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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김웅렬 토마스 신부님 성소주일강론)
작성자송월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16 조회수471 추천수2 반대(0) 신고

임가밀로 신부님 동상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순례 오시는 분들이 성당 마당에 들어오기 전에 눈에 띄는 동상이 느티나무 밑에 하나가 있는데

‘임 가밀로 신부님의 동상’ 이지요.

임 가밀로 신부님과 이 매괴성모순례지와는 뗄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임 가밀로 신부님은 성모님의 특별한 사도로서, 물설고 낯선 이곳에서 성당을 짓고 51년 동안

본당 사제를 하면서, 성체신심과 성모신심에 대해서 깊은 뿌리를 내리고 거룩하게 살다 가신 분입니다.

임 가밀로 신부님은 조만간에 시복준비에 들어갑니다.

언젠가는 성인품에 드시겠지요.


제대 밑에 빨간 줄 쳐져 있는 곳에 임신부님의 뼈가 그 밑에 묻혀 계시는데 오늘 순례오신

신자들을 이렇게 둘러보실 겁니다.

‘아이고, 오늘은 누가 안 보이는 구나! 그 할매 몸이 시원찮은지 안 보여.’

임신부님의 동상 밑에 보면 돌에다가 글자를 크게 써놓았는데 따라하십시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임 가밀로 신부님이 51년 동안 이곳에 계시면서 교우들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이 세상에 인간의 만남 중에서 인간끼리 만나서 이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다면,

또 찾아낼 수 있다면 이 자리에서 한 번 이야기 해보십시오.

부부사이에 이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 사이가 바로 천국이 아니겠는가!

본당신부가 신자들을 볼 때마다 이 얘기를 하고 본당신자들이 신부님을 만날 때마다

‘그래요 나는 신부님을 만나기 훨씬 전부터 사랑했어요.’

바로 그 공동체가 천국이 아니겠는가!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 이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게 천국이 아니겠는가!

그 반대가 된다면 지옥이요, 연옥일겁니다.

아내가 남편을 째려보면서

‘나는 너 만나기 전부터 웬수였고, 지금도 웬수진행형이고 앞으로도 웬수야!’


오늘 김신부는 착한 목자주일을 보내면서 착한목자처럼 의젓한 말을 선물로 드립니다.

‘이 김신부도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소주일은 신학생들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이 아니라

착한 사제, 착한 수도자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특별히 기도하는 주간입니다.


착하다는 말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도 착한 목자 이야기가 복음에 나왔는데 ‘착하다’ 는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첫 번째, 착실하다.

두 번째, 어질다.

세 번째, 선하다


그럼 이 김 신부는 착실한가?

내 별명이 김착실이야~^^

착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마세요. 나는 뼈가 부서져도 이제껏 한 눈 팔지 않고 착실하게 살았어요.


두 번째는 어질다.

그럼 이 김신부가 어지냐?

어진 것 말할 것도 없지요~ 성질이 급해서 가끔 이쁜 짓 하다가 한꺼번에 깨먹을 때는 있지만

그래도 본성은 어질어!


세 번째가 선하다.

선하다는 것은 성서에서 진리 쪽에 선다는 그 뜻이야.

선하다는 것은 찬 물 더운 물 섞여 있다는 뜻이 아니라 확실히 진리 쪽에 선다는 것이 성서에서는

‘선하다’ 

저는 길이 아니면 간 적이 없습니다.

어떤 권력, 어떤 세력 앞에서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저는 불의 앞에서는 굽힌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혼자 이렇게 왕자병에 빠져 있는 김신부이지만 양들에게 목자는 분명히 필요하지요?

그런데 그냥 목자가 아니라 착한 목자가 있어야 됩니다.

목자도 직업적인 목자가 있고, 양들을 자기 목숨처럼 여기는 착한 목자가 분명히 있습니다.

자기 이익이나 편리만이 아니라 목숨 걸고 양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있어야 됩니다.

목자를 잘못 만나면 양들은 그 목자와 같이 절벽으로 떨어집니다.


