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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안에서의 자유" - 9.26,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6 조회수514 추천수1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9.26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코헬3,1-11 루카9,18-22

                                                    
 
 
 
 
"하느님 안에서의 자유"
 


우리 수도자들이야 완전 취업에 종신 일터가 보장 되지만,
밖에서 한창 일할 50대에 퇴직하는 가장들을 대하면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80대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약 30년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도 참 어렵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또 일터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
또 나이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다양한 암으로 죽어가는 이들을 대해도
마음이 먹먹해 집니다.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면
지구 몇 개라도 부족하고,
사람들의 필요로 하면 지구 하나도 충분하다는 데,
여전히 절제 안 되는 사람들의 욕망 또한 마음 먹먹하게 합니다.

새삼 대두되는 자유의 문제입니다.

이런 환경 중에도
어떻게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인간은 자유다.” 라고 정의할 수 있을 만큼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진정 자유로운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이런저런 근심, 걱정, 고통에 매여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 같습니다.
 
사실 그 누구도 보이는 것들로부터-시간, 공간, 물질, 몸, 돈-
떠날 수 없는 한 자유도 없습니다.

과연 세상에 시간, 공간, 물질, 몸, 돈으로부터 떠나 살 자 있겠는 가요?

때로는 시공의 감옥, 물질의 감옥, 몸의 감옥, 돈의 감옥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전쟁의 때가 있으면 평화의 때가 있다.”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 올 때가 있고,
들어올 때가 있으면 나갈 때가 있고,
만날 때가 있으면 떠날 때가 있습니다.
 
누가 ‘때의 리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때의 순환의 사슬에서 벗어날 자 누구이겠습니까?

‘흘러가는 물’같은 ‘때들’에 집착하지 않을 때 초연의 자유입니다.
 
이 ‘때의 현실’을 ‘때의 리듬’을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정 초월의 자유인입니다.
 
진정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이들 ‘흘러가는 물’같은 ‘때들’에 집착하여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그 어느 때가 전부인양 집착하여 고통이요 절망이 아닙니까?
 
시야를 넓혀 때를 넘어 하느님의 영원을 보고,
그 영원 안에 우리 마음을 두자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믿음이요 여기서 흘러나오는 자비와 연민, 그리고 자유입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하느님의 일을 깨달을 수도 없고 깨달을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하느님 안에 내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이래야 초연의 자유입니다.
 
시공, 몸, 물질, 돈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결론하여 ‘하느님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혼자 기도하시던 중
뜬금없이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어 ‘하느님의 그리스도’로서 자신의 정체를 해명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말씀 하시니,
제자들의 기대에 완전히 어긋나는 실망스런 예수님의 정체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자신의 운명에 대한 고뇌가 참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깊은 기도 중에
자신의 정체-고난, 배척, 죽음, 부활의 그리스도-를 깨달았을 것이며,
하느님 안에서 이 운명을 받아들임으로 초연의 자유를 누렸을 것입니다.
 
매일의 거룩한 성무일도와 이 거룩한 미사시간,
하느님의 영원 안에서 초연의 자유를 누리는 시간입니다.
 
일상으로 확장되는 하느님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마지막으로 결론으로 들어보자.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들에게 지당한 것이다.”(코헬12,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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