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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준호의 저금통(정지풍 아킬레오신부님 사목단상 1)
작성자김시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6 조회수475 추천수2 반대(0) 신고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님 그림 작품
 
십자가를 바라보며
 
 

 - 사목단상(斷想)1-


준호의 저금통

 

나는 복잡하고 바삐 흘러가는 도회지 보다는 시골을 좋아한다.


세파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마음씨를 가진 시골 사람들이 좋다.

험난한 역경을 딛고 힘겹게 살아온 사람들을 넉넉하게 보듬어 주는

따뜻한 고향의 품과 같은 시골이 좋다. 


본당 주임신부로서 시골 운산본당에 첫 소임지 발령을 받았을 때,

얼마나 가슴 설레며 행복해 했던가.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추억의 기억들...

그곳 시골본당은 아주 특별하고도 가슴 따뜻해지는 마음의 고향이다.


운산은 충남 당진과 서산 중간에 위치한 조그마한 면 단위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돌이 많기로 유명했고, 여름에 비가 오면 지대가 낮고 농경지가 많기 때문에

늘 땅이 질어‘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곳이었다.


공소였다가 본당으로 승격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운산 성당은

50평 남짓한 작고 낡은 공소 건물이었다.

비가 오면 비가 줄줄 새서 양동이를 여기 저기 놓고 미사를 드려야 했고,

고백실이 없어 제대 한 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고백성사를 보아야 했다.


새 성전의 건립은 너무도 시급한 과제였지만,

신자 수 6백50명의 조그만 시골본당으로서 그것은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부족한 재력의 문제는 여지없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농촌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고향을 부끄럽게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가난’ 때문이다.

농산물 파동이 일어날 때마다 젊은이들은

심각한 허탈감에 빠져 고향을 기피하고 도회지로 떠나갔다.

그곳 운산도 다른 시골과 상황이 비슷했고,

결국 남아있는 노인들이 주로 농사를 지으며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은 고작 작은 논 밭뙈기와 과일나무,

농사지은 쌀과 경륜이 붙은 노동력뿐이었다.  


 그들은 틈나는 대로 밭에 채마를 가꾸어 시장에 팔고 

산나물을 뜯어 그들의 생활비로 쓰곤 하였다. 

이 지역 특산물인 마늘과 생강, 달래를 캐는 시기가 되면 일손이 모자라,

밭농사 짓는 주인들이 사람들을 사기 위해  이 동네 저 동네 이장을 찾아다녔다.

시력이 나쁘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아 천대받던 허리 굽은 할머니들도

이때만은 환영을 받는다.


성전을 지어야 한다는 필연성과 당위성을 깨달은 신자들은

점차 신축금을 모으기 위한 열의를 불태우기 시작하였다.

신축금을 모으기 위해 품 팔러가는 날,

꼭두새벽에 일어난 할머니들은 겨우 내 소금에 절여 만든 무짠지를

넣어 맛있는 주먹밥을 만든다.

무짠지는 단지 썰어서 맹물에 타기만 해도 담백하면서도 기차게 간이 맞는

여름 시골 반찬의 별미이자 일품요리다.

또한 무짠지 주먹밥은 더운 날 땀 흘려 일하는 농사꾼들의

몸에 염분을 공급하면서도 조리과정이 간편하고 맛이 빼어난,

일꾼들에게  최고로 인기 있는 점심 도시락이었다.


그들은 이른 아침 주먹밥을 비닐에 둘둘 말아 가지고 성당에 모인다.


시내버스가 드물게 다니는 이곳의 교통수단은 공사장에서 마구 쓰는 트럭이었다.

요즘 같으면 트럭에 사람을 태우고 시내 길을 달리면

당장 교통순경에게 걸려 딱지를 떼거나 운행이 중지되었을 것이지만,

당시 시골 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덜컹거리는 트럭 2대에 180명이 나누어 타고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아이구"소리가 줄달아 나오거나 "간 떨어지겠다"며

운전 잘 하라고 고함을 지르는 할머니도 있다.