본당이 아름답다고 일치가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저는 수도 없이 많은 본당을 다니면서 피정을 시키는데 그 성당 정문에 들어갈 때부터

각 성당마다 풍겨 나오는 공기는 다 다릅니다.

어느 본당은 아직 성당도 없지만 따뜻한 바람이 불고~~

신자들이 나와서 일하는 것을 보면 본당신부와 그냥 착착... 돌아갑니다.


어느 성당은 수십억짜리 으리으리하게 대리석으로 지은 성당인데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찬바람이 쌩쌩~ 나오고 잘난 인간들이 하도 많다보니까 수백 개의 파가 생겨서 썩은 냄새가 풀풀 납니다.


목자도 중요하지만 양들이 목자를 따라가는 자세도 분명히 중요합니다.

우리 이 감곡성모순례지에 사는 목장에는 분명히 목자와 양이 있고, 또 이 감곡순례지에는

매년 10만 명이 넘는 양들이 찾아옵니다.

여기 있는 이 김신부는 감곡신자들을 위해서 순례자들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고

여러분들을 내 생명만큼 사랑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사탄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목자와 양을 이간질 시키고 서로 갈라놓게 만듭니다.

얼마나 많은 성당이 서로 반목하고 피를 흘리고 사는지 모릅니다.

어느 쪽 잘못이겠습니까?

같은 사제입장이라고 해도...아무리 잘 봐 주려고 해도 철딱서니 없는 사제,수도자들도 있습니다.

옛날부터 자식은 애비를 잘 만나야 되는데 그 애비가 아무리 못났다 하더라도 자식이

애비를 때릴 수는 없습니다.

못났다고 아비를 감옥에 가둘 수 없습니다.

자식은 아비를 위해 기도하고 주님께 청해야 합니다.


서울에 피정을 시키러 갔을 때 피정 시간이 좀 남아서 그 동네 아는 신자집에 茶 한 잔 마시러 들어갔습니다.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사람이 나오지 않아서 아파트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갔더니 현관 안에 신발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몇 번 헛기침을 했지만 말들을 하느라고 제가 문 밖에 서 있는 걸 몰라서

본의 아니게 현관 앞에 서서 2, 30분간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천주교신자들이 구역모임을 하느라고 모여 있었는데 주제가 뭐였냐?

본당신부 욕하는 거였습니다.

신부소리도 안하고 “그 인간, 그치, 그거 언제 가?”

저는 현관에 서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본당신부가 어떻게 처신했길래 어쩌다 신자들에게 저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가!’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잠시 조용해지길래 그때야 큰 목소리로 기침을 했습니다.

‘으흠흠~~’

‘어, 손님 오셨나보지?

현관 앞에 내가 장승처럼 서 있으니 주인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유, 신부님 언제 오셨어요?”

“한 30분 되었다.”

“그럼.... 저희들 하는 말 다 들었어요?”

“그럼 뚫린 귀인데 못 듣겠니?”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안에 있던 여자들이 튀어나가기 시작하는데, 못나가게 하려고

내가 신발을 다 흩어버렸어요.

“안으로 들어가 보시지요!”

지들이 지은 죄가 있는지라 제 앞에 일곱여자가 쪼로록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도 저런 소리 듣지 않고 살아야겠다...반성을 했소, 그런데 당신들에게 물어봅시다.

본당신부님이 그런 모습을 보였을 때 당신들 중에 감실 앞에 와서 예수성심께

우리 본당신부님 살려달라고 눈물로 기도한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시오.”

없지요~~

감실 앞에서 기도했던 사람이라면 그렇게 신부, 난도질 안 합니다.

“당신들 중에 신부님이 사람 입에 오르내릴 때,  묵주를 붙들고

성모님 , 우리 신부님 일어서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한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이면 그렇게 모여 앉아가지고 신부를 토막 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여러분 본당신부들 말고도 여러 신부님들을 겪었,고 앞으로 죽을때 까지

여러 신부님들을 겪을거예요.

그러나 사제 한 사람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사제 하나가 예수님을 다 못 보여 주어요.

