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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7주간 -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10-06 조회수466 추천수5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아~ 누구한테 한번 물어볼까요?

요 자매님 내가 낯이 좀 서네.

닉네임이 뭡니까?

아~ 그냥 붙어서 오셨구만^^

오늘날짜로 이제 가입을 하시면 될 거고.....

친정어머니 살아 계세요? 고 옆에 자매님.

살아 계세요? 친정어머니 살아 계세요?

내가 한 가지 물어볼게요.

지금 친정어머니가 진짜 낳아준 친정어머니, 정말 엄마예요?

어떻게 자신 있어요?

낳을 때 확인했어요? 배에서 딱 떨어지면서 ‘아~ 요 여인이…….’

확인 안했죠?

근데도 이 나이 먹을 때까지 살면서 한 번도 저분이 내 친엄마라고 하는 거 의심해 본 적 없죠?

이걸 뭐라 그래요?

믿음이라고 그래요. 그치요?

우리가 살면서 지금 내 엄마가 내 아버지가 내 친부모라고하는 거

의심 안 해보잖아요.

이게 믿음 이에요.


인간은 믿어야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서 행복의 차원이 달라지겠죠.

부모를 믿고, 자식을 믿고, 남편을 믿고, 아내를 믿고, 건강을 믿고, 머리를 믿고, 돈을 믿고, 권력을 믿고 살아가는데 근데 지금 이렇게 눈에 보이는 인간, 아니면 지식, 돈 이런 믿음의 대상들은 언젠가는 내 앞에서 사라집니다.

동의하시죠?


기도 찬미의 밤 지난 토요일에 있었죠?

한참 준비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데 요 바로 밑에 동네, 교우들 촌에서 누가 헐레벌떡 쫓아오더니 “신부님, 우리 남편 죽었어요.”

뒤쫓아 내려가 보니까 사람이 쇼파에 앉은 채로 죽었어요. 그 부인이 서울에 결혼식하고 나서 아무리 해도 휴대폰을 안 받더래요. 기분이 이상해서 내려와 보니까 텔레비전 틀어놓은 채, 올해 환갑잔치 지낸지 며칠 안 되었어요. 며칠 전서부터 뭐 좀 체한 거 같다고... 그래서 그날도 같이 결혼식 가기로 했는데 나 몸이 불편해서 혼자 갔다 오라고.....

그 참 얼마나 황당해요.

오늘 아침 아홉시에 장례미사를 치르고 장지에 묻었지요.

얼마 전 환갑잔치하다가 금세 장례, 이렇게 내가

‘그래 다른 남편은 죽어도 우리남편은 안 죽을 거야.’

했던 그 믿음의 대상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죽어요.

그렇게 믿었던 내 아내가 고무신 거꾸로 신고

“잘 있거라~ 나는 간다.” 하면서 날아간단 말이예요.

아무튼 내가 이제껏 많은 믿었던 눈에 보이는 믿음의 대상들은 한순간에 깨질 수가 있습니다.

세상 것은 나에게 영원한 믿음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 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입니다.


사람도 역시 서로가 완전한 믿음은 못주지요?

서로가 신뢰하려고 애쓸 뿐입니다.

저인간이 나에게 상처 주었듯이, 나도 저 인간에게 상처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거고, 내가 누구에게 배신당한 아픔이 있듯이 나도 살다보면 다른 이를 배신할 가능성이 분명히 있는 존재고.... 서로가 약점덩어리기 때문에 인간끼리는 이 믿음이라고 하는 믿음의 대상이라고 하는 말을 쓰질 않습니다.


오로지 믿는 대상은 누구?

하느님 한 분이예요.


우리가 언젠가는 사라질 이 유한한 대상을 뛰어넘는... 나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는 바로 하느님을 찾아서 세례를 받고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맞죠?

그럼 여러분들 믿음의 생활이 뭡니까?

일주일에 한 번 주일 지키는 거, 레지오 한 번 나가는 거?


아주 열심한 자매님이 있었어요.

정말 옷만 수녀 옷을 안 입었지 수녀들 보다 더 열심히 사는 그런 자매님이 있었는데 이 자매님이 몇 달 내내 얼굴이 어두운거예요.

늘 기쁘게 살고 얼굴에다가 <행복한> 이라고 쓴 자매님이....

그 자매님 환경이 좋아서 행복한 분은 아니었거든요.

