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복음 맛 들이기 - 연중 제 28 주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1 조회수757 추천수6 반대(0) 신고

 

 

 

                             연중 제 28 주일 - 초대 받은 당신

 

 

                                                        <  마태오  22, 1-14  >

 

 

 

저는 석사를 마치고 이번 학기부터 박사과정에 들어갑니다. 논문 지도교수님과 여름 방학 전에 석사 때 쓰던 주제로 계속 쓰기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주제를 잡으면 그만큼 시간이 지연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방학동안 논문 스케마(목차)를 짜서 며칠 전에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교수님은 그것이 마음에 안 드시는지 논문 주제를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논문은 교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이 그동안 준비해 온 모든 것을 접어야 했습니다. 이번에 또 한 번 인생은 계획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를 되새겨보아야 했습니다.

보통 논문 주제를 잡는 것만 1년 이상이 걸리기도 합니다. 저는 빨리 끝내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많이 서둘렀지만 결국은 헛수고를 한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며칠 동안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마음이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람을 쐬고 싶어 로마 근교에 있는 바닷가에 잠깐 갔었습니다. 여기는 아직도 낮엔 따듯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해변에서 여유롭게 선탠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지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무 조급해하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과 비교가 되었습니다.

1년 더 하고 덜 하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닌데 스스로를 너무 안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니 부끄럽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다시 한 번 마르타에게 하신 말씀인 “정작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또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라. 나머지는 덤으로 받게 될 것이다.”라는 성서 구절들이 더욱 깊이 다가왔습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기도 안에서 마음의 평화와 기쁨, 즉 하느님나라를 구하는 일인데 내 스스로 나를 구속하여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잃고 살아가는 내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기쁨과 평화로 초대하시지만 사실 우리 스스로 이렇게 그 초대를 거절하여 불안과 우울함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많은 이들을 당신 아들의 혼인잔치에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처음 초대받은 이들은 자신들의 일이 바빠 그 초대를 무시합니다. 마치 제가 저의 일과 계획에 사로잡혀 행복으로의 하느님의 초대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는 ‘왜 하늘나라를 당신 아들의 혼인잔치로 비유했는가?’입니다.

그냥 잔치라고 해도 먹을 것 많고 즐거움을 연상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예수님은 하느님나라를 자신의 혼인잔치로 비유하고 계신 것입니다. 임금이 하느님 아버지이시고 신랑이 예수님임을 누구나가 쉽게 알 수 있지만 신부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요한 묵시록 21장에는 신랑이 하느님의 어린 양, 신부가 새 예루살렘으로 상징되고 혼인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백성이고 교회를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혼인 잔치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들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디 사십니까? 주님의 기도에도 있듯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은 하늘에 사십니다.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땅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죄는 인간의 무게를 가중시켜서 자꾸 밑으로 가라앉게 만듭니다. 물 위를 잘 걷다가 의심하여 물속으로 가라앉았던 베드로를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다시 물 위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과 손을 잡고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한 몸이 되지 않으면 인간은 누구나 물속으로 가라앉고 맙니다. 왜냐하면 죄 없는 인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래 예수님은 우리와 한 몸을 이루어 우리를 살려주시기 위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저는 낚시를 잘 못합니다. 이번 여름엔 아일랜드에 가서 바다낚시를 한 번 시도해 보았는데 다른 사람은 잘도 잡아 올리는데 저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고기들이 낚시 줄에 딸려오다가도 중간에 다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부시고 예수님은 낚시 줄입니다. 하느님은 아들을 꽉 물고 놓지 않는 고기들만을 건져 올리실 수 있습니다. 고기가 낚시 바늘을 꽉 물고 있을 때에 그래서 낚시 줄과 하나가 되었을 때만 하느님은 그것을 끌어올려 당신 것으로 삼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나라는 바로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혼인잔치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이고 우리는 두 번째 하와입니다.

하와는 아담의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하느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옆구리를 열고 거기에서 갈비뼈 하나를 뽑아 하와를 만듭니다. 아담은 하와가 자신과 한 몸임을 바로 알아보며 이렇게 외칩니다. “내 살에서 나온 살이요, 내 뼈에서 나온 뼈로구나!”

이와 똑 같은 일이 바로 골고타 언덕에서 일어납니다.

하느님은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도 깊이 잠들게 합니다. 옆구리를 찢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잠들게 하십니다. 이것은 아담을 죽음으로 잠들게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옆구리가 뚫리고 거기에서 피와 물이 나옵니다. 피는 죄를 사하는 값이요 물은 성령님을 상징하고 성령님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 십자가 밑에는 요한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피로 죄가 씻기고 그래서 성령님을 받습니다. 이것은 세례를 의미합니다. 요한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성령님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요한이 예수님의 옆구리로부터 세례를 받아 새로 태어난 하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성모님을 가리키며 “네 어머니시다.” 라고 하십니다. 결혼하게 되면 시부모님이나 장인, 장모님이 아저씨, 아줌마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세례를 받으면 이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성모님을 ‘어머니!’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초대 교회 때는 세례를 받지 않으면 주님의 기도를 바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당신 아들과의 혼인잔치에 초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처음엔 이스라엘 백성을 불렀으나 그들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로마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초토화 시키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방인들을 부르셨는데 바로 오늘 복음에서 종들을 시켜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데려오라고 하신 것이 이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물론 모든 민족이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혼인 의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초대에 응해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미사엔 참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삶으로 덕과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또한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고 또 그렇게 잔치에서 쫓겨납니다.

 

저도 어렸을 때 한 친구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아 간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집은 못살았는데 그 친구의 집은 매우 잘 살았습니다.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어보니 양말에 구멍이 크게 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너무 창피해 그 구멍을 다른 발로 가리느라 음식 맛도 몰랐고 빨리 시간이 흘러 집에 가기만을 바랐습니다. 기분 좋은 잔치였지만 내 자신이 그 잔치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니 정말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느님나라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들어가면 본인 스스로가 버티지를 못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 받은 이는 적다.”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하십니다. 따라서 부르심을 받아 응답하여 그 분을 믿고 그에 합당하게 사는 사람만이 선택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의복만 제대로 갖추어 입고 있다면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오늘 의복을 제대로 입지 못한 사람은 사실 하느님나라에서 어떤 잔치가 열리는지 알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나라에서 벌어지는 잔치는 바로 ‘혼인잔치’입니다. 우리가 이 혼인잔치에 참례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지 못하면 그에 합당한 옷도 차려입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혼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렇다면 혼인하여 한 몸을 이루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한 시도 잊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당신과 하나 되는 성사, 즉 성체성사를 세우실 때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 안에 항상 기억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매 순간 예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보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따라서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애인 만나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기 위해 한 순간도 우리 애인인 그리스도를 잊지 않으며 살아가도록 힘써야겠습니다.

 

 

 

                ☆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