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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안에서의 삶" - 9.14,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14 조회수511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9.14 주일 한가위                                
요엘2,22-24.26ㄱㄴㄷ 요한묵14,13-16 루카12,15-21

            
                                         
 
 
"하느님 안에서의 삶"
 


자주 듣는 이야기지만
오늘 말씀 묵상과 관련되어
어제 어느 수녀님의 말이 새삼스런 깨달음이었습니다.

“잠시 불암사에 갔다가 수도원 정문 안에 들어서니
  성모자상과 더불어 완전히 딴 세상 같았어요.
  수도원 밖 세상은 수도원 안에서와 같은 안정과 평화가 없어요.
  수도원에 들어오니 참 편안해요.”

이래서 세상살이에 고달픈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찾아 수도원에 옵니다.
 
‘수도원 안’ 장소가 상징하는바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안’입니다.
 
수도원 안에 있을 때 안정과 평화이듯,
언제 어디에서든 ‘하느님 안’에 있을 때 안정과 평화입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롭다는 것, 바로 하느님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과연 여러분에게는 안정과 평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 안에서 안정과 평화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모든 탐욕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부유하다고 행복한 것도, 활력 넘치는 것도, 지혜로운 것도 아닙니다.
 
돈이 전부인 것 같지만 돈 갖고 못하는 것도 많습니다.
아무리 거액의 돈을 줘도
행복을, 건강을, 생명을, 사랑을, 믿음을, 희망을 살 수 없습니다.

이런 참 보물들 없어 돈 많아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 많을 것입니다.
끝없는 탐욕에 노예 되면 그 인생 곧 중독에 폐인입니다.
 
탐욕에 눈멀면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못 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가 바로 그러합니다.

“자,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자.”

곳간에 곡식과 재물을 가득 쌓아놓고
내심 흡족해 하는 어리석은 부자에게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이보다 허망하고 어리석은 삶도 없겠지만,
오늘 날도 많은 부자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끝없는 탐욕, 말 그대로 탐욕의 블랙홀이요,
이 탐욕의 블랙홀은 세상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 탐욕의 블랙홀에 빠져들 때 그대로 지옥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참으로 부유하지 못했던 어리석은 부자였습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깨어 탐욕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을 때,
탐욕이 우리 눈을 가리지 않을 때,
하여 무욕(無慾)의 사람이 될 때
비로소 하느님 안에서 안정과 평화에 지혜로운 삶입니다.


둘째, 자주 죽음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떠오르는 아침 태양에 밤의 어둠과 안개 걷히듯,
자주 죽음을 생각할 때
환상과 탐욕의 어둠과 안개는 걷히고 삶의 본질만 남습니다.
 
또 이런 죽음 있어 삶이 선물임을 자각합니다.
영원히 계속되는 삶이라면 삶은 선물이라는 자각도,
선물인생에 대한 감사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
죽음을 늘 눈앞에 두고 살았더라면
결코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어리석은 부자는
이 무서운 꿈을 꾸고 난 후 회개하여
곳간의 곡식과 재물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눔으로
하느님 앞에 부유하고 지혜로운 삶을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자주 생각할 때 저절로 본질적인 삶에 충실한 지혜로운 삶입니다.
결코 부수적인 것들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매일, 남은 세월에 영적손익을 계산하며 시간을 소중하게 보낼 것입니다.
지인들이나 친지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서
멀리 있는 죽음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는 죽음임을 깨닫지 않습니까?
 
요한 사도가 하늘로부터 들은 목소리입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이 행복하다.”

주님을 믿다가,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 밖에서
준비 없는 불쌍한 죽음을 맞이하는 지요.
 
정말 주님 안에서 잘 살다가 잘 죽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이어 들려오는 성령의 말씀입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사실 하느님 앞에서 영적 부자였던 성인들에겐
죽어야 비로소 휴식이었습니다.
 
우리 수도자들, 힘껏 하루를 살고 피곤한 몸으로 끝기도를 마치고
다음 강복을 받을 때
어렴풋이나마 죽음이 주님 안에서 휴식임을 깨닫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제가 참 좋아하는 위로와 평화를 주는 강복입니다.
 
자주 죽음을, 거룩한 죽음을 묵상할 때  
하느님 안에서 안정과 평화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셋째, 즐겁고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죽음 있어 삶이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생인지요.
 
이렇게 하느님께 선물로 받은 인생을 함부로 사용한다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세계 1위라 합니다.
하루 평균33.3명이 자살한다 하니 얼마나 살기 힘든 세상인지요.
 
아무리 힘들어도 자살만은 피해야 합니다.
혼자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주변 친지들이
평생 이 죽음의 짐과 상처를 지니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받은 선물인생 어떻게든 살아내야 합니다.

선물인생이라는 자각에서 샘솟는 기쁨이요 행복이요 찬양입니다.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살아있다는 자체가
감사요 기쁨이요 행복이요 구원입니다.
 
잘 살고 못 살고의 차이는 하느님 눈에는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험하고 힘든 세상 살았다는 자체가 보속이요 구원입니다.
 
그러니 요엘 예언자의 말씀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환경 좋아서 즐겁고 기쁘기로 한다면
결코 그런 좋은 환경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즐겁고 기쁘게 사십시오.
 
이런 이가 정말 살 줄 아는 자요 주님께서도 축복을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기쁘게 살 때,
비로소 하느님 안에서 안정과 평화의 삶입니다.

탐욕에 빠지지 않아야,

죽음을 늘 눈앞에 두고 깨어 살아야,

또 즐겁고 기쁘게 살아야

하느님 안에서 안정과 평화의 삶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탐욕을 말끔히 비운
가난하고 겸손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모시는 복된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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