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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09 조회수585 추천수4 반대(0) 신고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광야는 분별의 장소)


시험과 유혹은 같은 광야에서 이뤄진다.

같은 광야에서이지만, 하느님 보살핌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시험을 치르는 이들은 하느님의 사람

으로 단련되고, 고통의 얼굴을 보면서 유혹에

빠지는 이들은 어둠의 자식이 된다.


같은 자리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있고, 사탄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시험은 계명이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죽는다.”


이 계명은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서 준 계명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유일한 길로서 준 계명이다.

곧 선악을 안다는 것은 만물의 전체성을 파악하면서

그것들을 소유하며 그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곧

하느님이 됨을 의미한다.


인간은 하느님이 아니기에 선악을 알게 되면,

곧 하느님이 되면 인간되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실현은 인간의 길을 걸음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주신 이 계명은 곧 인간을 위해

주신 것이다.


생명의 충만함을 누리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주신

것이다. 인간이 인간의 길을 걷도록 하려는 것이

하느님 시험의 목적이라면, 사탄의 유혹은 정반대로

인간이 하느님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험과 유혹은 이렇게 같은 자리, 같은 광야에서

이루어진다. 같은 광야에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고자

시험하시는 분이 하느님이라면, 파멸로 이끌고 유혹하는

존재는 사탄이다.


그러니 광야에 선 인간은 하느님과 어둠의 세력이 주는

두 가지 상충된 가치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분별의 기준은 광야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속성,

하느님께 우선순위를 두는 것에 있다. 사실 시험이나

유혹이 공통으로 건드리는 것은 우리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우리가 삶의 중심으로 무엇을 택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시험의 경우는 하느님께 우선순위

를 두는 것이요, 유혹의 경우는 어둠의 세력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를 생명으로 이끄는 것이기에

고통스러워도 내적 평화가 있고 내적 자유로움이 주어지지만,

악마가 주는 유혹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기 위한 것이기에

한순간 편할지는 몰라도 결국엔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광야에 선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 참 평화와 자유가 있는지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내면에 평화가 있다면 비록 삶 자체가 고통스럽다

해도 그 영혼은 생의 비약(飛躍)을 향한 홀가분함을 느낄

것이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삶이 편할지는 몰라도

영혼은 불안 속에 서성거릴 것이다.

                                  송 봉 모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이런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자!

유산으로 얻은 상속재산을 동생 몰래 전부 처분하고 미국으로

도망가듯이 가면서,

그 재산의 돈을 챙겨 갖고 간 형의 입장은 비록 많은 돈을 갖고

욕심껏 살아보려고 하겠지만 그 마음은 결코 편치 않을 것입니다.


바로 재물의 욕심 때문에 형제간의 의리를 배반하고

결국은 ‘유다의 피밭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돈의 유혹에 빠져 일시적인 쾌락을 누릴지는 몰라도

결코 그 인생이 평화롭지도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자신이 살기 위하여 자신이 저질러 놓은 잘못을

감추고 이웃 형제에게 기가 막힌 재물의 손실을 입히고,

자기의 잘못을 그 이웃에게 뒤집어씌우고 자기는 감옥살이

한 것으로 그 많은 죄를 다 씻은 양 생각하면서

떳떳한 세상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삶이 과연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돌보심의 얼굴을 보지 않고 살아 있기에

그 영혼은 참으로 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잘못을 다 털어놓고 비록 더 많은 옥살이를

한다하더라도, 

이웃의 아픔을 덜어준다면 그 삶이 오히려 더 사람다운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주님! 주님! 하고 주님을 부른다고

그 죄를 다 씻을 수 없고 오로지 자신의 잘못을 다 털어놓고

세상의 벌을 받는 것이 그 영혼을 편하게 할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오늘도 우리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하여 제 마음, 곧 제 안에 계신 주님을

괴롭히는 일이 없게 저를 도와주시어 ‘주님의 돌보심의 얼굴’을 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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