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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눈먼 베드로 할아버지의 신앙 (성거산지기 신부님 사목단상 2)
작성자김시원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0 조회수576 추천수4 반대(0) 신고
 


성거산지기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님 그림 작품
 
구약과 신약의 만남
 
 -사목 단상(斷想)2-

 

눈먼 베드로 할아버지의 신앙


정목환(베드로) 할아버지라는 분이 계셨다.


이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는 눈이 멀쩡했는데 40대 후반에 불의의 사고로 양쪽 눈을 잃은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항상 지팡이를 두드리고 걸어 다니셨는데, 그에게 몸을 의지하고 길을 이끌어 주는 필수품은 바로 지팡이었다.


냉정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선천적 시각 장애인이었다면 지금 할아버지의 연세라면 모든 감각들이 예민하게 발달하여 다른 감각으로 살아가는데 불편이 덜했을 테지만, 뒤 늦게 앞이 보이지 않게 된 할아버지는 이도 저도 아니었기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40살에 부인을 일찍 여의고 25년 동안을 홀로서기하며 며느리의 그늘 밑에서 살아가던 할아버지에게는 홀아비 신세에 말 못 할 힘겨운 사연들이 숨어있는 것만 같았다. 


집안에서는 유일하게 혼자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세례를 받으셨다고 했다. 베드로 할아버지는 미사를 참석하지 않거나 기도를 소홀히 하면 몸이 아프다고 하실 정도로 신앙이 열렬했다. 


할아버지의 집은 성당에서 7㎞ 떨어진 외딴 산골짜기에 있었다. 이곳은 시내버스가 하루에 세 번 다니는 곳이었다. 버스운행 시간이 미사 시간과 맞지 않아 그 부근에 사는 신자들은 대부분 걸어 다니곤 하였다. 할아버지는 금요일과 주일은 빠짐없이 미사 참례를 하였다. 할아버지는 하루 의 소망이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것이 제일 행복하다고  신앙고백을 하곤 하였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거의 8시간이 소요되는 왕복 길을 걸어 미사에 참여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일요일은 동행하는 신자들의 도움을 받지만 금요일은 할아버지 혼자 지팡이를 의지하며 저녁미사에 참여해야만 하였다.


“할아버지! 금요일에는 미사참례 안 해도 되요. 주일날만 오세요.”


주위의 많은 신자들이 할아버지 때문에 늘 걱정을 하고 있다고 하여도 할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어느 날인가는“어두운 밤길을  걷다가 다치시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무심코 던진 말에  할아버지는 “나는 낮이나 밤이나 어두운 것은 마찬가진 데요.” 라는 말을 하여 한바탕 웃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분에 대한 염려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할아버지를 차에 태워 드리기도 했지만 워낙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결백한 성품인지라 극구 사양하는 할아버지와 다툰 경우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미사참례 오시는 금요일 밤은 걱정이 되어 전화로 귀가 여부를 확인해야만 했었다.


누가 뭐라 해도 할아버지는 마치 ‘그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코 5,28절) 라는 성서말씀대로  오직 주님께만 의지하고 신뢰하는 간절한 구원신앙이 몸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한(恨)많은 할아버지의 지난날의 얽힌 사연들을 상상해보면, 그 분의 앞뒤를 가리지 않는 막무가내의 고집스런 신앙이 이해가기도 하였다.


주일 오전 9시쯤 되면 어김없이 성당 정문에서부터 할아버지의 지팡이 더듬는 소리가 들려온다. 똑 똑 똑. 또 옥 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가끔은 지팡이로 바닥을 획 긋는 소리도 들린다...... 이는 베드로 할아버지가 오시는 소리다. 나는 지팡이 소리가 나면 뛰어 나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사제관으로 안내를 한다.


추운 겨울에는 사제관 응접실은 먼 거리에서 오는 신자들의 대기 장소가 되어 버린다.  베드로 할아버지가 들어오시면 모두 일어나서 한마디씩 한다.


“할아버지 오셨어요?”, “할아버지 잘 지내셨어요.”인사를 하며 격려 해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베드로 할아버지는 귀가 비교적 괜찮은 편이라 소리만 들어도 누군가를 알아맞히곤 하였다. 베드로 할아버지가 오시면 차(茶) 파티가 벌어진다. 추운 날씨에는 따뜻한 차 한 잔이 온 몸을 녹이는데 제일 좋다.


주일이면 시골 신자들은 버스 운행시간이 맞지 않아 일찍들 성당에 오는 편이다.  성당에 오면 여름에는 나무 밑에 앉아 이야기판을 벌린다. 목소리들이 커서 주위에서 들으면 꼭 싸우는 것 같다. 그중에서 베드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제일 크다.  이야기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할아버지는 말씀도 잘하셨다.  


장마철이 지난 후 언젠가는, 할아버지께서 성당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도랑에 빠져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신 적이 있다. 마침 지나가던 젊은이가  건져 주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였다. 그 후에도 할아버지는 성당에서 집에 가시다가 헛발을 짚어 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어 석 달 동안 기브스를 하며 많은 고생을 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누가 무어라 해도 그 어떤 희생을 겪어도 일편단심 할아버지의 신앙과 삶은 변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신앙은 많은 신자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하였다. 너무 멀어서 성당에 못나오겠다는 신자들의 투정은 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긴다고 하였다.


베드로 할아버지를 생각 할 때마다 시편 23장 4절이 떠오른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하여도 재앙이 두렵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인생의 어둔 밤에 우리가 의존해야 할 유일한 지팡이는 하느님의 손에 있는 지팡이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고통의 순간에 하느님의 지팡이가 아닌 다른 지팡이에 의존해서 일어서려 애쓰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느님의 지팡이에만 의지하여 끊임없이 성당에 다니시는 베드로 할아버지의 지팡이야 말로 바로 주님께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손이리라.


이제는 들릴 리 없는 할아버지의 지팡이 소리가 가끔 귓가를 맴도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주일이 되면 지금도 베드로 할아버지의 묵직한 지팡이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http://cafe.daum.net/sgm2008  성거산 성지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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