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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를 바칠 때마다/묵주기도로 고엽제 후유증을 관리합니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04 조회수591 추천수4 반대(0) 신고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를 바칠 때마다
                                 묵주기도로 고엽제 후유증을 관리합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기도 대신 장미 꽃다발을 바쳤다


▲ 요즘 지니고 있는 묵주들 / 구입을 했거나 선물 받은 묵주 다섯 개를 현재 지니고 있다. 걷기 운동을 할 때, 차 운전을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레지오 회합을 할 때 사용하는 묵주가 각기 정해져 있다.  
ⓒ 지요하  묵주



시월이다. 또 한 해 시월을 나름껏 잘 살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천주교에서는 10월을 '묵주기도 성월'이라고 부른다. '로사리오 성월'로 부르기도 하는데, '로사리오'란 묵주기도를 뜻하는 라틴어이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옛날 한때 묵주기도를 '매괴신공(  神功)'으로, 로사리오 성월을 '매괴성월'이라고 불렀다.  

라틴어 로사리움(rosarium)은 '장미 밭'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로사리오(rosario)는 '장미 꽃다발' 혹은 '장미 화관(花冠)'을 뜻한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에서는 묵주기도를 뜻하는 '매괴신공'이라는 말이 생겼는데, '매괴'는 중국에서 주로 많이 나는 장미과의 낙엽관목으로 향기가 나는 '때찔레꽃'이라고 한다.

묵주기도의 기원은 초기 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하느님께 기도 대신 장미 꽃다발을 바치기도 했는데, 특히 로마 박해시대 신자들은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에 끌려가 사자의 먹이가 될 때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썼다고 한다. 이 장미 화관이야말로 하느님을 뵙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데 합당한 '예모(禮帽)'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 박해를 피한 신자들은 밤중에 몰래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면서 순교자들이 썼던 장미 관을 한데 모아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한가지씩 바쳤다고 한다.

한편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隱修者)나 독수자(獨修者)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성서 '시편'을 50편이나 100편, 또는 150편을 매일 외웠는데,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낱알을 머리에 쓰는 관처럼 둥글게 엮어 하나씩 굴리면서 기도의 횟수를 세었다고 한다. 또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편 대신 '주의 기도'를 그 수만큼 바쳤는데, 수를 셀 때 불편하였기에 나무 열매나 구슬 따위를 노끈이나 가는 줄로 엮어 사용했다.

이런 관습이 '묵주기도'를 탄생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지만, 묵주기도가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되어온 과정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또 '로사리오 성월'이 10월로 설정된 것은 1883년 9월 1일 발표된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에 의해서이지만, 그 기원은 16세기 초 터키 이슬람교도들의 로마 침공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역시 오랜 동안의 역사적 사실과 과정들을 안고 있는 것이기에 여기에서 자세히 소개하기는 어렵다.

천주교 신자들 중에도 의외로 많은 이들이 묵주기도가 성모 마리아님께 바치는 기도인 줄로 잘못 알고 있는데, 묵주기도가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 발달과 함께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되어 왔고, 또 '로사리오 성월'이 성모 마리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묵주기도는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기도가 아니다.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이다.

언어의 기도(口禱)와 무언의 기도(念禱)가 합쳐진 묵주기도는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등 네 묶음으로 나뉘어진 도합 20가지 성서상의 사건과 성서적 신비들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이다. 또 로사리오 성월은 특별히 개인과 가정 성화, 인류 구원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는 달이다.


묵주는 십자가상과 도합 59개 알로 이뤄져 있다



▲ 신앙문집 판매순례 / 대전 용전동성당 윤세병 세자 요한 주임 신부님과 함께. 지난 9월 28일의 모습이다. 수능시험이 코앞에 닥친 고3 아들도 데려와 손을 보태게 했다.  
ⓒ 지요하  순례


천주교 신자로서 일상적으로 묵주기도를 많이 하며 살고 있다. 하느님께 직접 바치는 많은 기도들 외로,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인 묵주기도가 존재하는 사실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묵주는 십자가상과 도합 59개의 알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에는 '1단 묵주'라고 해서 십자가상과 11개의 알만으로 이루어진 묵주도 있고, 묵주 한 꿰미로 네 가지 신비를 차례로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는 '20단 묵주'도 있지만, '5단 묵주'가 일반적이다.

또 요즘에는 십자가상과 열 개의 돌기가 새겨진 '반지 묵주'가 있어서 많은 신자들이 손가락에 끼우고 다니지만, 그것은 묵주 대용으로 사용을 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천주교 신자임을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더 많이 애용된다.