내가 피정 다니면 피정 끝나고 신자들이 내 손을 잡고

“아이고, 신부님 본당신자들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감곡에 가서 살고 싶어요.”

내 그러지요.

‘너도 와서 살아봐라!’

예수님이 본당신부를 해도 반은 본당신부 편이 아닙니다.


그 전에 젊은 신부시절에는

‘왜 이유도 없이 내가 지들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름대로 열심히 사목하는데

왜 나를 씹고 돌아다닐까!’

그것 때문에 상처받고 이해가 안 되었어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 보니까 ‘씹는 놈은 누가 와도 계속 씹더라!’

예수님이 본당신부로 부임을 해도 씹는 놈은 이가 부러질때까지 씹어요.

이제는 그것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안 받아요.

다시 말하면 어느 성당이던지 100% 본당 신부편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본당사제에게서 예수님의 한 조각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 신부님은 성인사제입니다.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발을 보여주고 갑니다.

성질은 괴팍한데 가정방문은 끝내 줘.

레지오 단원이 병자방문 가면 벌써 신부님 다녀가셨대.

참 부지런 떠는 신부님들 있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일 년에 한 번씩 가정방문 다녀요.

그렇게 부지런한 것, 아무나 못해요.

예수님의 발바닥 보여주고 가는 신부가 있어요.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 착한 심성을 닮은 신부님이 있어요.

강론은 지지리도 못해, 그런데 그 신부님 다 좋아해.

너무너무 착해~~

그 신부님 곁에만 가도 착한 게 뚜두둑~ 떨어져.

‘우리 신부님, 참 착해!’

강론 못하는 게 다 덮어지는 거야.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 보여 줘요.

그 신부님 만나려면 사제관 가는 것 보다 성당으로 찾아가는 게 훨씬 빨라요.

늘 빈 성당 안에 틈날 때 마다 감실 앞에서 예수님 친구가 되어드려.

그 모습을 보고 신자들이 하나 둘씩 그 뒤로 성체조배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해요.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제도 있어.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입을 보여주고 가요.

입만 열었다 하면 말씀의 카리스마를 받아서 사람을 뒤집어 놓았다~ 바로세웠다~울렸다~.웃겼다~

삶을 변화시키고 치유시켜줘요.

아무리 못된 사제라 해도 여러분이 못 보았을 뿐이지..예수님의 한 조각도 안 보여주는 신부님은 없어요.


며칠 전에 인터넷 카페에 어느 신자가 글을 하나 올렸는데

제목이 ‘호랭이 신부님’

어느 날 신부님이 한 분 부임해 오셨는데 너무나 근엄하고 무섭게 생겨서 자기는 근처에

접근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었대.

그런데 언제 그것이 다 무너졌느냐!

고백소에 들어갔는데 그렇게 자상하게 성사를 봐 주시더래.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그 신부님한테 위로를 받고 나왔대.

그때부터 ‘아. 내가 저 신부님한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어느 신부님이나 예수님의 한 두 조각씩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제껏 겪었던 사제들의 조각조각 기억들.....

여러분이 겪고 살았던 사제들의 한 조각 한 조각을 여러분이 세상을 떠날 때 여러분의

영혼의 도화지에 모자이크를 하면 그때서야 예수님의 모습 한 조각이 만들어져요.


다시 말하면 사제는 사제단으로 존재할 때 그리스도의 실체가 만들어지지~~

사제 한 사람으로 예수님 전부를 다 보여줄 재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사제들이 인간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일 때 돌로 치지 마세요.

그건 기도하라는 뜻이지..그 사제를 내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제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힘들 때마다 일어서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우리 신자들

지금도 나를 위해 묵주 들고 있는 내 어머니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우리 레지오할머니들....

그 분들의 모습을 보고 지치고 힘들 때 일어나는 거야.

목사님들은 괴롭고 힘들면 집에서 위로라도 받잖아!


신자들의 기도를 먹고 살아가는 게 사제입니다.

신자들이 사제들을 지켜주셔야 된다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옛날에 동네어귀에 가면 동네우물이 있었어요.

사제는 어떤 존재냐?

