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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28일 야곱의 우물- 마태 21, 28-32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8 조회수430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마태 21,28-­32)
 
 
 
 
군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이 처음으로 하신 일은,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을 정화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구나”(21,13).
이 일이 종교 지도자들 눈에 곱게 비췄을 리가 없습니다.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시는 예수님께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찾아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21,23). 예수님은 이런 경멸조의 도전에 주저하지 않으시고 요한 세례자의 권한에 관한 반대 질문으로 맞받아치십니다(25절). 그들은 본인들이 한 짓이 있으니 무슨 대답을 해도 곤란한 지경에 빠질 것이 뻔해 모른다고 핑계를 댑니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27절). 되로 주고 말로 받았습니다.

 
다시 그들의 의견을 물으십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28절) 이번에도 명쾌한 비유 말씀으로 그들을 일깨우시고자,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요청을 받은 두 아들 얘기를 꺼내십니다.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28절). 두 아들 반응이 전혀 다릅니다. 싫다고 거부한 맏아들은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고(29절), 가겠다고 고분고분하게 대답한 다른 아들은 정작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30절).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31절) 예수님의 자명한 질문에 종교 지도자들은 “맏아들입니다”(31절) 하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예수님의 적대자들 역시 예수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행동으로 옮겨져야만 아버지의 뜻이 완수되는 것임에 그들도 동의합니다. 하느님 앞에 보여 드릴 수 있는 것은 모양새 좋은 겉치레도 달콤한 말도 멋지게 부풀린 의향도 아닙니다. 생활과 실천입니다. 하느님이 눈여겨보시는 것은 묵묵한 실천이라는 것을 그들도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맏아들이 옳은 줄은 알지만 맏아들처럼 행동하기는 어렵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지금 성전 안에서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비유를 듣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31절). 여기서 맏아들은 세리나 창녀처럼 윤리적·직업적으로 천대받던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세리와 창녀는 애초부터 하느님 나라에서 제외되었던 사람들이라서 그들과 비교된다는 것만으로도 지도자들에겐 심한 모욕입니다. 그것도 사람들 다 보는 데서 …. 그러나 그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리와 창녀들은 세례자 요한의 말을 믿었습니다. 요한의 권한을 두고 하신 예수님의 반문에 지도자들이 대답을 회피했던 것도(21,27), 세리와 창녀도 인정한 요한을 그들은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32절), 유다교 지도자들은 요한을 믿지 않았습니다. 마태오는 요한과 예수님을 다같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는’(3,15) 이들로 보았습니다. 요한 역시 예수님처럼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했고(3,2; 4,17), 사람들에게 의로운 길을 가르쳤으며 본인도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위임을 받아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를 전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표명하셨고 당신 자녀들이 포도밭으로 일하러 갈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이런 요한의 심부름을 유다교 지도자들은 곧이듣지 않았고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권한을 받은 예언자임도 인정하지 않았으니, 그가 전한 기쁜 소식에도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님께도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습니다(32절). 세리나 창녀들의 생활 방식을 칭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비록 ‘싫다’고 하면서 바르게 살지 못했지만 ‘싫다’라는 대답에 머물지 않고 요한의 설교를 믿고 받아들여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였습니다. 누구도 올바르게 살지 못했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에 거부했다 해도 회개와 행동으로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32절). 노상 입으로는 열심히 경건한 척 했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회개할 것을 촉구하실 때는 그분을 나 몰라라 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이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신다고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자신들의 행동은 하느님의 뜻과 거리가 멀었으면서도 말로만 가겠다고 한 것을 돌아볼 줄 몰랐습니다. 누리고 휘두르던 기득권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 말씀과 적대자들과의 논쟁에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지 말 것을 경고하십니다. 신중히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도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들을 거부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잘 알아들었는지는 실천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실천하는 행동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는 손과 발이 증명합니다.
 
마음의 문이 닫혀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멸시하던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대하셨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말씀과 행동으로 허무셨습니다. 그분의 솔선수범에 죄인들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 기회는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졌습니다. 대답과 행동은 온전히 각자의 몫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미루거나 포기할 수 없는 일임을 명심 또 명심할 따름입니다.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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