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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혼, 육신, 공동체"- 9.12,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13 조회수501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9.12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1코린9,16-19.22ㄴ-27 루카6,39-42

                                                        
 
 
 
"영혼, 육신, 공동체"
 


강물같이, 쏜 살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삼사십에 이어 곧 오십 육십 칠십입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세월입니다.
 
젊고 힘 있고 건강할 때 사는 것은 재미있고 쉬워도,
늙고 힘없고 병약할 때 사는 것은 참 재미없고 힘듭니다.
 
그러니 잘 늙고 잘 죽는 것보다
힘들고 중요한 것은, 복된 것은 없습니다.
 
어제 마침 노인요양병원에서  
봉사했던 어느 자매님의 말이 충격이었습니다.

“치매노인들을 돌보는 것은 똥과의 전쟁이라 합니다.
  천주교를 믿는 노인들은 그래도 깨끗하고 예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노인들은 본능만 남은 짐승과 같습니다.
  신앙을 지니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기도 말씀대로 주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없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살면서도
마음은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비로소 사람입니다.
 
하느님계신 곳이 천국이요,
하느님 계시지 않은 곳이 지옥입니다.
 
아니 하느님을 향해 살 때 천국이요,
하느님을 등지고 살 때 지옥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할 때는 하느님의 자녀이지만
하느님 없이 사는 막가파 인생에 남는 것은
본능적 욕망의 짐승일 뿐입니다.

영혼의 끈인 하느님을 꼭 잡고 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영혼이요 하느님입니다.

영혼의 끈 하느님을 붙잡아야 튼튼한 영혼입니다.
 
영혼이 무너져 삶의 중심,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면
몸 무너지는 건 순간입니다.
 
영혼이 주인 노릇을 못하면 즉시 반란을 일으키는 육신입니다.
육신의 요구 들어주다보면 끝이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 영적 전쟁터에서
복음의 끈, 믿음의 끈, 영혼의 끈,
하느님 꼭 붙잡고 살아야 영적전쟁에 승리요
몸과 마음 망가지지 않습니다.
 
바오로의 복음의 끈은 얼마나 튼튼한지요.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복음의 끈, 믿음의 끈, 영혼의 끈인 하느님을 평생 꼭 붙잡고 살아야
하느님 자녀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잘 늙고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육신을 절제하고 단련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게
하나 뿐인 이 내 몸입니다.
 
영혼의 집이자 하느님의 성전인 거룩한 육신입니다.
 
영혼단련은 물론 육신단련의 필요성은 운동선수들을 봐도 분명합니다.
 
믿는 우리들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자들과 같습니다.
바오로의 충고가 참 고맙고 반갑습니다.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대로 오늘의 우리에게도 공감이 가는 말씀이 아닙니까?

평생,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으며,
육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육신을 단련해야 잘 늙고 잘 죽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은 공동마라톤경주와 같습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소중한 게 몸에 이어 공동체입니다.
 
영혼이 머물고 있는 몸이요, 몸이 머물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혼자 삶이 아니라 더불어 삶입니다.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는 것이
공동체 평화의 지름길입니다.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지 못하고
형제들의 약점을 지적하거나 고치려하기에,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려 하기에
조성되는 긴장과 불화입니다.
 
약한 인간입니다.
자칫하다보면 녹을 지우려다 그릇을 깨는 우(愚)를 범할 수 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형제의 눈 속에 티가 아닌 내 눈의 들보에 주목할 때,
네 탓이 아닌 내 탓에 눈길을 돌릴 때 비로소 평화로운 공동체입니다.
 
이런 공동체내에서의 삶일 때 잘 늙고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영혼, 육신, 공동체 가장 가까우면서도 소중한,
또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요소들입니다.
 
부단히 돌보고 가꾸고 단련해야 하는 영혼, 육신이요 공동체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은 당신의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공동체를 튼튼히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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