로 봐서는 사람에 따라 같은 걸 보고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는 건 인정을 할 수가 있지만, 왜냐하면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사안에서는 그렇게 본다면 약간 무리가 있는 듯합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사실을 진실로 볼 수 영적인 눈, 영안이 가려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신성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하는 설명 외에는 그 어떤 설명으로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실제 예수님, 아니 하느님을 눈앞에 보고서도 하느님을 몰라보았으니 말입니다. 유다인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 속에도 이런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하느님께서 이런 관점에서 저희를 바라본다면 어떤 마음을 가지실지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한몸이신, 예수님 자신을 우리가 바라볼 때 그 예수님도 바라봐야겠지만 실제 하느님께서는 우리 주위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들 속에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되길 더더욱 간절히 원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한번 해보게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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