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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의 신원과 사명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3-22 조회수1,497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21,4-9

그 무렵 이스라엘은 4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 것 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주님께서 광야에서 불평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 뱀을 보내시어 많은 백성이 죽었는데, 모세가 기도하여 구리 뱀을 매달아 쳐다보면 살아나게 한다.

 

 

 

복음(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21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냐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때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

복음의 전체 문맥; 이 대목은 예수와 믿지 않는 유다인들곧 예수의 적수들이 나눈 대화다.

유다인들의 불신과 몰이해로 인한 팽팽한 대립 가운데서도 예수의 자기계시는 더욱 심화하고 고조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었다”(30)라는 말은 문맥상 모순이다. 하지만 다음 단락 서두의 거의 비슷한 언급을 미루어볼 때, 이 두 단락을 연결하는 저자의 문학적 기교로 볼 수 있다.

21절 

내용상 7,33-34에 언급된 예수의 말을 반복하기 위한 도입구다. 전체 문맥으로는 12 절과 병행하는 구절로서 앞 단락에 연결하는 역할        을 한다. 예수가 떠나간 다음에 예수를 찾게 되면 이미 늦다는 뜻이다.

     

당신들은 ...(나를) 찾아내지는 못할 것입니다.”대신 표현된 내용이다. , 예수 없이는 죽음의 멸망에 빠진다는 뜻으로 유다인들에게           는  위협적이다. 이런 위협적인 말은 세 상의 빛인 예수를 따라오는 자만이 어둠과 죽음의 영역에서 벗어난다는 표현에서도 이미 전         제된 셈이다. 이와 관련지어,“는 어둠과 죽음의 영역으로 빠져버림을 가리킨다.

 특히 는 구원을 안겨다주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배척하는 일체의 모든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죄 속에서란 비구원의 상태나 그 영역을 뜻한다. 이런 상태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은 죽게 마련이다. 하느님의 진노가 그들 위         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빛의 아들들이 되어 빛 안에서 살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핵심적 의도는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 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하는 데 있다.

 

믿지 않는 자는 죽음으로 이끄는 멸망의 세력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 상태로는 예수가 가는하느님의 영역에 이르지 못한다.

 

22절 

예수의 경고를 경청하지 않고 악의로 곡해진다. 지상은 지옥행인데 지옥으로 가겠다는 것인가라는 조롱이다. “생명의 빛을 약속한 예          수를 이렇게 경멸함으로써 그들은 여전 히 죄 가운데머물고 있음을 드러낸다.

 

23절 

예수와 유다인들의의 대립관계가 이원론적 용어, 위에서아래에서라는 강도 높은 표현으로 언급된다. 이 관계는 장애 따위        가 가로 놓여 조정하기 어려운 것으로 시사된다. 예수의 격조높은 말은 유다인들의 조롱과 경멸섞인 말(22)에 대한 역습이 다. 유        다인들은 예수의 자기계시 말씀을 의도적으로 곡해함으로써 자기네 스스로 가 아래에서났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다.

 

24절 

예수는 유다인들에게 더욱 분명히 경고하면서 동시에 구원의 길을 다시 한번 제시한다. 유다인들이 죄들 가운데서벗어날 유일한 길        은 내가 그이다라고 계시하는 예수에 대 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내가 그이다란 표현은 구약성서의 신적 계시의 말로서 예수의 계          시 말씀과 계시사건을 총체적으로 가리킨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종말론적 구원을 계시하고 또 주기위해 예수 안에 현존하시고, 예수는        계시자로서 그런 자기 자신을 드 러내면서 증언한다. 예수의 이런 권위 주장과 증언의 표현은 하느님이 이스라엘 사람 들을 세상의 증          인들로 내세우신 대목과 매우 흡사하다.

 

25절 

유다인들은 예수의 말. 특히 신적 계시자로서의 한 주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으나, 예 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예수의 정체를 파        악하지 못한다.

원문이 명확하지 않아 번역상 어려움이 많은 구절이다. 가장 가능한 직역은 “(나는)내 가 당신들에게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있는 바(그            대로입니다)”, 또는 도대체 왜 내가 당 신들에게 또 이야기해야 합니까?”등이다. 그러나 문맥상 이 구절의 뜻은 마음의 눈을 닫고 원            래부터 거절만 일삼는 불신자들에게 계속 더 설명해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26절 

예수가 더 말을 한다면,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 대해 엄격한 심판밖에 없다는 뜻이다.

예수의 사명은 심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소식을 세상에 올바르게 알리는 데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다.”

 

27절 

유다인들이 예수의 말을 깨닫지 못함을 강조하기 위한 저자의 설명이다.

 

28절 

들어올리다는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에 대해 믿지 않는 유다인들의 책임을 뜻한다. 그러나 들어올려지다는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          진 예수의 죽음을 가리킨다. 이 경우에 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수동태로 언급된다. “사람의 아들은 들어올려져야          합니다.”

 

예수가 십자가상 죽음을 거쳐 아버지께로 간후에 유다인들은 예수가 하느님을 계시했고 하느님의 뜻에 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는 뜻이다. 이 말은 믿지 않은 유다인들의 죄와 심판보다는 구원의 전망에 역점이 있다. , 누가 예수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지 그            리고 예수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은 모를지라도 나중에는 절대로 알게 되어 구원을 얻으리라는 긍정적 의            미다.

 

사실상 예수 십자가사건은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시사건이고 그 구원은 많은 이들을 위한 보편적인 것이다. 따라서 당시 공              동체의 상황을 염두에 둔 저자의 신학사상이 다소나마 반영된 구절로 볼 수 있다. , 예수 십자가사건 이후에도 유다인들이 예수 그            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늦지는 않았음을 강조한다. 이런 의도는 많은 유다인이 예수를 믿었다는 저자의 신학적설명에서도(30-          31) 재확인된다.

 

29절   

파견하신 하느님과 파견된 예수의 결속관계가 십자가사건의 관점에서 언급된다. 하느 님을 위한 증언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 처형에            넘겨지면,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떠나가겠지만, 아버지께서 버려두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사건을 통해              오히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고 세상에 대한 승리를 주실 것이란 의미도 함께 시사된다. 십자가사건에서도 아버지와 아들                이  함께 행하는 계시의 일치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예수가 홀로 있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근거는 아버지께 대한 순종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는 십자가                사건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이 사건은 아버 지께 대한 아들의 사랑 표시이며 세상을 구원하시는 아버지의 의도를 계시하는 행위다.

 

30절    

당시 상황의 보도라기보다는 저자의 신학적 설명이다. , 기적에 바탕을 둔 믿음과는 달리 말씀에 바탕을 둔 믿음을 언급하면서                  예수의 계시 말씀을 믿지 않는 유다인들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동시에 31절 이하의 내용과 연결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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