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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하드와 하늘나라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25 조회수466 추천수0 반대(0) 신고
이슬람은 지하드를 성취하는 방법으로 마음으로, 입술로, 손으로 그리고 검으로 구분하며, 첫째는 악한 영과의 싸움과 악한 영의 유혹을 이겨내는 마음의 자세를 지니는 영적인 순결함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입술과 손을 통한 이슬람의 확산은 무엇이 바르며,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이분법적으로 해석하여 이루어져 왔다.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들과 이슬람을 적대시하는 자들에게 대항하는 것으로 이슬람의 종교적인 의무를 완성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처럼 거룩한 계시 안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무슬림에게 특별한 대상이다. 이들은(그리스도인과 유대인) 이슬람을 포용하든지 아니면 이슬람 법률을 지키며, 인두세와 땅의 세금을 내어야 한다. 만약 이 두 가지를 거절할 때는 지하드를 선포한다.
 
꾸란에서 지하드(성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슬람을 폄하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늘나라’를 ‘이 세상’이 아니라 ‘사후(死後)의 세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M. A. S. Abdel Haleem이 영어로 번역하여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발행한 『The Qur’an』에서 옮겨 실었다.
 
믿는 신앙인이란 하느님과 선지자를 믿되 의심하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사업을 위해 그들의 재산과 생명으로 성전(聖戰)하는 자들이
바로 믿는 신앙인들이라
(The true believers are the ones who have faith and His Messenger and leave all doubt behind, the ones who have struggled with their possessions and their persons in God’s way: they are the ones who are true.)”(수라49:15)
 
만일 너희가 죽었거나 살해 당했다면
너희는 하느님께로 돌아 가니라
(Whether you die, or are killed,
it is to God That you will be gathered.)”(수라 3 : 158)
 
하느님의 길에서 순교한 자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들은 하느님의 양식을 먹으며 하느님의 곁에서 살아 있노라
([Prophet], do not think of those who have been killed in God's way as dead.
They are alive with their Lord, well provided for.)”(수라 3:169)
 
그들의 집을 떠났거나 추방당했거나 나의 길에서 순교한 자
성전(聖戰)하였거나 살해당한 그들을 속죄하여 줄 것이며,
강이 흐르는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이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보상이라
그 중 좋은 보상은 하느님께 있노라
(Their Lord has answered them:
‘I will not allow the deeds of any one of you to be lost, whether you are male or female, each is like the other [in rewards]. I will certainly wipe out the bad deeds of those who emigrated and were driven out of their homes, who suffered harm for My cause, who fought and were killed. I will certainly admit them to Gardens graced with flowing streams, as a reward from God: the best reward is with God.’)”(수라 3:195)
 
그것은 너희가 하느님과 그분의 선지자를 믿으며,
하느님 사업을 위해 너희 재산과 너희 생명으로 성전하는 것으로
너희가 알고 있다면 그것이 너희를 위한 복이라
(Have faith in God and His messenger and struggle for His cause with your possessions and your persons-that is better for you, if only you knew-)”(수라 61:11).
 
그리스도교에서는 박해를 당해도 참도록 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성전(聖戰)’으로 맞서도록 종용하고 있다.사도 바오로는 분쟁을 일으키는 자에게서 떠나라고 하며 저들은 자신의 배(이익)를 섬기고, 우리를 아첨하는 말로 미혹한다고 말했다.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이 배운 가르침을 거슬러 분열을 일으키고 걸림돌이 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을 멀리하십시오.그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배를 섬기는 자들로서, 달콤하고 비위에 맞는 말로 순박한 이들의 마음을 속입니다. 사실 여러분의 순종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의 이 일로 기뻐하면서도, 여러분이 선에는 지혜롭고 악에는 물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사탄을 짓부수시어 여러분의 발아래 놓으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로마 16:17-20)
 