공동우물과 같은 존재지, 개인수도가 아닙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와서 퍼가는 공동우물이 바로 사제예요.


본당에 이런 말 저런 말 나오는 것 보면, 물론 그 사제 잘못도 있어요.

어느 신부님은 어느 신자를 편애한다!

다른 신자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그 신부에게 잘 보이려고 여러 가지를 한다.

그런 것 때문에 본당에 분열이 생기고, 신자들 사이에 상처를 받고....

사제는 공동우물이라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오늘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학생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날입니다.

사람에게는 영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영은 영성과 인성으로 분리됩니다.

여러분, 인성과 영성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영성보다 수백 배 중요한 것이 인성입니다.

인성이 개떡이 되어 있는데 어찌 영성생활을 하겠습니까?

인성이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데 무슨 영성생활을 하겠습니까?

세례 받고 2~ 30년...50년이 지나도 왜 예수님께 한 발자국도 못나가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왜 맨 날 그 모양 그 꼬라지인가!

그것은 인성 속에 있는 상처가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인성 안에도 생각이 나는 상처가 있고, 무의식 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상처가 있을 거예요.

무의식 속에 있는 상처를 예전에는 가계상처라고 했지만 지금은 주교님들이

그 단어를 기복이 되기 쉬워서 금지하고 안 씁니다.


무의식 속에 있는 상처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1살 2살.... 내가 기억 못하는 상처도 분명히 있다....이겁니다.

의식이 생기면서 아버지한테 받은 상처, 엄마한테 받은 상처,

오빠한테 받은 상처, 신자생활 하면서 교우들에게서 받은 상처

사제에게 받은 상처. 수녀들에게 받은 상처.....

의식 속에 또렷이...또는 무의식 속에서....돌에 새겨 놓은 상처가 바로 인성의 상처예요.


이 인성의 상처가 해결이 안 되면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공부를 20년, 30년으로

늘린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사제로써 올바로 살아갈 재간이 없습니다.


신학교 교수들을 피정을 시키고 영성지도 신부들을 면담을 해보면

그 신부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것이 뭐냐?

신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신학생들의 인성은 손을 댈 수가 없다는 겁니다.

본인들이 찾아와서 마음을 오픈하지 않는 한, 지금 저 신학생 뱃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길이 없대요.

남들 하는 것처럼 기도하고 공부하고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되어 독서직 받고,

시종직 받고, 부제품 받고 사제가 되어요.

그런데 뱃속에 다이나마이트가 몇 개씩 들어 있어.

그게 언제 터질지 몰라!

꼬리 딱 내리고 세월 지나가면 사제가 되요.

‘내 신부만 한 번 되어봐라!’

속에서는 피를 철철 흘리는 인성의 상처가 있는데 그것 해결을 못하고 신학생 생활 하고...

수녀원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오픈하지 않는 한 그 속을 어떻게 압니까?

무슨 가시가 잔뜩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어린 시절에 허구한 날 빚쟁이들이 집을 드나듭니다.

빨간 차압 딱지가 붙고,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아버지 때문에 돈에 한이 맺힌 아이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왜 저렇게 무능해!’

‘세상살이가 재미가 없겠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왔다고 합시다.


하느님은 동기가 불순하더라도 그 동기를 가지고 부릅니다.

신학교에 들어와서 정화를 시켜야 되는데 그 속에 있는 걸 그대로 담고

‘내 신부만 되어봐라!’

이런 사람이 사제가 되면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강론 대에서는 흑백논리로 나갑니다.

부자는 마귀, 없는 자는 천국 가고 부자는 지옥 간다!

어릴 때부터 돈에 대한 한이 맺혀 있기 때문에 강론도 흑백논리로 나갑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본당신부님, 여러분들이 보는 사제, 수녀님들이 보여주는 그 인성, 그 마음은

신학교 들어오기 전에, 수녀원 들어오기 전에 그 아버지, 엄마한테서 그대로 받은 겁니다.

신학교에서는 한사람, 한사람 속을 다 뒤집어 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기본적인 인성은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겁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사랑이 많이 받은 사람은 그 신부님도 사랑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사제가 되더라도 굉장히 차갑고 무섭습니다.

