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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주일/과연 나는 보았다./글:이 승남 신부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19 조회수470 추천수4 반대(0) 신고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 1,29-34)

“과연 나는 보았다.”


어느 날 한 노인이 강을 건너려고 서 있었습니다. 날씨는 추웠고 강에는 다리가 없었기 때문에 노인은 무엇인가를 타고 그 강을 건너야만 했습니다.

노인이 오랫동안 강가에 서서 기다리는데,마침 말을 탄 사람들이 줄지어 지나갔습니다. 네 번째가 지나가고 다섯 번째 말을 탄 사람이 지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노인은 여섯 번째 말을 탄 사람에게로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나를 저쪽까지 좀 태워다 주실 수 있겠소?” 그러자 그 사람은 선뜻 말했습니다.

“예, 타시지요.” 강을 건넌 후 노인이 말에서 내리자 기사가 물었습니다.

“노인장께서는 왜 저의 말을 태워 달라고 하셨습니까?”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앞선 사람들이 타고 있는 말은 크고 건장하여 안심할 수 있었지만, 말 주인의 눈을 보았을 때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타고 있는 말은 보잘 것 없어 보였으나, 당신의 눈을 보고는 금방 사랑과 동정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나를 건너편까지 태워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진실된 협조자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보이는 것을 바라보고 믿는 육적인 눈이 아니라, 그 이면의 것을 볼 수 있는 눈 즉, 영적인 혜안(慧眼)을 갖추고 있어야 할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혜안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협조자를 잘 알아볼 수 있을 것이며,그를 따를 때 안전하게 하느님 나라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 29)라며 예수님께서 구원자임을 한눈에 알아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처음부터 그러한 혜안이 생긴 것이 아니라,“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일러 주셨다.”(요한 1, 33)라고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가난하게 고행을 하면서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삶 안에 놓여있는 여러 가지 고통을 광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며 살아갈 때, 그 안에서 “하느님의 어린양”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언하며, 예수님을 따라 그들과 함께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건너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 34).

- 이 승남 신부 -

.................. † ...................



기 도

그리스도여, 제 오른편에 오소서.
그리스도여, 제 왼편에 오소서.
당신은 저의 힘
당신은 저의 평화

자리에 누울 때도
앉거나 서 있을 때도
그리스도여, 함께해 주소서.

깊은 곳에서도
높은 곳에서도
넓은 곳에서도
그리스도여, 함께해 주소서.

저를 기억하는 이의 마음속에
제 말을 하는 이의 입술에
저를 바라보는 이의 눈에
제 말을 듣는 이의 귀에
그리스도여, 함께해 주소서.

당신은 주님
저의 구세주이십니다.

아멘.

스마트 NO! 바보 OK!

김수환 추기경님은 자신의 자화상을 이렇게 그리셨다. “나는 바보야!”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린 장기려 박사도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나 바보야.” 톤즈의 성자 이태석 신부를 두고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바보 신부, 아프리카는 왜갔어?” 이분들이 정말 바보이실까? 왜 이분들은 덜 떨어진 사람, 등신처럼 사는 바보가 되셨을까? 본래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이는 것(大智若愚)일까?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보는 누구이실까? 어떤 바보이실까? 오늘 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소개해 주신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하느님이신 분께서 어린양이 되시다니……. 그까짓 인간의 죄 때문에 목숨까지 바치시다니……. 바보대왕 예수님?

대한민국은 갈등으로 사회가 뜨겁다. 계층, 이념, 세대, 지역, 노사간의 갈등이 대표주자이다. 종교인이 늘고 있다는 대한민국 사회가 왜 이럴까? 혹시 신자인 우리가 바보스럽게 살아서가 아닐까? 아니면, 우리가 바보스럽게 살지 못해서가 아닐까? 하늘에 영광, 땅에 평화를 선물로 주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찾으신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에게로 초대하신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 받은 이는 복되도다.” 하느님 어린양의 성찬에 참여한 이가 복된 이유는 무엇일까? 자비와 평화를 입은 또다른 어린양이어서가 아닐까? 갈등왕국에 파견된 세상의 어린양이어서가 아닐까? 그런데 과연 우리가 하늘에 영광이 되고 땅에 평화가 되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될 수 있을까?

김수환 추기경, 장기려 박사, 이태석 신부와 같은 어린양들은 그 힘을 어디에서 받은 것일까? 하느님 어린양의 자비와 사랑에서 얻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기도드린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고 평화를 주소서.”

하느님의 어린양께서 희생으로 이룩하신 하느님 나라,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스마트한 갈등왕국일까? 아니면 유다인들의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 어리석어보이는 꾀도 없고 실속도 못 차리는 바보 왕국일까? “주님, 제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성체를 모시는 자신에게 외쳐보자.

“스마트 NO! 바보 OK!” ............◆

[말씀자료 : 이진호 신부(대구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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