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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살, 절망 그리고 동정심(롤하이저 신부님)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10-05 조회수663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 해는 최악의 봄이었다. 날씨 때문이 아니라 자살 때문이었다.
몹시 후덥지근한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 자연과 사람의 마음을 휘저어 놓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도의 절망에 빠지거나
용서받을 수 없는 결정적인 죄를 지으면 자살할 충동을 일으키게 된다고 알고 있다.
이럴 때에 자살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죄나 절망으로 인하여 자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자살은 희망에 대한 거부이며 용서와 새로운 생명에 대한 확고한 단념이다.
체스터톤(G. K. Chesterton)이 말했듯이
자살은 생존에 흥미를 갖지 않는 것이며, 충실히 살겠다는 맹세를 거부하는 것이다.
자살을 고집했던 사람이나, 자살을 하는 사람은 자살하기 위하여
살기를 거부함으로써 모든 희망을 포기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절망 때문에 자살을 감행한다면 체스터톤의 말도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자살은 가장 큰 죄이며
암이나 고혈압, 심장병과 같은 병보다 훨씬 더 희망이 없는 불치의 병이다.
우리는 몸과 영혼으로 만들어진 창조물로 어느 하나라도 망가지면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육체적인 암이나 고혈압 또는 심장병으로 죽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감정적인 암, 감정적인 고혈압, 감정적인 심장병 때문에 죽는다.
두 경우 모두 죽고 싶다고 죽을 수는 없으며 모두 희망이 아예 없지는 않다.
 
우리는 절망의 표본으로 유다(Juda)의 죽음을 꼽는다.
그러나 유다는 불쌍하다.
그는 예수님을 배반한 다음
자신이 예수님의 용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배반을 이야기할 때 유다와 베드로를 많이 비교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용서를 받아들였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살한 유다와는 달리 베드로는 바깥으로 나가서
통곡을 하고는 예수님의 용서를 감히 받아들였으며
그 용서를 받은 바로 그 바위 위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졌다.
이러한 해석은 신앙심이 깊은 신자는 물론
신앙심이 그리 깊지 않은 신자라도 오래 전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것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에 주안점이 있다.
용서와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요건은
우리가 얼마나 장점이 많고 믿음이 깊으냐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많이 받았나 하는 것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어릴 때 주변 사람들이 설령 우리가 잘못을 범해도 사랑해주고
애써 사랑을 구걸하지 않아도 사랑을 받는다는 생각을 갖고 자라게 되면,
베드로처럼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베드로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공짜 선물로) 더 많이 받았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베드로는 용서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유다에게는 실망을 하지만 베드로에게는 실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운이 좋은 사람과 강한 사람만 사랑을 받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동정심과 이해는 우리들처럼 유한하지는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움츠리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화와 사랑의 성령을 불어넣어주시기 위하여 “굳게 닫힌 문”으로 들어가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지옥으로 내려가시며, 굳게 닫힌 문으로 들어가시어
두려움과 상처로 움츠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사랑의 숨을 불어넣어 주시고 계신다. 그러나 인간의 동정심과 공감(共感)과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어떤 장벽을 만나게 되면 속수무책이 되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굳게 닫힌 문이나 굳게 닫힌 마음에도 들어갈 수 있다.
또 지옥에까지 내려가시게 한다.
 
대부분의 자살 희생자는 죄 때문이 아니라
병에 걸려서 자신의 감정적인 지옥에 빠져버린 사람들이다.
마치 불이 나서 옷에 불이 붙은 사람이 고통을 끝내기 위하여
창 밖으로 몸을 던지듯 그들의 자살은 너무나도 절박한 시도이다.
이들은 인간의 사랑은 이들을 안심시키지 못하며
우리들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는 모성애 같은
하느님의 사랑과 동정심만이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성모님께서는 두려움과 상처로 움츠리고 있는 지옥까지 내려가셔서
그들에게 어머니의 숨을 불어 넣어주시고 평화와 사랑의 숨을 불어넣어 주신다.
그러면 지상에서 살아있는 동안 이들이 느끼지 못했던
무조건적인 사랑과 전혀 불안이 없는 평화를 느끼게 된다.
(롤하이저 신부님의 묵상글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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