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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43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4 조회수466 추천수6 반대(0) 신고
 

 

 ♣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

 

II. 삼위일체

 

4. 새로운 계약 (그리스도와 마리아/교회)

 

 4. 구약의 백성의 동의: 신약의 마리아의 동의

 

 예레미아서 31장에서 보듯이, 이제 신약은 개인과 맺어지는 계약입니다. 따라서 그 동의를 개인적으로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계약을 믿고 계명을 지키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계약은 저절로 파기되어 버립니다.

신약은 신랑과 신부의 혼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느님께서 ‘신랑의 동의’ 이전에 이미 ‘신부의 동의’로 ‘몸’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부의 동의는,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로 가시화 되고 신랑의 동의는, “주님의 뜻을 이루려 제가 갑니다.” (히브 10장 5-10절)라는 응답으로 종합됩니다.

즉, 새 계약은 그리스도 한 분과 온 교회의 혼인이기는 하지만 먼저 가장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통해 시작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보았듯이 죄 있는 인간은 은총의 부족으로 누구도 온전한 ‘동의’를 할 자유와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완전한 동의가 먼저 없었다면 성자가 육체를 취하실 수 없었고 신약도 맺어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교회의 시작인 동시에 신약의 모델입니다.

온전한 동의란, 바로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인데 이는 ‘성령님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원죄 없으신 성모님만이 은총의 충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비우는 온전한 혼인 동의를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고 성모님이 아니었으면 하느님이 인간과 한 몸이 되는 ‘강생’(신약)은 일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5. 구약의 중재자, 모세: 신약의 중재자, 가브리엘 천사와 마리아

 

중재자는 신랑과 신부 양측과 모두 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십계명 판을 인간에게 전해줄 수 있었던 유일한 이는 가장 ‘겸손’했던 모세뿐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죄를 지어 하느님의 모습에 벌벌 떨었지만 모세만이 하느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였기 때문입니다. (탈출 33,11)

그러나 사실은 모세도 하느님의 얼굴을 완전히 마주보지는 못하였습니다.

“너는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누구도 나의 얼굴을 보고는 살아남지 못한다.” (탈출 33,20)

그런데 인간이 왜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볼 수 없게 되었을까요?

단순히 말하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하느님을 피하고 숨어서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창세 3,10)

따라서 새 계명을 세상에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중재자는 ‘원죄 없이 깨끗한 분’ 외에는 존재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성자와 마리아의 혼인에서는, 하느님과 인간을 다 만날 수 있는 천사 가브리엘이 중재자 역할을 하였지만,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에서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기도 하고 교회의 일원이기도 한 마리아만한 중재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모세가 계약의 계명을 백성에게 전해준 것처럼 새로운 계명인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해주셨습니다.

또한 모세가 하느님과 백성 양편에 피를 뿌린 것처럼 성모님도 그리스도와 교회에 성령님을 뿌렸습니다. 그리스도 잉태 때에는 이미 태중에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고 또 교회에 성령님을 전해주는 모습은 가나의 혼인잔치에 잘 나타납니다.

 

요한 2,1-10 참조.

 

성모님은 잔치에서 술이 떨어진 것을 빨리 알아차리셨습니다. 성모님이 포도주를 좋아하셔서가 아니라 주위의 어려운 사정을 빨리 찾아내는 모든 이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너무도 빨리 그리고 잘 아시는 어머니입니다. 그렇지만 성모님은 한 인간이십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신 분을 아들로 두고 계시기 때문에 천상의 왕만큼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성모님의 부탁에는 꼼짝을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기 전부터도 예수님께서 모든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성모님은 한 번도 기적을 행한 적이 없는 아들에게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고 청하십니다. 예수님은 아직 기적을 행할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모님을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않고 그저 ‘여인’이라 부르십니다. 이런 어머니를 몰라보는 듯한 아들의 태도에 당황하지 않고 이미 아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리라는 것을 알고 계신 듯이 성모님은 사람들에게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분부하십니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또는 미리 예정되어 있던 듯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기적을 성모님의 원하심에 따라 포도주를 만드는데 사용하십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불가능한 것까지 가능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약점은 성모님이시기 때문에 묵주기도가 가장 힘이 센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나의 혼인 잔치는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서에서 가나의 혼인 잔치 때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고, 최후의 만찬 때는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요한복음6장), 당신은 정작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들은 모두 상징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영적인 음식이고 이 ‘목마르다!’라는 말씀도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목말라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사랑에 목마르지 않도록 당신 피의 희생을 통해서 성령님을 보내 주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과 찬미 대신에 십자나무와 못을 주었던 것입니다.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고, 인간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비해 인간은 몰이해와 고통과 죄만을 드렸던 것이고 이 목마름은 사실 지금도 지속됩니다.

‘사랑’은 ‘성령님(은총)’을 의미하고 ‘성령님’은 ‘생명의 물(포도주)’을 의미하고 ‘포도주’는‘예수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혼인잔치란 이 성령님(사랑)으로 취해 어린양(예수님)과 혼인하는 교회(성모님과 사도들과 믿는 이들의 모임-십자가상에서의 어머니와 사도 요한과 두 마리아, 성령 강림 때의 성모님과 사도들과 제자들)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를 위해서 성령님을 청해주시는 분이 계약의 중재자이신 성모님이란 의미입니다. 인간 안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사랑이 없기에 죽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다면 그 교회는 껍데기에 불과하게 됩니다. 성모님은 성령님을 부족하지 않고 충만하게 내려 주시게 하는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아직도 하느님과 교회를 혼인시키시는 중재자의 역할을 하십니다. 이는 마치 성모님을 통해서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게 된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그리스도 육화 자체가 이미 신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마리아 둘 만으로도 이미 신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 삼위일체가 먼저 있고 그 다음이 그 일치를 통한 창조가 이루어졌듯이 계약도 이미 구체적인 실현이 있고 그 다음으로 그 형상대로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 삼위일체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듯이 새로운 계약도 성자와 마리아의 혼인 계약의 모상대로 그리스도와 교회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을 통해 아버지와 아드님이 한 몸을 이루시는 것처럼, 성령님으로 충만한 성모님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에서의 삼위일체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그렇게 결합되었듯이 그리스도와 마리아가, 또 그리스도와 교회가 삼위일체 신비의 근본 모델의 확장인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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