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8 조회수470 추천수3 반대(0) 신고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루카 9,46-50)

-유 광수신부-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 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오늘 복음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마르코 복음을 보면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논쟁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9,35)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사람이란 첫째가 되는 사람이다. 첫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늘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다른 이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하고,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더 좋은 옷, 더 좋은 집, 좋은 차를 가져야 하고, 더 아름다워야 한다. 한 마디로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자기가 첫째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사람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서로 논쟁을 하는 제자들 앞에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세우신 다음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선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가장 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 당시 예수님이 내세운 어린이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이란 아주 하찮은 존재이며 사람이기는 하지만 "가장 작은 사람"이다. 가장 큰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에게 있어서 어린이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귀찮은 존재요, 없이 여길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제자들의 생각과는 정반대 되는 생각이다.

그럼 어린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어린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가장 작은 어린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장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자기가 첫째가 되는 데 필요한 사람이지 어린이처럼 하찮은 존재, 가장 작은 존재가 아니다.

 

그럼 누가 어린이를 받아들이는가?
어린이를 사랑하는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어린이를 자기의 경쟁의 상대자로 보지 아니고 사랑하는 존재이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는 절대로 높아지려고 하지 않는다. 부모는 어린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허리를 굽혀 자기 자신을 낮춘다. 받아들이려면 무엇보다 자기 마음을 열어야 하고 손을 내밀어야 하고 가슴을 벌려야 한다. 즉 어린이가 들어 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를 낮추고 어린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어린이가 편안하게 안기기 위해서 어린이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
빈 잔 즉 잔이 비어 있어야 물을 담을 수 있고 손을 벌려야 상대방을 안을 수 있는 법이다.
하찮은 어린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겸손함을 의미한다. 겸손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어린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가장 작은 사람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는 것이다.

제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가장 큰 사람이란  늘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을 상징한다. 즉 자기가 가장 높고, 많은 것을 알고, 높은 자리에 있고, 가장 좋은 옷과 좋은 차와 좋은 집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기를 섬겨야 한다. 자기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자기를 섬겨야 한다. 자기가 하느님인 사람에게 어린이와 같은 하찮은 가장 작은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모욕적인 일이고 창피한 일이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자기를 높여주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오늘 복음은 공동체 안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다른 삶과 함께 생활할 때 어떻게 인간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웃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서 자기가 가장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경쟁의 상대자로 생각하고 그들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고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투쟁한다면 진정한 이웃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다 내가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할 나의 적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서는 절대로 공동체가 일치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으며 평화를 가질 수 없다. 끊임없이 싸워야 하고 미워해야 하고, 자기는 잘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잘 안 되기를 바라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는 다른 사람이 경쟁의 상대자가 아니라 사랑해야할 사람들이며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보다 더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 수록 더 많은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 예수님은 모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의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2,6-8)

가장 큰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아니 인간은 누구나 이런 원의가 있다.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그러나 정말 가장 큰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올바로 알아야 한다. 가장 큰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결국 추한 인간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4 번이나 "받아들이다"라는 말씀을 사용하셨다. 오늘 우리도 4 번쯤은 예수님이 가르쳐준 가장 큰 사람이 되려는 지향을 가지고 그 방법에 의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날이 되도록 하자. 내가 속해 있는 가정, 공동체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