돌 많은 시골 길, 비포장도로에 땅이 패이고 울퉁불퉁한 길을

운전수는 약속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인정사정없이 달린다.


주먹밥을 먹어가면서 하루 종일 일한 품삯은 1만원에서 1만2천원 정도였다.

이들은 이 돈을 모아 성전 신축금을 낸다.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자기들도 질세라 학교수업을 마치면 그물을 가지고

논이나 저수지에서 미꾸라지와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 집에 팔아

예수님 집을 짓는다고 한 몫을 한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신자들은 수시로 쑥을 뜯어 쑥차를 만들고

참깨와 들깨를 심어 기름을 짜서 성전 신축 기금에 보태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고사리 같은 손이 모으는 신축기금은 조금씩 조금씩 늘어 갔다.

늘어 가는 기금과 함께 우리의 희망과 용기도 무럭무럭 커져만 갔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좋아하셨으리라 생각이 든다.


준호라는 초등학교 1학년의 아이가 있었다.


신실한 구교집안의 신앙을 전수받은 준호의 어머니는 준호를

늘 평일 미사에 데리고 다녔다.

나는 이 아이를 어린왕자라고 불러주었다.

너무 귀엽고 착한 어린왕자  준호는 나이답지 않게 

엄마 옆에 앉아 얌전히 미사에 참여 하였다.

미사가 끝나면, 나는 준호를 위해 마련한 초코렛을 그에게 하나씩 주었다.

나는 초코렛을 좋아하는 준호를 위하여 항상 넉넉히 준비를 해두곤 하였다. 

하루는 저녁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에 들어가는데

녀석이 보자기로 싼 물건을  끙끙대며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신부님! 힘내세요. 이것 받으세요.”

어른스런 꼬마의 의젓하고도 당찬 말에 

“아이고 착하기도 하지” 말을 건네며 준호의 손을 꼭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사를 마치고 준호 녀석이 준 선물을 들고 사제관에 들어왔다.

무언지 모르지만 준호가 들기에는 꽤 무거워 보였다. 


‘8살 어린이가 이것을 들고 오다니 무척 힘들었겠구나! 착하기도 하지.....’


보자기를 풀어 보았다.

그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축구공만한 노란 저금통이었다.

저금통 안에는 동전이 가득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열어보니 오백 원짜리, 백 원짜리, 때론 일원짜리 동전도 있었고

오백 원, 천원, 심지어 만 원짜리 지폐(紙幣)도 눈에 띄었다. 

그 저금통을 앞에 두고 준호 녀석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저금통 안에 동전을 넣을 때마다 준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린 꼬마 녀석이 군것질도 하고 싶고, 동화책도 장난감도 사고 싶었을 텐데......

그 때마다 예수님 집을 짓는다고 이 저금통에 동전을 넣은 준호를 생각하니

너무나 감동적이고 사랑스러웠다. 

그렇다! 이 안에 든 동전은 보통 돈이 아니었다.


이 노란 저금통을 받았을 때 내 손에 느껴진 그 묵직함은

동전의 무게만이 아니라 준호의 기도의 무게였던 것이다. 

한 어린 소년이 영원한 신앙의 대상에게 바치는 가장 순수하고 진심어린 선물, 

기도 선물의 무게감.   


순간 나의 마음에는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옆에 준호가 있었으면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작은 준호의 가슴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득 담아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준호 어린이가 넘겨준  무거운 저금통은 시골 성전신축을 하는데 불씨가 되었고,

할머니들과 어린이들의 일치된 마음은 성전을 짓는데 모퉁잇돌이 되었다.


지금도 이 성당을 지날 때마다 준호 녀석이 생각난다.

이제는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겠지만 준호를 만나면

초콜렛과 더불어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고 싶다. 

어린 준호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무게로 내 가슴에 남을 것이다.

http://cafe.daum.net/sgm2008 성거산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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