그렇게 기쁘게 살았던 자매님인데 몇 달 동안 얼굴이 어두워!

어느 날 그 자매님이 저에게 면담을 청하시면서 아주 심각한 목소리로 “신부님 저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완전히 자기 지금 버림받은 느낌이래요.

기도해도 기도도 안 되고, 그냥 캄캄한 밤에 불 하나 없는 사막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이래요.

발 한번 디디면 벼랑 끝이고, 하느님한테 버림받은 그런 느낌이었다.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신부님, 다시 어떻게 하면 믿음이 깊어질까요?”


수많은 성인들도 <영혼의 어둔 밤> 이라고 하는 과정을 몇 번씩 겪습니다.

그토록 잘되던 기도가 안돼요.

그렇게 잘 풀려나가던 환경이 어느 한순간에 하는 것마다 막혀요.

‘아~ 버림받았다. 하느님이 나를 모른척하시는구나.’

하느님은 때때로 어둠을 허락하실 때가 있지요?

그 이유늘 밝으면 밝음의 기쁨을 모르는 것이 우리 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때로는 어둠을 허락하셔요.

니가 밝게 살았을 때 얼마나 나에게 고마움을 못 느끼고 살았는지.... 깨닫게 해주실 때가 있어요.

영혼의 어두운 밤, 신앙적으로 우리가 그 어두운 밤에..... 어두운 밤의 상태에 들어가면 죽고 싶죠.

캄캄해요!


저도 사제생활 25년 하면서 10년에 한 번씩은 왔던 거 같아요.

참, 사제직을 해야 되느냐?

그 믿음이 다 깨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이렇게 위선적인 마음을 가지고 내가 강론을 해야 될 것이냐?

아~ 나는 버림받았어. 그런 절박한 느낌!

그러나 지나고 보면 고통도 은혜였던 거였고 그 어두운 밤도 은혜였던 거였죠.

그 열심했던 자매님 입에서도 “신부님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늘 사도들은 ‘믿음을 더해주십시오.’ 하는 말을 했습니다.

사다가 줄 수 있는 것이 믿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냉담자에게 먹이는 믿음의 약이 있다면, 내 기르던 개라도 팔아서 냉담자들 찾아가서 먹이겠어요.

신앙이 약한 사람들에게 주는 보약을 파는 한의원이 있다면 사다가주면 될 텐데........ 믿음은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답답한 것이지요.


그럼 믿음은 언제 커지겠습니까?

분명히 사람마다 달라요.

어떤 이는 정말 간절히 믿음이 커지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쉽게 커지질 않아서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어요.

열심히 뭐 쫓아다니기는 쫓아다니는데 뭐가 뜨겁게 와 닿질 않아요.

하느님 체험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열심히는 매달려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예 무관심, 그냥 취미생활정도예요.

‘그래 사람이 살면서 취미로 종교하나는 있어야지. 그래, 종교를 가지려면 그래도 인터내셔널적인 캐톨릭을 그래도 선택해야지.’

그냥 그런 정도 신상카드에 천주교,  ‘나 천주교 신자라구!’

아예 관심이 없어요.

그냥 이대로가 좋은 겁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은 열심해지는 거,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휴 나 열심해지면 안 돼, 어이구 헌금 많이 내고 또 돈 갖다 땅문서 갖다 맡기고... 나 미치면 안 되는데 아이고, 나 이대로가 좋아. 이렇게 주일만 지키고 사는 게 좋아’

자기 부인이 열심해지려고 하면 가로막죠.

“너 미쳤냐? 미쳤냐?”


믿음은 분명히 사람마다 환경에 따라서 커지는 때가 다른데

성서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첫 번째 체험을 통해서, 체험도 고통이라고 하는 체험을 통해서 옵니다.

두 번째로는 피정이라든지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커집니다.

세 번째로는 봉사할 때 커져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복음에서 종이 나가가지고 일을 하고 들어오면 뭐부터 시킨다고 그랬어요?

‘내 밥부터 먼저 해라.’ 그랬죠?

먼저 쉬라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종이 대들 일이 아니라 이겁니다.

‘그저 할일을 했을 따름입니다.’하고 겸손하게 살아라.

‘봉사하고 난 다음에 유세떨지 말아라.’ 이겁니다.

‘티내지 말아라.’ 이겁니다.

주님이 밑으로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내려가셨듯이 내려가라!

그 뜻입니다.


