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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23 조회수1,191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10월 23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Do you think that I have come to establish peace on the earth?
No, I tell you, but rather division.
(Lk.12.51)
 
 
제1독서 에페소서 3,14-21
복음 루카 12,49-53
 
 
우리 사회 전체가 정말로 바쁘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모든 분야에서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름길 찾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아요. 매체들의 광고들을 조금만 유심히 보십시오. 일주일에 20킬로그램 감량을 보장한다는 기적의 다이어트 약품, 지금 당장 놀라운 효과를 낸다고 말하는 가전제품, 주말이 지나기 전에 꿈에 그리던 이상향을 만나 결혼에 골인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결혼 정보 업체, 얼마 안가서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 같은 금융상품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며칠 내에 이룰 수 있게 해주겠다는 광고들을 얼마나 쉽게 접할 수 있습니까? 또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전 세계의 위기가 단 몇 분 혹은 몇 시간 만에 해결되면서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 모두가 지름길 찾기에 점점 중독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 지름길만 찾으면 편하고 쉽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요. 그러나 그 지름길이란 정말로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말했던 명언이 문득 떠올려집니다.

“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에는 지름길 같은 것은 없다.”

하루아침에 성공을 한 것 같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지름길을 발견하고 편한 삶을 누리는 것 같지만 이 사람들에게 하루아침이란 없었습니다.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힘들고 어렵던 과정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하루아침에 성공을 이룬 것처럼 앞 다투어 말하지요. 그러나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성공이 아닌, 하루아침에 발견한 성공이 아닐까요? 즉, 오래전부터 그 성공에 걸맞은 수준으로 노력을 했기에 소위 성공이라는 가치를 얻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성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왔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할 때, 지금 이 순간에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이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과 차이를 보이는 것이지요.

앞서도 말씀드린 지름길만을 찾는 사람들, 편한 길만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태반인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꾸준히 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반발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 이해됩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세상 사람들의 모습처럼 편한 지름길만 찾다보면 불의와 타협해야만 합니다. 그러다보면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타협하는 불의와 반대의 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과는 평화를 이룰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과의 분리를 가져오겠지요.

“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에는 지름길 같은 것은 없다.”라는 말씀을 다시금 기억하면서, 꾸준히 지금 이 순간을 그리고 지금 이 자리를 주님의 뜻에 맞게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큰 소리 내어 읽어 봅시다. “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에는 지름길 같은 것은 없다.”




‘NO’를 사랑하라(보 피버디, ‘아주 단순한 성공 법칙’ 중에서)

내가 ‘노(NO)’라는 단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때는 대학 입학 원서를 낼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윌리엄스 대학에 지원했다. 얼마 뒤 대학 측으로부터 우편물이 도착했다. 그 안에는 합격 통지가 아닌 좋은 글귀들이 적혀 있었는데,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노’였다.

나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계획을 세워야 했다. 대담하고, 직접적이며,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우선 코넬리우스 레이포드라는 이름을 가진 입학 심사 담당자의 연락처를 알아낸 뒤 전화를 걸었다.

“제 이름은 보 피버디입니다. 저는 귀 대학의 입학 거부를 거부합니다.”

“뭐라고 하셨죠?”

“외람된 말씀이지만, 입학 심사 위원회에서 실수를 하신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과 함께 그 실수를 바로잡고 싶습니다. 저는 윌리엄스 대학에 꼭 입학할 겁니다. 내년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요. 윌리엄스 대학에서 받아줄 때까지 매년 입학원서를 낼 작정입니다.”

나는 코넬리우스가 나를 도와주거나 경찰서에 장난 전화 신고를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대답했다.

“이런 전화는 처음인 것 같군요. 자,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코넬리우스는 기꺼이 나의 조언자이자 협력자가 되어 주었다. 이후 몇 달 동안, 나는 그와 함께 나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연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듬해 나는 윌리엄스 대학에 재도전했고 특차로 합격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거부 의사를 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성공의 문은 결코 한두 번의 노크로 열리지 않ㅅ는다. 상대방이 ‘노’라고 얘기했을 때 기회의 문을 닫아 버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노’라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노’라고 말하는 그 순간이 바로 상대방의 마음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임을 명심해야 한다. 승리가 눈앞에 온 순간,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때가 바로 ‘예스(Yes)’를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순간이다.
 
 
Eternally - Giovanni Marradi
Westlife - You Raise M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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