그건 수녀들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본당에 많은 수녀님들이 지나갔을 거예요.

어떤 수녀님은 이목구비는 뚜렷하고 예쁜데 곁에 갈 수도 없지요.

찬바람이 쌩쌩~~ 불어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톡톡 쏴부치기 일쑤입니다.

잘되던 공동체도 그 수녀가 들어가서 한 번 휘저으면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어요.

어떤 수녀님은 참 호박덩어리 같이 생겼어도 그렇게 엄마 같고, 누님 같고 언니 같이 편해!

본당이 깨져도 그 수녀님만 들어가 휘저으면 본드가 되어서 다 붙어.

사랑이 많아, 그저 다 주고 싶어가지고~ 말 한 마디 하더라도 그렇게 정이 있어.


그 사람의 마음은 대개는 얼굴에 나타난다고 그러지요.

다 맞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에 그대로 드러날 때가 많아요.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요.


오늘은 신학생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어요.

각 교구마다 신학교가 생겨서 많은 신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어요.

모든 인성 속에 묻어 있는 상처가 다 깨끗이 치유가 되어서사제가 되어서 나아갈 때  한 해 한 해....

기쁨의 삶으로, 정말 착한 목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날이에요.


여러분 가운데 자식이 신학교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아들이 신부인 사람도 있을 겁니다.

‘오늘 내 아들신부에게 상처준 것 생각이 난다!’

성모님한테 매달리면서

‘내 아들 신부 나한테 받은 상처 때문에 신자들에게 상처 주는 사람 되지 않도록.....’ 

정말 간절히 기도하세요.

오늘 매괴성모님께 그런 아들 있으면 봉헌 하세요.

“할머니 울지 마셔~~ 나도 슬퍼져!”


오늘 은퇴한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사제, 수도자, 그 다음 신학생, 은퇴신부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은퇴하기 전에는 본당신부님들, 다른 곳에 가셔도  교구행사 때마다 이렇게 뵈어요.

은퇴하고 난 다음에는 어디 아파트에서 사신다고 이야기만 들을 뿐이지...뵐 수가 없습니다.


제  여동생이 밑으로 둘이에요.

제가 고등학교 때 막내를 엄마가 낳았어요.

그래서 저와 막내는 나이차이가 많아요.

내가 신학교 다닐 때 그 여동생들이 하나같이 그랬어요.

“시집 안 가고 오빠 따라서 수녀원 갈 거야.”

그 마음이 고등학교 2학년 될 때까지는 계속 이어져서 정말 수녀원 갈 것처럼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막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은퇴신부님 양로원 가더니 완전히 바뀌었어요.

갔다 오자마자 “나는 정말 시집 잘 갈 거야.”

가보니 은퇴신부님 치매가 와서 똥오줌을 벽에다 바르고, 밥 해 주는 여자가 신부님을 구박하고 ...

그걸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우리 여동생 둘이라도 시집 잘 가서 우리 오빠 둘이 사제로 살다

은퇴하면 우리가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

얼마나 신통해!

내가 그 앞에서는 “아이고야, 니들 말 들으면 내 눈물이 난다~ 내 걱정 하지 말고 수녀원 가라.”

문제는 시집은 잘 갔는데 오빠 용돈도 한 번 안 줘.^^


교구마다 은퇴신부님들 있을 겁니다.

은퇴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한평생을 목자로 살았지만 나중에는 신자들 기억속에서조차도 다 잊혀지고

세상 떠날 때 신문에 한 줄 나는 것으로 끝나요.

은퇴한 신부님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일부러라도 맛있는 것 사다드리고, 어깨도 좀 주물러 드리고...

아들 딸 노릇 해드리세요.

제가 나중에 은퇴하면 저에게도 찾아오세요.

오늘 착한 목자주일 전 세계 사제 수도자, 신학생, 은퇴사제들을 위해 매괴성모님께 전구합시다. 아멘

        ♧ 2009년 5. 3일-성소주일(느티나무 신부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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