어떤 이들은 뜨겁게 주님을 체험하고 싶은데 잘 안돼요.

그런데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들 콩나물시루에다가 콩나물을 기를 때, 물을 부으면 물이 다 빠져 밑으로 내려가지요?

그런데도 콩나물은 커요? 안 커요?

커요!

뭔가 뜨거운 걸 느끼지 못했다 하더래도 평일미사 열심히 나가고, 주일 지키고, 본당에서 피정 있다고 하면 열심히 쫓아다니다 보면...... 다른 사람처럼 그냥 뭐 뜨거운 체험은 없다 하더라도 콩나물시루에 물 부으면 콩나물이 자라듯이 물은 밑으로 빠져도 조금씩조금씩 자라나요.

그게 바로 믿음이예요.


세례 받자마자 성숙한 믿음을 갖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제 동생 사제가 소나무신부님 있잖아요.

카페에도 내가 글을 적은 적이 있지만 남동생 둘, 여동생 둘이 있어요.

둘 다 공부를 기가 막히게 잘했어요.

그 밑에 동생이 소나무 신부님이에요.

나는 잘했게요? 못했게요?

되돌아보면 신학교 때는 사실 공부 안한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 참 공부 열심히 했어요.

중학교 때 저는 야구선수를 했었어요.

야구를 하면서도 반에서 일등을 했었어요.

그때 만일에 프로가 있었으면 아마 내가 야구선수로 계속 나갔을지 몰라요. 근데 그때는 프로가 없었기 땜에 이거 뭐 기껏 해봐야 어느 학교 코치밖에 더하겠느냐?  공부를 했었으니까~~

그전에는... 지금도 운동선수들은 거의 수업을 안 하잖아요?
오전에만 수업하고 오후에는 나가는 거예요. 저녁 7시까지 해요.

그러면 오후수업 노트가 없어요.

그럼 집에 가기 전에 친구 집에 들러서 그걸 다 베껴서 밤새 공부하고 항상 일등 했어요.

전교에서도 10등 안에는 항상 들었었고, 야구 하면서도......

이거 안 나가는 게 좋은데~~얘기하다보니까 딴 데로 흘렸어^^

 

그런데 아무튼 동생신부가 내 바로 밑에 동생은 공대를 갔어요.

일류대학 공대를 들어갔고, 소나무 신부도 그 일류대학을 갈 실력이 충분히 되었어요. 법대를 갈 줄 알았지요. 문과였기 때문에.....

아,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는데

“대열이 신학교 원서 냈다.”

그러는 거예요. 아이고, 얼마나 내가 배신감을 느꼈는지......

‘이놈이 큰형을 얼마나 발바닥 때만큼도 안 여겼으면, 같은 길을 갈려고 하는 놈이 한 번도 나한테 상의한 적이 없었단 말이야? 야, 이놈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방학하자마자 올라와가지고 내 물었죠.

“대열아, 형이 너한테 그렇게 모질게 한 적이 있니?”

“아니요.”

“니가 어떻게 신학교 갈 생각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신학생인 큰형한테 상의한번 한 적이 없느냐!”

“형 마음 상했으면 푸세요.”

아주 이게 갖고 놀아. 나를.....참

궁금해가지고 신학교 들어간 이유가... 지 입으론 얘길 안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신학교 교수님한테 가서 “우리 동생 요번에 면접 봤는데 신학교 들어온 동기 물으니까 뭐라고 대답합디까?”

“야, 나 그런 놈 첨 봤다.”

“뭐라 그랬는데요?”

너무너무 솔직하더래요.

‘나, 하느님 있는 거 지금 못 믿겠다.’ 그랬데요.

그런데 신학교 원서 쓴 이유는 “우리 큰형님이 신학생인데 우리 큰형이 선택한 길이라면 내가 선택해도 적어도 손해는 안본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 큰형보고 내가 들어온 겁니다.

그러면서 그러더래요.

“진흙 속에 다이아몬드가 묻혀있어도 눈에 안보일 뿐이지... 분명히 그 속에 다이아몬드는 있을 겁니다. 그러면 신발을 벗고 진흙 속으로 한 번 빠져봐야죠.”

하도 철학적으로 어렵게 얘길 해가지고 교수신부님이 “내 신학생 면접 이렇게 많이 해봤어도 대개는 ”왜 들어왔냐?” 그러면 “네, 거룩한 사제가 돼서 불쌍한 사람 도와주려고....” 이렇게 거룩한 말만 했데요.

