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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하여라'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09 조회수590 추천수4 반대(0) 신고

<청하여라>(루가 11,5-13)

-유 광수신부-

 

내가 너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오늘 복음은 항구하게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하신다.
무엇을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가?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청하고 찾고 두드린다. 그러나 각자 다를 것이다. 내가 늘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무엇을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가? 재물, 권력, 명예, 쾌락????

 

우리는 매일 청하고 찾고 두드리지만 한번도 만족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얻었다 싶으면 또 다른 것을 갖고 싶고, 찾았다 싶으면 무엇인가 부족해서 또 다른 것을 찾고, 두드려서 열린 것 같은데 열어보면 더 오리무중이다. 매일 매일 물을 길러 우물가에 나가야 하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인간은 매일 찾고 청하고 두드리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늘 부족하고, 늘 허전하고, 늘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럼, 무엇으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가? 무엇을 얻고 찾고 열리면 더 이상 청하지 않고, 찾지 않고 두드리지 않는가?

 

시편에 이런 노래가 있다.

 

" 주여, 잘난 체 하는 마음 내게 없삽고, 눈만 높은 이 몸도 아니오이다. 한다한 일들을 좇지도 아니하고, 내게 겨운 일들은 하지도 않나이다. 차라리 이 마음은 고스란히 가라앉아, 어미 품에 안겨 있는 어린이인 듯 내 영혼은 젖 떨어진 아기와 같나이다. 이스라엘아,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주님만 바라고 살아가라."(131)

 

시편의 전반부를 보면 얼마나 잘난 척을 많이 했고, 콧대가 높았고, 자기 나름대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다녔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들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즉 잘난 척 하는 마음도, 눈이 높지도, 한다한 일들을 좇지도, 내게 겨운 일들도 모두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이제는 고스란히 어미 품에 안겨 있는 어린인 듯 젖 떨어진 아기처럼 얌전하게 있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젊었을 때 안 해 본 것 없고, 안 가 본 데 없고, 안 나서 본 데가 없이 다 해 보고, 다 가 보고, 다 가져 보았지만 그런 것들로 마음이 편안해져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것에 행복이 없었다는 것이다. 늦게서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런 것들로 바쁘게 살지 않고 "차라리 마음을 다스리고 어미 품에 안겨 있는 어린이처럼 지내겠다."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띠노가 "주여, 당신을 떠나서는 내 마음이 늘 불안했나이다."라고 고백했듯이 인간은 하느님을  떠나서는 늘 불안하고 만족할 수 없다. 인간은 어미 품에 안겨있는 어린이처럼 하느님을 만났을 때만이 행복을 느끼고 평화로울 수 있다.

 

인간이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 것은 어떤 일도 아니고, 어떤 사람도 아니고, 어떤 장소나 재물도 아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영원한 사랑이다. 즉 나를 영원히 사랑해 줄 수 있는 분을 만났을 때만이 행복할 수 있고 더 이상 이것저것을 청하거나 찾거나 두드리지 않는다.

 

"너희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뱀도 전갈도 아니라 성령 즉 사랑이시다. 성령은 하느님이시오, 사랑이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때만이 채워질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 즉 성령을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것을 청하고 찾고 두드리면 성령은 우리 안에 올 수 없으면 아니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시지만 전혀 느낄 수 없고 활동할 수 없다.          

 

우리는 하느님을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미 하느님은 내 안에 와 계시고 성령은 세례성사 때에 오셨다. 이마 와 계신 성령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다른 것을 청하고 구하고 얻으려고 밖에서 찾으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정말 행복한 사람은 " 행복한 사람이여  불신자들이 꾀하는 말을 그는 아니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망나니들 모임에 자리하지 않나니 차라리 그의낙은 야훼의 법에 있어 밤낮으로 주님의 법 묵상하도다."(시편 1)라고 노래한 것처럼 조용히 복음을 묵상을 통해서 주님을 만날 수 있다.   따라서  말씀을 더 잘 묵상하려고 성령께 도움을 청하면서 밤낮으로 야훼의 법을 묵상하지 않는 한 우리는 주님을 만날 수 없으리라.  더 잘 묵상하기 위해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그러면 젖떨어진 아이처럼 어미 품에 안겨서 평화스럽고 행복함을 느끼고 맛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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