성경에는 도처에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구약성경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성경이 말하는 전쟁에 대해 정리하지 않으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히브리 말로 여호수아는 ‘주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인들과 치른 전쟁은 단순히 이스라엘과 가나안족 사이의 싸움이 아니라 야훼와 이방신(異邦神)들 사이의 싸움으로 ‘야훼의 전쟁’이라고도 부른다.구약시대에는 하느님의 공동체가 신정정치(神政政治) 형태로 존재하였기 때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국가와 전쟁을 했던 것이다.신정정치란 국가권력의 소유자로 국가의 통치권력은 신에게서 나온다는 생각에 따라 형성된 정치조직의 국가형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국가가 아닌 교회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교회는 어떤 공권력, 군대, 폭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만 보아도 신약 교회가 전쟁을 수행할 아무런 의무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전(聖戰, Holy War)은 아무데도 없다. 1095년 종교회의에서 교황 우르바노 2세(Urban Ⅱ)는 성전을 선포하며 십자군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는 교회 역사상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신학적, 역사적 오류였다. 신약시대에는 어떤 이유에서도 전쟁을 성전이라는 용어로 미화한 적이 없다. 신약시대에 성전(聖戰)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꾸란은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에는 신정정치와 유사한 칼리프라는 제도가 있었다. 이슬람교의 칼리프(Caliph)는 대행자(代行者)라는 뜻의 아랍어인 하리파(Khalifa)가 와전된 말로 주권자로 정치적, 종교적인 지도자를 일컫는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은 후 그가 이룩한 교단국가의 최고 지도자로 뽑힌 아부 바크르가 ‘신의 사도의 대행자’라고 칭한 이래로 대행자 즉, 칼리프가 이슬람제국의 주권자의 칭호로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칼리프 곧 대행자는 무함마드의 예언자 성격으로서의 대행자가 아니고 정치, 군사 지도자 성격으로서의 대행자였다. 이처럼 칼리프라는 존재가 전 이슬람 공동체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인 면 모두를 통제하는 강력한 권한을 지닌 존재다 보니 그에 따르는 요구조건도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칼리프는 일단 올바른 신앙인이어야 했으며, 이슬람법의 해석과 판결에 능해야 했고, 공명정대해야 했으며, 정의로워야 했고, 게다가 꾸라이쉬 부족(무함마드가 속해있던 부족)이어야만 했다. 결점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매번 이런 조건을 다 만족하는 성자 같은 인물을 추대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이런 요구조건을 충족하기는커녕 이런 요구조건에 정확히 반대되는 사람들이 칼리프 위(位)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칼리프의 권위가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칼리프 위가 세습되는 일이 많아 백성들의 반감을 사는 일도 많았다. 이렇게 되자 신정정치가 무너지고 왕권이 등장하여 칼리프 위에 군림하게 된다. 왕은 하느님의 대리자이고, 왕은 예언자를 통해서 하느님의 지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칼리프에게 권한은 주어졌으나, 비잔티움의 황제나 페르시아의 샤(왕), 중국의 천자와 대등한 위세는 주어지지 않았다.
 
 모로코를 방문한 후 왕이란 존재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성직자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민(愚民) 정치를 하여 국민들을 문맹으로 만들고 노예화한 것 같았다. 왕은 호의호식하면서 국민들은 하루 벌이가 우리 돈 만 원도 되지 않았다. 카사블랑카의 한 호텔의 아침 뷔페에는 과일 한 종류와 우유 그리고 삶은 달걀이 나왔다. 그러나 달걀을 하나 더 먹으려 하자 못 먹게 손으로 가리면서 못 먹게 했다. 그 때 생각했다. 나에게는 달걀이지만 그들에게는 병아리로 보인다는 것을.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신학자들이 우리들로부터 종교란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지 않은 것이 도리어 신기롭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신학자들에게 ‘그만하십시오.’하고 말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우리들로부터 종교를 몽땅 빼앗아 가버렸을 것입니다. 어떤 종교든 성직자(聖職者)가 필요하지만 이 세상의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즉 그리스도교의 신부나 목사, 바라문교의 승려, 불교의 승려, 라마승, 바리사이 율법학자 같은 성직자들에 의하여 피해를 입고 파괴되지 않은 종교는 없습니다. 그들은 대부분의 신자들이 알아 듣지 못하는 말로 다투고 있습니다.
자기네들이 복음서로부터 성령을 받고 그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을 감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복음서를 썼기 때문에 진리를 싣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바쁩니다. 그러나 그런 증명은 그들이 참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한 궁여지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이 놀라운 방법으로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성령을 받지 않은 성직자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엔 성직자들이 종교를 독차지한 듯한 느낌이 든다. 신자들에게 기복신앙을 부추기고, 권위로 신자들을 억누르고, 교회를 사고 팔고,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하고 있는 모습은 중세 때에 부패했던 교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민정치를 하는 왕과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기복신앙을 믿는 사람은 성직자에게 종교를 빼앗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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