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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29 조회수1,082 추천수1 반대(0) 신고

 

 

사람은 똑같은 현상을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만의 소신과 삶의 철학이 대부분 있습니다. 사차원적인 세계를 초월하지 않는 이상 개개인의 생각은 존중해줘야 합니다. 미에 대한 기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조선초기에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일화에 나오는 돼지 이야기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주일 미사에서 한 자매님을 뵈었습니다. 제가 전에 몇 번 언급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세상 연세로 보면 일흔 둘이시지만 제 눈이 이상한지는 모르겠지만 제 눈엔 오늘 미사 때 멀리서 뵈었는데 제가 어린 나이에 50대 중반 정도의 아주머니에 대한 이미지를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데 마치 그런 이미지의 모습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제 나이에서 보면 가당치 않습니다. 제가 이제 쉰이기 때문입니다. 근데 미사 때 오늘 옷차림이나 봤을 땐 그 정도로 젊게 보이십니다. 모르겠어요. 9년이라는 세월 동안 봤을 때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저렇게 감정의 기복이 없이 한결같을 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온화하고 정감이 많이 가는 분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분 스스로 말씀하시는데 어떤 경우는 문자에서 ‘할머니’라는 말씀을 하실 때도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는 할머니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옛날하고 달라서 요즘은 염색도 하고 여자분들은 약간 화장도 하니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저도 작년에 어떤 경우는 문자에서도 제 눈에는 미스코리아보다도 더 이쁘게 보이신다는 말씀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분은 그런 말씀에 민망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마음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건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가지고 미를 판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만약 미추로 굳이 구분한다면 드러나는 미도 있지만 숨어 있는 미도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사람들은 외부에 노출된 모습만을 가지고 미를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만을 본다면 어떻게 미스코리아보다도 이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솔직히 그런 모습만을 본다고 해도 제 눈에는 그분이 더 이쁘게 보입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이런 저의 마음에 동의하시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70대이신 분인데 하면서 저의 정신세계가 4차원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저는 만약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제가 가진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조금 전에도 표현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땐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 발에 마리아가 고급 향유를 붓습니다.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립니다. 이 모습을 본 유다는 예수님께 부은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게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보면 마치 예수님이 사치스러운 삶을 사는 모습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물론 뜻은 좋습니다만 실제 유다는 좋은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고 복음은 전합니다. 유다는 그 향유가 돈으로만 보였던 것입니다. 같은 향유인데 마리아에겐 그 향유가 단순한 향유가 아니였습니다. 물론 복음사가의 뜻을 배제하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마리아가 그렇게 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존경과 섬김의 표시였을 겁니다. 이처럼 유다와 마리아의 모습에서 한 가지 모습에서도 생각하는 관점이 완전 극과극을 달립니다. 이제 목요일이 되면 성유축성 미사가 거행될 겁니다. 이때 대부분 성당에서 성사 때 사용하는 기름 같은 것을 축성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병자성사 때 사용하는 기름도 따로 별도로 구분돼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한번 어떤 신부님의 실수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세례 때 쓰는 기름과 병자성사 때 사용하는 기름이 바뀔 뻔했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성경적인 의미는 오늘 복음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 향유는 마치 병자성사 때 도유하는 기름처럼 여겨집니다. 복음 7절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장례에 사용할 수 있도록 남겨두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그런 느낌도 들긴 합니다.

 

이젠 예수님의 입장에서 향유를 한번 바라보면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요?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 향유는 단순히 고급 향유가 아니라 죽은 신체에 도포하게 될 그런 향유입니다. 예수님이신들 아무리 고급향유라고 해도 그 향유를 마리아가 발라줄 때 기분이 좋으셨을 것 같지는 않았을 겁니다. 예수님은 모르긴 몰라도 예수님이 그걸 마치 당신의 십자가처럼 그 상황이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리아는 아마 이런 뜻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암시하는 뜻에서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때 자기도 예수님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실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물론 저도 예수님이 그처럼 생각하셨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묵상에 불과합니다.

 

유다처럼 세상에 눈이 팔려 있으면 구세주는 둘째치고 그래도 스승이라고 하면서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았는데 인간적으로도 스승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배은망덕한 행동을 드러낸 것입니다. 마리아도 돈이 철철 넘쳐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여인에게 있어서 향유는 아마 각별한 존재일 겁니다. 고급 화장품과도 같은 것이지 않을까요? 그런 걸 자신을 위해 사용한 게 아니고 예수님께 봉헌했다는 점에서 우리도 마리아의 그런 마음은 닮았으면 합니다.

 

오늘날 기준에서 마리아를 바라본다면 정신 나간 여인처럼 아마 4차원 사람이라고 조롱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제가 일흔이 넘은 자매님을 미스코리아만큼이나 이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수님만큼은 직접적인 표현을 하시진 않았지만 아마도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며 예수님의 조력자인 여인으로 기억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는 판단이라는 이런 개념으로 접근했다기보다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소신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준과 잣대로 생각하지 말고 좀 더 타인의 생각이 자신과 터무니없이 동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는 걸 묵상해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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