묵주기도는 십자가상을 쥐고 '사도신경'을 바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주님의 기도' 한 번과 '성모송' 세 번, 그리고 '영광송' 한 번을 바친 다음 제1단으로 들어간다. 각 단마다 주님의 기도로 시작을 하고, 성모송 열 번과 영광송 한 번을 하는데, 각 단을 마무리하는 영광송은 묵주 알을 쥐지 않고 한다. 이렇게 5단을 하면 한 꿰미를 다 돌아서 처음의 묵주 알로 돌아온다.

묵주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각 단마다 교회에서 제정한 '묵상' 지향을 상기하는 일이다. '환희', '빛', '고통', '영광' 등 네 묶음으로 나뉘어진 도합 20가지 '신비'들을 묵상 지향으로 상기한다는 것은 앞에서 소개했다. 묵주기도를 할 때 개인이나 단체 별로 '무엇을, 또는 누구를 위해서'라는 지향을 둘 수 있고, 사사롭거나 특별한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많이 하지만, 반드시 각 단마다 주님의 기도 전에 '신비'에 대한 묵상 지향을 상기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이들 중에도 '주님의 기도' 내용을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천주교의 '성모송' 내용은 거의 모르므로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성모송은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리아께 와서 예수님의 잉태를 알리며 한 말에다가, 교회에서 제정한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말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기도를 하는데 사용하는 성물(聖物)인 묵주를 모든 소지품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청년 시절부터 묵주를 늘 몸에 지니고 사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군대 시절 베트남 전쟁에 참전할 때부터 버릇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릿하면서도 즐거운 기억이다.

최근까지 묵주기도는 하루 기본이 40단이었다. 묵주기도를 여럿이 합송으로 하면 한 꿰미 5단에 대개 20여 분이 걸리고, 혼자 묵언으로 하면 보통 15분 정도 걸린다. 나는 매일같이 오후에는 두 시간씩 걷기 운동을 했다. 걷기 운동을 할 때마다 묵주기도를 했다. 그냥 걷기 운동만 하는 것은 무미건조한 일이었다. 걷기 운동도 하고 묵주기도도 하는 것은 일거양득이요,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묵주기도를 하기 위해(하루 기본을 채우기 위해) 걷기 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하느님께 기도하는 기쁨 속에서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걷는 기분을 즐기기도 했다.

한 시간 동안 시오리를 걸으며 묵주기도를 하니 4꿰미 20단이요, 그 길을 돌아오면서 다시 20단을 하니, 하루 기본 두 시간 30리에 묵주기도 40단인 생활을 나는 즐기며 살았다. 베트남 전쟁 고엽제 후유증 환자인 내 당뇨 문제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7일 발생한 태안 앞바다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는 내 일상의 리듬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매일같이 바다에 나가 살아야 했다. 전국 각지의 수많은 성당과 수도회, 단체, 기관들에서 연일 태안성당으로 오는 천주교 신자 자원봉사자들을 바다로 안내하고, 작업 요령을 설명하고, 작업장 배치를 해드리고, 뒷바라지를 하는 일이 내 임무였다. 또 점심 급식 후에는 홀로 남아 작업 뒷마무리를 하고, 떠나는 버스마다 올라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손 흔들어드리는 일을 했다. 그리고 매일 오전에 하던 글 쓰는 일은 밤잠을 줄이며 해야 했다.

그런 생활을 넉 달을 하고 보니 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면역력이 크게 저하된 관계로 세균 감염에 걸려들고 말았다. 결국 흉부외과/정형외과 소관 수술도 받고 44일 동안 병상 생활을 했다.


하느님께 죄송스럽지만 묵주기도를 하며 먹기도 한다


▲ 천수만 들길 묵주기도 / 오늘(3일) 오후에는 모처럼 만에 천수만의 광활한 들판 길을 걸으며 '오체투지 순례단'을 위해, 오체투지 순례단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했다.  
ⓒ 지요하  천수만


기름유출 사고가 터진 때로부터, '기름과의 전쟁'과 병상생활을 치르고 난 후로 석 달 가량이 지난 오늘까지 '하루 기본 두 시간 30리 걷기에 묵주기도 40단'이었던 예전의 생활 리듬을 나는 온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몸이 정상이 아닌 데다가 이런저런 일거리들이 갑자기 많아진 관계로 좀처럼 걷기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예전에는 레지오 쁘레시디움 주회에서 주 300단 이상씩 보고하던 묵주기도도 요즘에는 겨우 100단 정도를 보고한다.

