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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행복하여라, 가난한 이들!'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10 조회수626 추천수3 반대(0) 신고
 <행복하여라, 가난한 이들!>(루가 6, 20-26)
 -유 광수신부- 

 

오늘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인가를 말씀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은 늘 우리에게 빛이다. 즉 우리가  어떻게 살면 행복하게 되고, 불행하게 되는 가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복음은 계시이다. 즉 하느님의 뜻을 밝혀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하느님이 밝혀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느님이 생각하시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밝혀주는 복음을 알아야 하고 이런 의미에서 복음은 반드시 모든 인간이 알아야 할 진리이고, 진리이기 때문에 그 진리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이고, 그 진리의 길을 살아갈 때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복음을 모르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신앙인들은 이런 새로운 진리를 알고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보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행복한 곳으로 가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생명의 삶을 사는 것인지를 잘 모르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을 알고 진리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야 말로 참된 인생의 길을 안내 해주고 보여주는 빛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을 증거하는 증거자들인 것이다. 

 

하느님이 밝혀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신비를 깨닫지 못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전혀 낮선 삶이며 새로운 길을 걷는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일반인들의 가치관과 행복관은 인간적인 사고, 인간적인 지식과 이 세상에 국한된 사고 안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 행복관은 하느님이 알려 주셨기 때문에  깨닫게 된 새로운 세계요, 새로운 가치관이요, 행복관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오복(五福)이라는 것이 있다.
壽, 富, 康寧, 攸好德, 考終命이다.
수는 장수하는 것이요, 부는 재물이 풍부한 것이요, 강녕은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이요,유호덕은 도덕 지키기를 낙으로 삼는 일이요, 고종명은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행복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재물을 축적하려고 하고, 장수하기 위해서 몸에 좋다는 약이나 건강 식품을 찾아 먹는다. 몸에 좋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그러나 이런 행복관도 시대에 따라서 변화한다. 요즈음은 도덕을 지키는 유호덕이나 제 명대로 사는 것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고 누리며 사는 삶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아무튼 시대에 따라 가치관과 인생관도 변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예수님이 제시한 행복한 이와 불행한 이에 대한 가르침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한 이들 즉 가난한 이들, 굶주리는 이들, 우는 이들,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을 당하는 이들이 행복하다는 말씀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불행하다고 말씀하신 부유한 이들, 배부른 자들, 웃는 자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불행하다고 말한 것들은 모두 우리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우리가 왜 예수님이 이런 사람들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했고 또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했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아무리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가치관이나 행복관이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관과 불행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고 바라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행복관 즉 많은 재물, 우리의 건강, 장수 등일 것이다.

 

또 우리가 기도를 하더라도 그 목적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나의 건강을 위해서, 재물을 풍부히 갖을 수 있도록, 출세를 위해서, 편한 마음으로 오래 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예수님이 제시한 복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럼 간단하게나마 예수님은 왜 가난 이들, 굶주린 이들, 우는 이들, 모욕을 받는 이들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하셨는가?.

 

"행복하여라"는 말이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다. 그냥 행복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한 이들"이라고 구체적으로 어떤 이들이 행복한 이들인지를 지적해서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제시한 행복관은 영적인 차원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즉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살고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지 그 방법을 제시해준 것이다.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존재해야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려면 무엇보다도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란 나약한 사람, 청하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 의탁하는 사람을 말한다.

영적인 생활을 하려면 무엇보다 영적인 것 즉 하느님의 것을 청하고, 하느님께 의탁해야한다. 부자는 이런 것을 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배부르기 때문에 청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굶주리는 이들이란 영적인 것, 즉 하느님의 것에 굶주린 사람을 말한다. 우는 이들이란 영적인 것을 청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고 자기의 잘못된 삶에 대해서 뉘우치고 우는 이를 말한다.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쫓아냄과 모욕을 당하는 사람이란 올바른 말과 행동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편 불행한 사람이란 영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삶에 안주하고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칸트는 "행복한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행복을 직접 목적으로 삼지 말고 행복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 행동을 하고 또 그러한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신비가인 에카르트는
"하느님께 도달하는 과정은 영혼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묻은 그 무엇을 털어내는 것이다"라고 했고 가브리엘 마르셀은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병고와 가난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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