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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과 정성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18 조회수566 추천수5 반대(0) 신고

부족하다고 느낄 때 정성을 바치는 법이다.
죄를 많이 지어서 행실이 나쁜 사람으로 소문난 여자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서 많은 정성을 예수님께 바쳤다.

첫째, 행실이 나쁜 여자라고 소문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나타나서 사람들의 경멸을 참아내는 정성을 바쳤다.

둘째, 모든 재산을 털어서 향유를 샀고 그것을 몽땅 예수님께 부어드렸다.

셋째,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렸다.
하지만 실제로 발을 씻기 위해 일부러 눈물을 짜낸 것이 아니었다.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힘든 현실이 슬퍼서 운 것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것이 예수님 발을 적시고 있는줄은 꿈에도 몰랐다가 발견한 것이다.
너무 슬퍼서 잠시 정신을 놓쳤던 것이다.
이미 자기 소매는 눈물로 다 젖었을 것이다.

그래서 닦아드린다는 것이 긴 머리카락으로 닦았다.
치맛단으로 닦으려니 맨살을 보일 것이 오히려 나쁜 뜻으로 보여질 것이고
소매로 닦아려니 이미 눈물에 다 젖어서 마른 것이라곤 자기 머리칼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기에 얼마나 민망한 모습인가?
치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지만
여자는 그렇게 우스꽝스런 모든 것을 감수했다.
예수님은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가여운 마음이 솟구쳤을 것이고,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는 정성으로 받아주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평가하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러고 보니 정성을 바치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그런의미에서 우리는 어디에 정성을 바치는지,
또 누구에게 바치는지 새삼 반성해본다.

우선 어디에다 내 정성을 쏟는지 반성한다.
사람들을 모으고 화합하는데 정성을 들이는지,
아니면 내가 들어서서 사람들을 갈라지게 하고
불화하게 하는 일에 정성을 쏟는 일은 없는지….
그러고보니 정말 내가 그동안 얼마나 사람들을 모으고
화합하는 일에 정성을 들였는지 반성이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누구에게 정성을 바치는지 반성한다.
특히 나 자신에게 얼마나 정성을 바치는지 반성한다.
일찍 일어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성경말씀을 읽으며
영적 양식을 찾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 발전을 위해서 틈틈이 독서하고 공부하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며 도움주는 일을 하고 있는지 반성한다.
모두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더 많이 정성을 들이고 신경을 써야 하겠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대로
자기가 부족한 것을 아는 사람이라야 정성을 쏟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것이 없다고 여겼으면
이렇게 정성을 바치지 않고 살았는지 반성된다.
여러분도 이런 관점에서 반성해보시기 바란다.

“이 여자는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결국 내가 내 스스로에게도 정성을 바치지 않고,
마땅해 해야 할 일에도 정성을 바치지 않는 것은
그만큼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뜻이고,
그만큼 용서받을 것이 없다고 자만하고 있다는 뜻이다.
많이 많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그리고 죄 많은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아마도 바리사이들이 자주 예수님을 비난하는데 사용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태 9,11)

이 여자는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 스스로 사회에서 이미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자기도 예수님은 받아주실 것 같아서 찾아왔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다.
“죄인들과 어울리는 하느님”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지 모른다.
나 같은 죄인도 받아주신다는 걸 분명하게 알려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 때문에 또 혼란스럽다.
하느님은 죄인을 단죄하셔야 하지,
어째서 가만 두고 보시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성전에서 채찍을 만들어서 상인들을 쫓아내신 것처럼,
예수님도 끝내는 채찍을 휘두르신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채찍을 들기 전에 뉘우치길 기다리시는 것 뿐이다.
어쩌면, 나에게 상처주고 온갖 악한 방법으로 나를 공격하는
내 원수까지도 끝까지 참고 기다려주시는 것에 감사할 것 같다.

원수가 먼저 뉘우치기 용서받기 전에
내가 먼저 반성하고 뉘우쳐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해주고 싶어하신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평안히 가거라.”

단, 진심으로 통회하고 뉘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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