그런데 동생은 첫마디가 “하느님 있는 거, 아직 못 믿겠어요. 형보고 따라 들어왔어요.”

내가 그 얘기를 듣고 해마다 이렇게 불러서 “너 지금도 하느님 있는 거 못 믿겠니?” 결국에 “하느님 있는 거 믿습니다.” 하는 말을 4학년 때 들었어요. 사베리오 신부가 4학년, 그때 물어보니까 “네, 하느님 이제 있는 거 믿어요.”

4학년 때 가서야 동생도 스스로 이제는 하느님이 계심을 믿었어요.

그래서 나를 보고 들어온 동생이기 때문에 나를 보고, 어떻게 보면 도박을 한 동생이기 때문에 큰형은 책임이 막중해요. 그치요?

동생을 봐서라도 잘살아야 돼요!


아무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커지는 것은 신학생이나 아니면 수녀원에 입회하는 사람들이나....

뭐 다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체험을 하고 들어오냐?

아니다!

이거예요.

‘다 때가 있다!’

이 얘기를 내가 설명을 하고자하는 거예요.


솔직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얼마나 많은 치유과 기적을 베푸셨어요.  기억하시죠?

뽕나무가 뿌리 채 뽑혀서 바다에 심어질 수 있는 기적을 수도 없이 보여주셨어요.

어떤 거, 에집트를 탈출시킬 때 열 가지 기적을 보여줬죠.

그 넓은 홍해바다가 반으로 갈라지는 기적을 보여줬고, 굶어죽을 때 만나를 내려줘서 먹여 살렸고, 뱀한테 물렸을 때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은 낫게 했고, 뽕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심어지는 기적 수백 가지를 보여줬는데도 불구하고 그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바알에다가 절을 하고 나무 신에다 절을 하면서 우상숭배에 빠졌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믿음을 가르치기 위해서 무려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뺑뺑이를 돌게 한 것이 아닌가!

구약은 뭡니까?

바로 본성적인 인간이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 구약성서입니다.


흔들리면서 오만 죄를 짓는 바로 구약에 나오는 그 수많은 인간의 모습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고 하는 그거를 가르치는 것이지요.

구약에 나오는 거를 보면 ‘아이구 이거 성서가 이래?’

이스라엘 백성이 어느 민족을 아주 그냥 몰살을 시키지요? 무참하게 죽이는 얘기서부터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는 다 구약성서에 나와요.

그 나오는 그 가능성이 바로 내가 다 합쳐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 뜻일 겁니다.

잘 들으세요. 구약에서는 믿음을 얻는 방법이 지극히 수동적입니다.

줘야만 받았어요.

그러나 신약에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에게 주시는 선물로 표현이 되어요.

구약에서는 하느님 쪽에서 하사품을 주시듯이 주셨지만, 신약에서는 예수님은 늘 뭐라고 그러셨느냐!

너의 믿음이 너를 살렸다!

적극적인 믿음, 능동적인 믿음을 요구하셨어요.

다시 말하면 나를 치유시키는 그 치유의 힘이 예수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성령께서 나를 치유시켜 주신다는 거였지요.


구약에서는 늘 하사하듯이 내려주셨지만.....

예수님은 한 마디도 내가 너를 치유시켜 주고 내가 니 병을 고쳐주었다는 말 한 마디도 하신 적이 없지요.

늘 너의 믿음이 너를 살렸구나! 장하다 여인아!

아니면 중풍 들린 그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 네 사람이 지붕을 벗기고 내렸을 때 그들의 믿음을 보고 그를 살려 주었다!

피정 때마다 저는 많은 교우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되는 것을 지켜봅니다.

별 거 아닌 테입 하나 가지고, 방송 하나를 듣고..... 수 십년 냉담하던 사람들이 믿음을 다시 찾는 것을 저는 봅니다.


교포들 피정 나갈 때가 많이 있지요.

그런데 참 재미난 것은 한국 사람들 피정에 놀랍게도 서양 사람들이 앉아 있어요.

‘아, 이 사람은 한국 말 잘 하나보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가서 물어보면 한국말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 앉아 있어요.

자기 부인이 한국사람여자든지 아무튼 그런 관계때문에 오는 거래요.

그 여섯 시간, 일곱 시간... 긴 피정을 뜻도 모르고 앉아 있어요

처음에는 옆에 있는 사람이 왜 웃는지 왜 우는지 모르지요.

