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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시계를 넘어서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2 조회수576 추천수6 반대(0) 신고
 

 

 왜 잔치초대에 오지 않았을까?
그것도 한 나라의 왕이 초대하는 가장 영광스런 초대이고
이미 오래 전에 초대장도 받았는데도 가지 않았다.

물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들려주신 비유 이야기는
하느님이 먼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해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배신한 사실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비유에 나오는 사람들이 초대에 응하지 않은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은 것은
이미 벌어진 혼인잔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이 신랑이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
즉 교회가 그분의 신부라고 하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뿐이고,
그러니 예수라고 하는 나자렛 목수 아들 나부랭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떠드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유대인들만의 고집이다.
그옛날 이집트에서 자기들을 해방시키신 하느님은
언젠가는 또 다시 자기들을 이민족들의 간섭과 억압에서 해방시키실 것이라고 믿으며
천지개벽의 시기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 개벽의 시기가 지나갔음을 잘 안다.
창과 칼을 들고 이민족들을 쳐부수는 그런 개벽,
바닷물이 갈라지는 그런 개벽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처참하게 죽었던 사람이
죽기전의 모습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지만,
가서 만져 보면 전혀 다른 존재,
즉 하느님이라는 엄청난 개벽이 일어났음을 알고, 또 믿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바라는 그들의 구원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다.
세상 모든 민족이 하느님의 선택된 유대인들 발아래 굴복하는
그런 영광된 현상을 망상?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제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의 허무함을 뛰어넘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관을 상징적으로, 표징적으로, 성사적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드러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한다.
하느님이 당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계시가 예수님을 통해서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오직 한 분이지만 성자와 성령께서 성부와 함께 한 본체로서 한 분이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신비라고 하고, 그런 신비를 믿고 안 믿느냐에 따라 신앙인 되거나 비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의 아주 좁고 편협된 하느님,
옹졸한 신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정해진 울타리 속에 가두어버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신앙이라기 보다는 우상숭배와 같은 것이다.
자기 민족만의 신이 우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신앙은 하느님이 당신을 보여주고,
일상 안에서 여러 가지 체험과 정신적인 감동으로 만나주신 것에 대한 일종의 역사 같은 것이다.
신앙은 결코 위대한 신에게 제물을 갖다 바치고 절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만이 아니다.
두렵고 무서운 분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모든 피조물을 지극한 자비와 사랑으로 만나주고
각자에게 긴 인생역사의 과정을 통해 삶을 이끌어준 그 하느님에 대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자기고백이 신앙이다.

그런 하느님을 거부하고 오직 자기들만을 위한 유일신을 고집한 때문에
그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참석하지 않은 것만이 아니라,
아예 초대하러 보낸 종들까지 때려죽이는 잔인함을 보였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인가?

이런 것이 바로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극한으로 달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것을 다른 말로 무슨 무슨 주의라고 한다.
그래서 유다인들의 민족주의를 유다이즘이라 한다.
민주주의, 사회주의, 유대주의 등등. 어떤 주의든 주의는 한 쪽 방향만 고집하는 것이다.
ism이라는 어미는 희랍어에서 “본다”라는 idein에서 파생된 단어다.
줄기차게 한쪽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앞을 보면서 뒤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에게는 다른 쪽에서 다르게 보는 사람의 시각이 필요하다.
그런데유대인들은 한쪽만 고집하고 자기들만의 하느님이 되시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아예 아무나 닥치는대로 잔치에 초청하신다.
이것이 신약이 보여준 하느님의 모습이다.
구원의 대상은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무한히 열려져 있기 때문이다.

옛날 하느님이 유대인을 선택하신 것은
유대인들을 통해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포석이었지만,
유대인들의 자기중심적인 구원관으로 다른 민족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중심적이지도 편협되지도 않았다.
이스라엘 집안의 잃은 사람을 먼저 구원하려 했고,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개에게 던져주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착한 사마리아 사람,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일곱 마귀가 들린 막달라 마리아,
세리, 창녀들까지 서슴없이 만나면서 보편적인 하느님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셨다.
그렇게 하늘나라는 모든 사람이 다 초대된 잔칫집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 초대된 사람은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갖추어야 한다고 설명해 주신다.
예복을 입지 않아서 하늘나라 잔치집에서 쫓겨난 사람이 발생한 것이다.

사실 옷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다.
멀쩡하게 넥타이 메고 직장에 출퇴근 하던 사람이
예비군복만 입으면 돌변하는 것과 같다.
갑자기 팔자 걸음을 걷고 침을 뱉거나 옷 단추를 풀어헤치고
길 가는 사람에게 거만한 눈빛을 보낸다.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괜히 농담을 건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옷이 사람의 행동까지 조종한다.
체육복을 입으면 괜히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게 되거나 바리를 걷어올리고 싶어진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구두를 신고 있을 때는 조신하게 걷다가도
슬리퍼만 신으면 걸음걸이가 이상해진다.
팔자걸음은 기본이고 일부러 슬리퍼를 소리내며 끌고 다니게 된다.
이러니 미사 때 체육복이나 운동화 슬리퍼를 신고 나오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입고 있는 옷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화사한 옷을 입고 있으면 행동도 화사해지게 된다.
후줄근한 체육복에 너덜너덜해진 티셔츠를 입으면
행동도 후줄근해지고 너덜너덜해진다.

내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나의 존재가치가 변화한다.
군복을 입으면 군인이 되고, 운동복을 입으면 운동선수가 되고,
앞치마를 두르면 엄마가 된다. 옷이 나를 재단한다. 옷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늘 나라의 혼인잔치는 결정적인 것이다.
그 때 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그 자리에 초대되고 안 되고의 자격은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잔치 주인에게 있었다.

거리에 나가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할 것 없이 무작위로 초대되었다.
그저 받은 축복, 무상으로 주어진 특전, 초대였다.
무슨 조건에 합당해서 초대된 것이 아니었다.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는 초대였다.
지금도 하느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하고 계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열심히 선교하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그런 초대가 주어졌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단 한 가지가 요구되고 있다.
예복을 입어야 한다. 혼인잔치에 맞는 예복이다.
그것이 뭘까? 복음에 자세하게 제시되어 있진 않지만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아랑곳하지 않고”
하느님의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선행이라는 예복, 정직이라는 예복, 희생과 절제,
기도와 묵상, 봉사라는 등등의 예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하늘나라 잔치에 합당한 복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아침에 눈 뜰 때 햇빛과 함께 주어진 하루라는 초대를 소중하게 여기고,
부모 형제 가족들을 감사하게 여기고,
이 미사를 마치고 각자가 돌아가야 할 일터나 가정,
그리고 거기서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안는” 것이 아니라,
귀하게 여기는 태도, 이것이 하늘 나라 잔치에 입고 갈 예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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