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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비를 바라시는 예수님/신앙의 해[226]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05 조회수466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림 : [신리] 야외 십자가

세리 마태오는 세금을 거둬들이는 이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제법 부유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하느님께 죄송스럽고
동족에게는 미안함이 있었을 게다. 왜냐하면,
그는 로마에 빌붙어서 가난한 이의 세금을 거두어 일부를 로마에 바치는 데 썼기에.
그래서 주위에서는 그를 로마의 앞잡이라면서 함께 해 주질 않았다.
그는 재산은 넉넉했지만 언제나 사회에서는 소외받는 외톨이였다.

예수님이 어느 날 ‘나를 따라라.’라며 마태오를 불렀다.
지금껏 자신에게 그렇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가온 사람은 없었기에
그는 귀를 의심했다.
마태오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과 그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잔치를 베풀었다.
주위의 다른 세리들과 죄인들도 물론 한 참에 불러 모았다.
그는 그길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은 이렇게 반대자들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라고 당신 사명을 분명히 밝히신다. 
 

자비, 자비는 과연 무얼까? 하느님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 좋은 행동이란다.
그러나 타고난 자비심은 없다. 자비는 노력과 희생의 결과일 게다.
참을 줄 알아야만 자비를 베풀 수 있다.
비웃음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참된 자비가 없다.
오히려 조금 더 가졌다고, 하나 더 안다고 거들먹거린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사람을 우습게 여긴다. 이래서야 어찌 자비를 깨달을 수 있을지?

바리사이들은 세리 마태오를 가소롭게 여겼다.
하물며 그들은 예수님마저 역시나 하며 하찮게 여겼으리라.
사실 하찮은 이는 이 세상에 없다.
내가 그렇게 여기면 그 역시 나를 그렇게 대할 테니까.
‘자리가 사람을 빛나게 한다.’는 말도 있지만 때로는 ‘아니 앉음’만도 못하다.
들썩 앉았다가 자신도 망가지고 공동체도 멍들게 한다.
부족한 이를 ‘챙겨주는 이’가 정녕 자비로운 이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챙겨 주는 이가 진정한 자비로운 자이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가 새겨야 할 묵상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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