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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7 조회수943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Do not be afraid.
You are worth more than many sparrows.
(Lk.12.7)
 
 
제1독서 에페소서 1,11-14
복음 루카 12,1-7
 
 
깜짝 놀라셨지요? 어제 분명히 새벽묵상글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 피정 온 이곳에 인터넷이 되더라구여. 마침 노트북도 가져갔고... 그래서 이렇게 새벽묵상글이라도 올립니다. 그럼 오늘의 새벽묵상 시작하지요.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돈이 많고 학식이 높더라도, 알콜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가 되어 결국 자살로 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불안과 공포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어린 학생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에 상관없이 또 신분에 상관없이 자살자가 무척 많은데, 그 원인은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일의 40%는 지난 과거의 일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또 50%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일 때문에 하는 것이랍니다. 오직 10%만이 현재의 일로 두려워하고 있답니다. 이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 해도 될 일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시골길을 걸어가다가 마침 지나가는 빈 트럭을 얻어 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트럭은 빈 관들을 싣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오는 것입니다. 트럭이라 지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는 얼른 빈 관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 비를 비했습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지요. 그 동안에 다른 두 사람이 그 트럭 위에 올라탔습니다.

관 속에서 잠 들었던 사람이 깨어나 관 뚜껑을 열고 일어나면서 “비가 그쳤나?”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나중에 차를 얻어 탄 두 사람은 “귀신이야!”라고 말하면서 두려워 차에서 뛰어 내렸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이 안타깝게도 사망하고 말았지요.

이 사람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스스로 공포에 떨다가 죽은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두려워하고 있지만, 사실 두려운 것은 두려움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근거 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실제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사람이 ‘두려워하지 마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찾아보니 365군데나 되더랍니다. 말하자면 1년 365일 매일같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실 정도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주님이십니다. 이 분께서 우리 편이 되시겠다면서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데 왜 두려워하십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두려움을 잊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믿음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큰 나와 작은 나


20세기 성악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이탈리아 최고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데뷔하기 전, 그는 몇 번의 시도와 좌절을 맛봐야 했다.

스물한 살 무렵 첫 무대에 오른 카루소는, 음악 교육을 받은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 무대 공포증까지 있어 대사를 까먹고 목소리마저 갈라지는 끔찍한 경험을 해야 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지휘자 빈센초 롬바르디의 눈에 들어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게 되면서 테너 가수의 꿈을 갖게 되었다. 롬바르디의 지도로 확연히 달라진 그의 목소리를 듣고, 지아코모 푸치니가 무릎을 치며 “대체 누가 당신을 내게 보낸건가? 하느님인가?”라며 감탄했다던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그에게도 극복하기 힘든 약점이 있었다. 바로 무대 공포증이었다. 카루소는 무대 공포증을 뛰어넘지 않는다면, 세계적인 성악가 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 ‘큰 나’와 ‘작은 나’라는 두 개의 특성이 공존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있어 ‘큰 나’는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를 주지만, ‘작은 나’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카루소는 오페라 무대에 서기 전, 한쪽 구석에서 이렇게 속삭였다. “사라져라. ‘작은 나’여!” 그렇게 하고 나면 ‘큰 나’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여 장엄한 목소리로 관객을 사로잡는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크게만 보이는가? 기필코 넘어서겠다는 ‘큰 나’보다, 할 수 없으니 포기하자는 ‘작은 나’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 주저앉아 있는가? 그렇다면 카루소처럼 속삭여 보라.

“사라져라. ‘작은 나’여!”
 
 
 
 
 Sweet Breeze - Isao Sas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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