그 100단 정도 보고도 주일마다 대전 등지 도시 성당들을 순례하는 장거리 운전 덕분이다. 퇴원 후 한 달이 지난 8월부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일에는 도시 성당으로 출장을 간다. 지난봄에 출간한 내 '회갑기념 신앙문집(신앙시집·신앙산문집·신앙소설집)'을 판매하는 일 때문이다. 기름재난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태안성당 공동체와 지역사회를 위해 판매수익금 전액을 하느님께 봉헌하기에 도시 성당들에서의 판매가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그 출장을 '순례'라고 부른다.                    

논산에서 고교 시절을 지내는 아들녀석 때문에 종종 논산도 간다. 논산이나 대전을 가려면 2시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나는 운전을 하면서 묵주기도를 대개 40단 정도 한다. 더러 다른 봉사자가 운전을 해주기도 하는데, 그때는 묵주기도를 별로 많이 하지 못하지만, 내가 직접 운전을 할 때는 운전 시간만큼 기도 실적을 올릴 수 있다. 그냥 운전만 하기는 너무 지루하고 쉽게 졸리기도 하고,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 운전을 하면서 묵주기도를 하면, 그것 역시 일거양득이요 일석이조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장거리 운전을 하다보면 껌을 씹는 때도 있고 사탕을 입에 무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묵주기도를 하면서 먹는 일도 한다는 얘기다. 하느님께 죄송스러운 감이 없지 않지만, 하느님도 성모 마리아님도 관용해 주시리라 믿는다.

하지만 묵주기도를 하면서 먹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중단하는 경우도 있고, 잠시 미뤘다가 먹는 경우도 있다. 지난 주일(9월 28일) 대전 용전동성당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아내가 내미는 껌을 사양하며 "잠시 후에"라는 말을 하자 아내는 이내 내 말뜻을 알아차리고 껌을 도로 통 안에 집어넣었다.

언젠가 가족 모두와 함께 나들이를 할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서산으로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보러 갈 때였지 아마…. 그때도 옆 좌석의 아내가 건네주는 껌을 입에 넣고 몇 번 씹다가 깜짝 놀라 냉큼 뱉어버렸다. "왜 그래요? 껌에 뭐라도 묻었어요?"라고 아내가 묻는 순간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뒷좌석의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아빠가 방금 껌을 입에 넣고 몇 번 씹다가 깜짝 놀라서 뱉어버렸거든? 왜 그랬을까? 이유를 알아맞혀 봐. 알아맞히는 사람에겐 아빠가 상금으로 만원을 줄 거야."

아무도 알 리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손에 쥔 묵주를 들어 보이며 다시 말했다.

"힌트를 줄게. 아빠가 운전을 하면서 묵주기도를 하는 중이었거든. 묵주기도와 관련이 있는 일이야."

"아빠는 운전을 하면서 사탕이나 과자도 잡숫지 않나요?"

"그거야 물론이지.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 사항'을 정해놓고, 절대로 먹을 것을 입에 대지 않는 경우도 있단 말야. 그게 어떤 경우일까?"

아이들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기색이었다. 그러다가 대학생 딸아이가 말했다.

"알았어요. '고통의 신비'를 하시는 중이었군요?"

나는 그 날 매우 흐벅진 기분으로 딸아이에게 상금을 주었다. 그로써 내가 운전을 하며 묵주기도를 할 때(묵주기도를 하면서 먹는 일도 하지만), '고통의 신비'를 묵상할 때는 절대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족들 사이에 완전히 공지된 셈이었다.

'고통의 신비' 묵상과 함께 묵주기도를 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님의 고통과 수난에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예수님의 '피땀 흘리심, 매맞으심, 가시관 쓰심, 십자가 지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 이 다섯 가지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묵주기도를 할 때는 마음이 좀더 열중되고 진지해지고 비장해지는 느낌도 경험한다.

장거리 운전이 고달프긴 하지만, 운전을 하면서 묵주기도를 할 수 있기에 고달픔은 오히려 위안이 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건강치 못한 몸으로 주일마다 도시 성당들을 순례하는 고달픔 속에서 예수님 ‘고통의 신비’를 더 많이 묵상한다. 내 고생들을 기꺼이 봉헌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요즘에는 또 한가지 분명한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한다. 지난 9월 4일부터 ‘오체투지 순례’를 벌이고 있는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을 위하여 기도한다. ‘고통의 신비’를 묵상할 때는 더욱 오체투지 순례단과 함께 하는 마음을 지닌다. 조만간 아내와 함께 오체투지 순례단을 찾아뵙고 단 하루 몇 시간만이라도 순례에 동참할 계획을 갖고 있다.

오늘(3일) 오후에는 모처럼 만에 아내와 함께 천수만의 광활한 들판 길을 걸으며 오체투지 순례단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했다.  


2008.10.04 12:06  /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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