그런데 신기해요.

나중에는 성령의 언어로 알아듣고 한국 사람이 웃을 때 같이 웃고 웃을 때 같이 웃어요.

나중에 피정 끝나면 그 서양 사람들이 blessing 해 달래요...안수해 달래요!

걔 중에는 서양사람 중에 암환자도 많이 앉아 있어요.

살고 싶으니까요!

치유하시는 신부님 한국에서 오셨다고 하니까 미국신자들이 와서 듣는 거예요! 그 여섯 시간을....

나중에 한국에 와서 들으면 “신부님, 그 때 그 미국 사람 아시지요? 세상에~~ 지금 치유 받았어요. 암덩어리가 없어졌대요!”

불치병 환자들이 많이 치유 되요.

 

 

조선족들 내가 피정하러 다닌 적 많이 있었지요.

피정하는 가운데 한족들이 앉아 있어요. 군데군데....

한국말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도 하루 종일 앉아 들어요.


여러분 같으면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그 영어 피정을 하는데 하루 종일 앉아 있을 자신 있어요?

천만에~~ 쉬운 게 아니에요

피정이 끝나면 그 중국사람들, 어떨 때는 고백성사 달래요.

내가 중국말을 압니까?

 

그래도 고백소 끌고 들어가요!

중국말루 막 뭐라고 뭐라고 해요. 자기 나름대로 고백을 하는 거야.

나는 나름대로 장단을 맞추어 줘야 돼.

“음, 어~~어 어~~”

듣는 건 예수님이 듣는 거지요, 내가 듣습니까? 그치요? 고백소 안에 주님 계시니까!

보속은 어떻게 하느냐!

아주 간단하지!

묵주 딱 들고 “이거, 응?”

“쎄쎄~~쎄세!”

다 통하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전 세계 누구에게도 다 성사 줄 수 있어요.

고개만 끄덕이고 들을 때, 다 우리 주님이 듣는 건데 거야 무슨 상관이 있어요.^^


‘믿음이 아~~이런 것이구나!’

 

생각나게 하는 분들이 많이 있죠! 사제 생활 하다보면......

아마 제 테입에도 나와 있을 겁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절두산 피정을 갔는데 아주 더운 여름이었어요.

그 성당이 워낙 적으니까 밖에까지 스크린을 놓고 피정을 하는데

앞자리에 은박지 깔고 들것에 실려서 환자들이 쫘~악 앞자리에 누워 있었지요.

그 앞에 탁자를 놓고 피정을 시키는데 내 바로 코앞에 뼈와 가죽 밖에 안 남은 자매가 배가 빵빵하고, 황달이 지나 흑달까지 와서 해골같은 자매가 앉아 있는데 자꾸 몸이 쓰러지니까 자식들이 팔 하나씩 붙들고 내 앞에 앉아 있었어요.

얼마나 몸뚱아리가 썩었는지 악취가 계속 코로 들어오는데 처음에는  얼마나 분심이 드는지.....

 ‘아니, 하필이면 왜 내 코앞에 앉아 가지고...오늘 피정 망치려고 하나!’

그러다가 곧 그 생각을 접었어요. 그 자매가 나를 쳐다보는 눈을 보니까 ‘신부님, 저 좀 살려 주세요!’

그냥 눈물이 글썽글썽해 가지고 나를 쳐다보는 애절~~한 눈을 보니까

‘아이고,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나!’

생각을 바꿔 먹고 계속 치유기도를 보냈지요.. 피정 내내....

그 자매는 성체까지, 그 오후 시간까지 버텼어요.

미사가 끝나고 앰블런스에 실려 가기 직전에 내가 안수를 해 주면서

“자매님, 오늘 하루 종일 말씀으로 죽음준비를 하셨으니 편안하게 가십시오. 오늘 다 정리가 되었을 겁니다.”

그 자매는 눈도 못 뜨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앰블런스에 실려 갔어요.


열흘이 지났는데 아침에 전화 한 통화가 옵디다.

“여보세요!”

하니까 엉엉 울기만 하면서 말을 못해요.

“자매님, 전화를 하셨으면 말을 하세요...울지만 마시고.”

“신부님, 열흘 전에 신부님 앞에서 다 죽어가는 여자 보셨어요?”

“아, 그 자매님 장례 잘 치르셨지요?”

