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종교는 역설적이라는 말이 있다.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10 조회수542 추천수4 반대(0) 신고
 

종교는 역설적이라는 말이 있다.

(맺는 말)


나에게 부활을 주어야 할 하느님이 부활을 주기보다는

십자가를 줄 때, 그리하여 내가 믿던 하느님에게 버림을

받은 듯 절망에 시달리고 삶이 고통스러워질 때, 그나마

나를 부지해 주는 가장 단단한 밧줄을 그 하느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종교의 역설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자유인으로 만들겠다고 불러내서는

우리 삶에 광야를 허락하시고 십자가를 허락하신 것,

그것이 종교의 역설이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첫째, 광야는 우리 최종 목적지로 가는 한 과정이요,

우선순위를 보게 하는 장소라는 것, 영원한 바람소리를

내는 광야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 자유인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향한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인생관을 갖게 된다.


둘째, 거대하게 펼쳐진 광야,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광야 길은 생의 우선순위를 보게 하는 자리임을 보았다.

아득한 지평선을 보면서 숨이 막힐 때, 앞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산 앞에서 두 다리의 힘이 빠져 나감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 생의 가장 중요한 분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생의 조건이 철저히 결여된 고통스런 광야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광야는 하느님을 우리 생의 우선순위로 선택하게

만드는 장소이다.


셋째, 광야는 두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라는 것을 보았다.

광야는 한편에서는 고통과 아픔의 얼굴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

에서는 하느님 돌보심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도저히 살아

갈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 하느님 돌보심 때문이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은 목숨이

질겨서 살아간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하느님 돌보심

때문이다. 


넷째, 두 얼굴을 보이는 광야에서 우리가 고통의 얼굴만을

바라보면 하느님께 반항하게 되지만 돌보심의 얼굴을 바라보면

인내와 힘을 얻게 된다.


다섯째, 우리가 광야에서 고통의 얼굴만을 바라보면 유혹을 받게

되어 끝내 파멸하게 되지만 돌보심의 얼굴을 보면 시험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람으로 단련되고 정화된다. 그러니 광야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더라도 받다 안아야 할 것이다.

                                     송 봉 모 신부 지음.

오늘의 묵상:

광야를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은 참으로 여러 가지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잘나서 잘난 만큼 살고 있으면서 끝까지 어려움을

모르고 잘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나서 지지리 궁상으로 살면서도

그런 삶에 익숙하여 그런대로 즐기면서 만족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또는 이러저러한 사유로 남이, 아니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돋보이는

삶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삶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 이런 말에 많은 위로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

“도저히 살아 갈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다 하느님 돌보심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들은 참으로 아무 것도 모르고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시로 어떤 때는 참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모든 것을 그분의 말씀에 따라 행할 것처럼 하다가도, 조금만

우리에게 못마땅한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들을 잘 알고 있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이런 말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영원한 바람소리를 내는 광야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 자유인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향한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인생관을 갖게 된다.”


한 숨을 몰아쉬면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없지만

송 봉모 신부님이 고민 고민하면서 삶의 방향을 제시하신 것을 읊어보면서

우리들도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가져보아야 하겠습니다.

“두 얼굴을 보이는 광야에서 우리가 고통의 얼굴만을 바라보면,

하느님께 반항하게 되지만 돌보심의 얼굴을 바라보면 인내와 힘을 얻게 된다.”


그러니 우리들의 삶을 잘 살펴보면 잘난 사람은 잘난 만큼의 고민과 고통이

주어지고, 우리가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못난 사람은 못난

만큼의 어려움과 고통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이 참으로 공평하신 분이라고 말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믿음으로서 어려운 삶일지라도 위안을 삼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 어떤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거대하게 펼쳐진 광야,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광야 길은 생의 우선순위를

보게 하는 자리임을 보았다. 아득한 지평선을 보면서 숨이 막힐 때, 앞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산 앞에서 두 다리의 힘이 빠져 나감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

생의 가장 중요한 분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생의 조건이 철저히 결여된

고통스런 광야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광야는 하느님을

우리 생의 우선순위로 선택하게 만드는 장소이다.”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우리를 항상 돌보시어 마음이 불편한 일을 하지 않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시어 언제나 밝고 희망찬 삶을 살게 하소서!

주님! 오늘도 주님의 능력으로 오늘을 살게 하셨으니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