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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종 시의 후회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10 조회수682 추천수2 반대(0) 신고
 우리 가족의 한 친한 친구가 산업재해(産業災害)로 죽었다는 비보를 들었다. 이런 급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나는 전화를 받고 기도하였다. 나는 그의 희생을 위하여, 그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으며, 믿음과 소망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 사람의 장례식 때 내가 해야 할 말을 생각해낼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였다.
 
 이런 죽음을 접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무 힘 없이 무의미하게 죽어 간 영혼을 어떻게 위로해야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가 있을까? 어떤 말을 해야 용기를 가질 수가 있을까?
 
 다행히 우리는 믿음의 말을 갖고 있다. “그는 하느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우리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끝이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영원히 계속되는 나라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찾아 순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아주 함축적인 말이고 진실이 담긴 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는다. 판에 박힌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지 모른다. 믿음을 갖고 있다면 하느님의 돌보심을 이미 잘 알고 있고 마지막 희망은 영원한 생명이며 부활할 것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믿음이 없다면 죽음을 앞두고 하는 말로서는 적절하지 않아 아무 희망도 주지 못한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찾는 위로와 용기는, 말로써는 되지 않고, 함께 있어주고 껴안아 주어 조용히 고통과 무력함을 함께 느끼게 할 수밖에 없다. 이를 말로 표현한다면 “나 여기 있어요. 안심해요! 아무 말도 못 하겠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바라지요?”하는 뜻일 것이다. 더듬거리며 의미 있는 말을 하지 못할 때나,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두서없이 조용히 말할 때에는 비록 말을 하지 못했더라도 이미 그 안에는 서로 위로와 희망을 주고 받는 생명선(生命線) 역할을 하는 공감(共感)이 들어 있다. 나는 이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가장 깊이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무기력함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장례식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말을 할 필요가 거의 없는 것이다. 굳이 말을 해야 한다면 죽은 사람과 우리들의 관계를 분명히 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하고 즉 모든 오해를 풀어 줄 수 있는 말을 해야 하고, 용기와 믿음을 주는 말을 해야 하고, 용기와 믿음을 찬양할 수 있도록 하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의 선종(善終) 시에 무슨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우리의 소망이 생물학적인 생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한다. 심리학자이며 가톨릭 신부인 존 포웰(John Powell, *역자주; 우리나라에서는 <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는가?>, <내 영혼을 울린 이야기>, <그분의 손길>, <행복의 조건> 등의 많은 저서가 번역되어 있다)은 인생에는 단지 두 비극밖에 없지만 젊어서 죽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였다.
 
 세파에 시달리며 살면서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과 풍파에 시달리며 살면서도 사랑하는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가 잠재적 비극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직면하면 누구나 항상 뼈저리게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살면서 지었던 죄나 결점 때문에 영원히 용서 받지 못할 것이라는 면에서의 후회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살지 못했고, 사랑을 표현하지도 못했고, 감사하지도 못했고, 좋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화해를 하지 못하고 미진한 채로 죽는 것을 후회하는 것이다. 죽음과 직면하여 가장 바라는 것은 화해할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하는 것과 진심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말을 해야 한다면 이 두 가지를 말해야 한다. 죽음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살 것과 감사하고 특히 화해하고 살 것을 말해 준다.
 
 이 세상에서는 죽음보다 더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을 잃고 온 세상을 얻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하고 말씀하시면서 이를 경고하셨다. 영혼을 잃는다는 것은 관심을 잃고, 양심을 잃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고, 화해할 희망을 잃는 것이다. 슬퍼하거나 이기심 때문에 또는 정직하지 못하여 이렇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양심과 사랑과 화해하려고 하는 열망만 남고 다른 것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나는 암으로 죽어 가고 있는 젊은 자매 캐시(Cathy)의 침대 곁에 서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를 보고 말하였다. “참 힘들군요. 그러나 견딜만 해요.”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죽었다. 우리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그녀가 몇 마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녀가 잃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도 죽지 않은 우리들의 죄의식을 덜 수 있는 말을 하도록 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항상 누구나 깊은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이 할 수 있었거나 했어야 하지만 또 하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보다도 더 그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구부려 놓은 선(線)을 바르게 하시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 인간의 좌절을 채워주시는 방법도 알고 계신다. 또 인간의 본성, 사고, 병, 복잡성, 죄를 이해하고 계신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느님을 위하여 믿음 안에서 살면 된다. 하느님께서는 이해심이 많고 인정이 많고 전능하시다. 우리의 생명은 영원하다. 우리는 이것을 찬양해야 한다. 특히 죽음을 앞두고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캐시와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마주 보며 말해야 한다. “참 힘들군요. 그러나 견딜만 해요.
 
 사랑, 양심, 더불어 사는 삶, 화해를 위한 열망 안에 생명이 있고 희망이 있다. 사람은 죽지만 이러한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롤하이저 신부님의 묵상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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