나는 친척인줄 알았어. 장례 다 치르고 나서 보고하는 줄 알고

“신부님, 제가 그 여자예요?”

“아유~~ 아직도 안돌아 가셨어요!”
말하고 나서 ‘아이고, 실수했구나!’

그때 앰블런스에 실려 갈 때도 시체였으니까 당연히 난 죽었는줄 알았고 열흘 후에 전화가 오니까 나도 모르게 “아직도 안 돌아가셨어요?”

“네, 신부님, 이 기쁨을 신부님과 처음 나누기 위해서 전화 드렸어요!”

자기는 온 몸에 암이 번져 있었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대요.

사형선고 3개월 받고, 병원에 누워 있었는데 신부님 테입을 누가 갖다 주었대요.

‘아, 이 신부님, 한 번 봤으면....’

그러던 어느 날 서울교구 주보를 보다가 절두산성지에서 신부님 피정이 있다는 걸 보았대요.

그래서 아들한테 “나 죽어도 좋으니 그 신부님 앞에만 데려다 놔 다오.”

그래서 의사들 몰래 그냥 탈출을 해 가지고 온 거야.

저녁 때 시체가 들어가니까 의사들이 맥 짚어 보더니, 오늘 못 넘기니까 그냥 집으로 데려가라고.... 받아주지도 않더래요.

연령회에서 와 가지고 임종경 바치고, 이제 죽을 준비를 다 하고 있었대요.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3일이 지나면서부터 배가 꺼지면서 밑으로 쏟기 시작하는데 끈적끈적한 코올타르, 시커먼 걸 아주 양동이로 하나 쏟아냈대요.

3일이 지나자 배가 푹 꺼지면서 의식이 돌아오고 일어나자마자 배가 고프더래요.

며느리한테 “나 깍두기 국물에 밥 좀 비벼달라고...”

그래서 양푼이에다가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대요.

자식들은 ‘아, 사람은 죽기 전에 밥 한 양푼이를 먹나보다!’

이 자매님은 ‘뭔가 나에게 뭔가 변화가 왔다!’

큰 아들한테 “나 병원 좀 데려가서 검사를 좀 해 다오.”

그 전에 있던 병원에 과장이 큰 아들 친구라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4일 있다가 큰 아들 손잡고 과장실에 들어갔더니 의사들 여러 명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더래요.

너무너무 신기한 사람을 구경하려고....

그 과장 얘기가 “어머니, 의사 생활 30년 했지만 분명히 이 필름이 바뀔리는 없는데, 분명히 이 필름도 열흘 전에 자매님의 필름이고, 며칠 전에 필름인데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어머니 내장은 30대의 젊은 사람의 내장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암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거는 아무튼 설명이 안 됩니다.”

 

 

완치 판정 선고를 했고 제일 먼저 나와서 나한테 전화한 거예요.

신부님한테 알려야 된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저도 너무너무 감격스러워가지고 “자매님의 믿음이 자매님을 살린 겁니다. 그 몸뚱아리를 해 가지고 하루 종일, 몸이 성한 사람도 그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6시간을 앉아 있기가 힘든데.... 그 주님 말씀 들으면서 죽음을 준비한 그 믿음이 ‘신부님 한 번 만 보면 소원이 없다!’ 바로 그 믿음이 자매님을 살린 겁니다.


그 자매는 몸을 추스르고, 머리카락도 다 나고, 제일 먼저 연령회에 들었고,  연령회 가운데서도 시체를 염하는 일을 한 대요.

그 전에는 그 자매는 동네에서 별명이 공주였대요.

그러나 다시 살아난 후에 ‘이제부터 내 삶은 내 삶이 아니다!’

시체를 떡 주무르듯이...얼마나 열심히....하루에 기도하는 시간이 5~6시간, 지금도 몇 달에 한 번씩 저한테 내려 와서 순례미사하고, 고백성사하고....

믿음의 신비라고 하는 것은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뽕나무가 뿌리 채 뽑혀서 바다에 심어져라 해도 그대로 된다!>

오늘 성체를 영하면서, 예수님 옷자락 잡는 마음으로...

예수님 발치에 앉아 있는 치유 받은 그 여인처럼....

여러분들이 사제들에게 안수를 청할 때마다, 예수님의 손이 안수한다고 믿으면서 안수를 받을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오늘 이 미사 중에 말씀으로 오시고 성체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쁘게 영접하면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 나도록 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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