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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야에 선 인간"을 마무리 하면서. . . . .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2 조회수507 추천수4 반대(0) 신고
 

“광야에 선 인간”을 마무리 하면서. . . . .

(송 봉 모 신부 지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인생이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광야에 선 인간’을 준비한 것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그들이 자유와 해방을 맞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는데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나는 잠시 허무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간 적도 있었다.


며칠간을 그렇게 지내면서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고통스러운 것은 인간적이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거듭거듭 자신에게 ‘고통스런 것은 인간적이다.’

‘고통스런 것은 인간적이다.’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고통스런 것은 인간적이라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기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깨달음처럼 오면서

마침내 나는 허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 인간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그가 성령으로 거듭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고통스런 것이 인간적이라면, 인간이기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면,

우리가 찾는 자유와 해방을 도대체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 대답은 예수의 수난과 부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대답은 분명하다.

주님께서는 당신 수난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죄의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셨고 자유인의 삶으로 이끌어 내셨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어차피 고통스러운 것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자유와 해방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분의 수난과 부활이 바로 우리의

엑서더스이기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만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 하신다:

“날마다 자기 십자기를 안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십자가를 안고 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인간적이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그 십자가를 기꺼이 안고 갈 수 있다.

                                                   “광야에 선 인간”

                                                  송 봉 모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광야에 선 인간”에서

광야가 고통과  희망을 함께 보여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육체적 삶과 영혼의 삶으로 나누어 보게 됩니다.


우리가 육체의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영혼의 자유로운 인도로 살 것인가? 는

오로지 우리의 의지에 의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육체의 괴로움과 고통으로 영혼의 성장이라는 거룩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쾌락과 사치 그리고 허영에 사로잡혀 육체의 노예로 사는 삶이 있다.


그러나 노동이라고 하는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

삶의 의욕과 새로운 용기를 키워가면서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그 노동을 거룩함으로

받아들여 육체의 고통을 이겨내는 삶이 있다.


우리의 삶은 어차피 죽음이라고 하는 육체의 옷을 벗어버리는 순간을

누구나 맞이할 것이며 영혼을 가둬두고 있었던 육체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서

영원한 생명을 다시 찾아 돌아가는 순간에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육체의 옷을 입고 있는 이 세상의 삶에서 재물과 돈이라고 하는 것을

제 2의 하느님으로 믿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 날 젊은이들이 영어에 시달리면서 인간의 삶이 온통 영어에 매달려

조기 영어 교육이라는 시달림에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기러기 아빠’라는

웃지 못 할 신조어에 가슴을 앓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 버는 일에 영어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며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능력위주의 평가로 연봉을 책정하고 모든 사람의 평가를

그 해에 얼마의 이익을 올렸는가? 어떤 상품을 만들어 어떤 이익을 창출 할 수 있는가?


이것이 인사고과에 반영되어 연봉을 책정하게 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극히 이기적이면서 개인주의가 우선시 되는 사회로 발전하게 되어 인간의 순수성을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런 평가기준에 매달려 오로지 돈 버는 일에 모든 것을 거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피곤을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동물의 세계에서도 강한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 세상의 삶이 고통스럽고 잡혀 먹히는 삶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고통이라고 생각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도리 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직파하였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도리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자기 수준에 맞는 십자가는 바로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위치에서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도리 밖에 없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 하신다:

“날마다 자기 십자기를 안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십자가를 안고 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인간적이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그 십자가를 기꺼이 안고 갈 수 있다.


요즈음 인기 연예인이나 사회 공직자들 중에 자살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기가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를 집어 던지는 일이 버러지고 있다.

이는 결국 하느님의 섭리를 배반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대답은 분명하다.

주님께서는 당신 수난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죄의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셨고 자유인의 삶으로 이끌어 내셨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어차피 고통스러운 것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자유와 해방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분의 수난과 부활이 바로 우리의

엑서더스이기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만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도 몸소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참혹한 죽음을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시면서

‘저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저들을 용서하소서!’하시면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여

고통도 시련도 거룩함으로 받아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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