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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3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21 조회수481 추천수3 반대(0) 신고

 

한상기님의 오늘의 묵상 오늘의 묵상입니다. 지금 이 땅에는 사회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증오심이 표출될 때마다 우리 사회는 경악하고 있지만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제 큰 탓 이옵니다!'하며 우리 모두가 가슴을 쳐야 할 일입니다. 어제 강남 논현동 방화 살인사건은 사회 양극화로 인한 증오심 때문에 생겨난 묻지마 살인으로 이런 살인은 불특정 다중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서열위주의 입시제도가 반복되는 한,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는 잘못이 계속되는 한, 분배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는 한, 신분 세습이 그대로 이어지는 한, 그리고 또,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바로 우리 자신이 불특정 다수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敬天愛人의 마음이 더욱 그립기에 오늘 말씀을 통해 이를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섬김과 모심'으로 요약해 봅니다. 우리 신앙은 아빠 하느님을 섬기고 모시는 것으로 요약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섬김과 모심'으로 이렇게 줄여 보지만 이도 다섯 글자나 되므로 저는 세 글자 이상은 잘 기억하지 못하여 시천주(侍天主)로 두 글자를 더 줄여 기억하려고 합니다. 侍天主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신 분은 동학을 창시하신 수은 최제우선생님입니다. 수은 선생님은 우리 천주교를 깊이 연구하신 분으로 여겨지는 대목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선조들의 학문적 탐구에는 언제나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도 선교사에 의해 전래된 것이 아니라 당시 실학에 관심이 많은 이벽 선생님 등 여러 유학자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므로 주어사와 천진암 등에서 열린 강학은 세계 천주교 선교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우리만의 자랑이고 긍지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을 글이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의 대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인가에 대하여 알려 주셨지만 그 많은 말씀으로도 이를 설명할 길이 없어 비유로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섬김과 모심을 묵상할 때마다 제 나름대로 생각해 보는 것은 제가 제 아들에게 바라는 것이 아빠 하느님이 바로 제게 바라는 것이며, 저희가 저희 부모를 극진한 마음으로 섬겨야 하듯이 그런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겨야 바른 섬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그러기에 제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하느님이 원하는 자녀가 될 수 없으며 제 부모에게 불효하면 하느님에게도 불효를 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보곤 합니다. 예수님은 충과 효를 다하여 아빠 하느님과 부자유친(父子有親)의 관계에 이르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하느님을 모시고 섬기는 첫 걸음은 우리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해야 하는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불경스럽게도 하느님께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하느님, 저희 부모에게는 불효하고 불쌍한 이웃도 멀리하고 당신만을 찬미하며 섬길까요, 아니면 당신을 늘 사모하며 당신에게 드릴 것을 저희 부모와 불쌍한 이웃들에게 드려도 될까요? 이런 물음에 예수님은 하느님의 권한으로 제게 이렇게 알려 주셨습니다. 네가 하느님을 섬기고 모시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함이니 그러기 위해서는 "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태 19,19) 하시며 제 물음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원불교를 창시하신 소태산 대종사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절에 가는 할머니에게 왜 절에 가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며느리가 속을 썩여 며느리가 속 좀 썩이지 않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지성드리러 간다고 하였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그러지 마시고 집에 가서 부처님에게 하듯 며느리를 지극 정성으로 모셔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한 할머니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며느리의 시중을 받으며 살았을 것입니다. 사람을 하느님처럼 생각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가르침을 주신 이 땅의 선각자 수은 최제우선생님의 '侍天主' 가르침은 어떻게 '섬김과 모심'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신 말씀이며 불경스러운 제 물음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통해 이를 확인하고 모든 종교의 지향은 결국 한 곳에서 만나며 그 지향점은 이 땅의 건국이념인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지향하고 있음을 묵상해 봤습니다. 아빠 하느님! 당신의 아들 성자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아빠 하느님이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제 당신의 복된 자녀되어 이 땅의 모든 이가 형제자매가 되었으니 소외된 그 모든 분들과 늘 함께하겠습니다. 그들도 하느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도록 경천애인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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