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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느 중국 소녀의 실화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3 조회수750 추천수4 반대(0) 신고
미국 가톨릭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참된 사제 중 한 분이셨던
풀톤 쉰(Fulton J. Sheen) 대주교는 모든 피정과 강론에서
매일 성체조배의 시간을 가질 것을 진심으로 권고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어떻게 그런 영감을 받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내게 많은 영감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어느 소녀였습니다.
이어서 그는 그 사연을 설명했다.

“때는 공산주의가 중국을 완전히 점령했을 때였습니다.
한 무리의 공산당원들이 한 성당에 들어가 사제를 연금하면서
사제관은 말 그대로 사제의 감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에 들어가 감실을 부수고 성체를 바닥에 던지고 떠나갔습니다.
그때 그들은 성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던 어린 소녀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작아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날 밤 그녀는 땅에 바싹 엎드려,
사제관을 감시하는 경비병 앞을 기어서 어두운 성전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한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조배를 드린 다음 성체를 받아 모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루에 한 번, 입으로만 성체를 영할 수 있었기에
소녀는 바닥에 던져진 성체를 모두 영할 때까지 매일 밤 성당에 왔습니다.
그녀는 바닥에 몸을 굽혀 혀로 예수님을 받아 모셨습니다.
사제관에 감금되어 있던 사제는 창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사제는 자신이 직접 세어서 축성했으므로
감실 안에 몇 개의 성체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36일째 되는 밤, 마지막 성체를 영한 어린 소녀는 성전을 떠나다가
그만 경비병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경비병은 소녀를 묶어놓고 때려 비참하게 죽였습니다.
그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본당사제는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풀톤 쉰 대주교도 어느 세미나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는,
평생 매일 한 시간 동안 성체께 흠숭을 바치겠다고 하느님께 약속했다.
그리고 82세의 나이로 선종할 때까지 그 약속을 지켰다.
대주교의 이러한 모습은 수많은 다른 사제들과 신자들에게도
성체께 흠숭을 바치도록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적절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는가?
긴장하고 지쳤을 때 어떻게 하는가?
우리의 삶과 사랑이 너무 복잡하고 막연하다고 느낄 때 무엇을 하는가?
우리들의 능력을 초월하여 사랑하고, 하나가 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울해 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기만 하지 않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본다.
우리는 만사를 제쳐놓고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만져야 한다.
즉 성체성사를 받아야 한다.
그 의식(儀式)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가슴에 안음으로써
평화와 힘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만지는 성경 속의 여인 이야기는 이에 대한 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여자는 오래 동안 하혈병을 앓고 있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낫기 위하여 별 짓을 다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모든 노력은 오히려 상태를 더 악화시켜서 놀라고 낙담할 뿐이었다.
그 여인은 기진맥진하여 마지막 수단으로
몰래 그리스도께 가까이 다가가 옷자락을 만지려고 결심하였던 것이다.
옷자락을 만지자 자신 안으로 힘이 흘러 들어오는 느끼면서 낫게 되었던 것이다.
전에는 하혈을 했지만 이제는 피가 제대로 흐르는,
그녀로서는 어떻게 할 수도 없었던 불가능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녀가 확실히 그리스도를 만나 뵌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성체성사는 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즉 성체성사 시에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이 되며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사랑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성체성사는 사랑과 같이 이해할 필요도 없고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며 오로지 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성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께 안기는 것이다.
 
성체성사의 역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은,
놀라고 지치고 긴장해 있는 어린애를 안아주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성체성사 시에 하느님께서는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신다.
어머니가 놀라고 지치고 무력함을 느끼고 투덜대고 낙담하고
떼를 쓰는 어린애를 안아 주듯이, 우리들의 긴장이 사라지고,
평화와 힘이 우리들 안으로 흘러 들어 올 때까지 하느님께서 우리를 안아 주시는 것이다.
긴장하고 있고 지친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기게 되면 조용해지고
어머니의 힘을 받아 바닥에 내려 오는 것과 같다.
말로써는 되지 않으므로 어머니는 포옹을 통하여
아이에게 평화와 힘을 나누어 줄 수 있게 된다.
 
친구와 연인의 경우에도 꼭 같이 그렇게 될 수 있다.
포옹 안에 생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을 통하여 힘이 전달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을 끝내신 후에 우리들에게 성체성사를 남겨주신 이유이다.
이것이 우리들이 모든 말을 다 끝낸 후에 영성체를 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말이, 결정과 행동이 아픔을 해소하지 못할 때에는 어머니
즉 하느님의 포옹이 필요하며 이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포옹과 같이 성체성사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의식이지만
사랑과 같이 완전히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의식을 치르기만 하면 된다.
결국 우리들은 하느님에게 안기기 위하여 성체성사를 하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고, 자질은 충분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느끼고 실패를 느끼고 도덕적인 무기력함을 느끼고 비통함을 느끼고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이 멀게 느껴지는, 이른바 능력의 한계를 항상 느끼면서 살고 있다.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치유 희망이 없고
안 길 수 있는 희망이 없는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피곤함과 긴장 속에서 우리는 포옹 즉 성체성사에 몸을 맡겨야 한다.
 
성체성사 시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긴장을 하고 의욕적으로 성체성사에 임할 필요도 없다.
마지막 만찬에서 사도들이 한 것처럼 평상시처럼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성체성사 의식을 치르는 것뿐이다.
성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를 품에 안으신다.
(롤하이저 신부님의 묵상글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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