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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체험" - 12.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09 조회수465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09.12.9 대림 제2주간 수요일
                                                        
40,25-31 마태11,28-30

                                                              
 
 
 
 
"하느님 체험"
 
 


하느님은 누구입니까?

하느님을 알아야 나를 알 수 있고
나를 알아야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 탐구와 나의 탐구는 함께 가며 우리의 평생 과제입니다.
 
하여 우리 수도승을 정의하여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라 합니다.
 
하느님에 관한 여러 성경 구절들이 떠오릅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내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시편63,1).
“하느님, 생명을 주시는 나의 하느님, 당신이 그리워 목이 탑니다.
  언제나 임계신데 이르러 당신의 얼굴을 뵈오리이까?”(시편42,2).
마음 깊이 하느님을 목말라하는 인간이요,
하느님을 찾는 인간이요,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인간입니다.
 
이게 인간의 정의입니다.
 
하느님으로 채워야 온전한 인간, 온전한 행복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열정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요, 살아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열정 사라지면서 서서히 시들어가는 영혼입니다.
“내 마음은 하느님 안에서 기뻐 춤추며,
  나의 힘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높여지는 도다.”(사무 상2,2).

진정한 기쁨, 내적 힘은 하느님에게서 나옴을 깨닫습니다.
 
다음 이사야서 말씀도 어려움에 처한 자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두려워마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 내가 도와준다.
  정의의 오른 팔로 너를 붙들어 준다.”(이사41,10).

무려 성경에 ‘두려워마라'는 말마디는 365번 나옵니다.
 
1년 365일
매일 우리에게 ‘두려워마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말씀 하시며
우리를 격려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 곁에 계신 하느님을 어떻게 체험하여 깨닫느냐가 문제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복되다. 주님께 몸을 숨기는 사람이여!”

하느님 맛을 알 때 저절로 세상 맛, 돈 맛도 잃게 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이탈과 초연의 자유에
영적고공비행의 여정을 가능케 하는 하느님 맛입니다.
아침독서 시 묵시록의 말씀도 참 은혜로웠습니다.
지금 여기서 앞당겨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 주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21,3-4).

전통적으로 하느님의 집이라 일컫는
수도원에 사는 모든 수도승들이 앞당겨 살아야 할 현실입니다.
 
사실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은
매일의 미사를 통해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고통과 슬픔도 치유해 주시며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바꿔주십니다.
 
그 어디에서 보다도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며 맛볼 수 있는 은혜 가득한 성체성사입니다.

성 베네딕도의 하느님 체험도 참 의미하는바가 깊습니다.
어느 날 밤 성인은
온 세상이 태양의 한 줄기 빛 아래 모아져서
그분 눈앞으로 몰려오는 체험을 합니다.
 
이 하느님 체험에 대한 그레고리오 교황의 설명이 참 심오합니다.
 
“창조주를 뵙는 영혼에게는 온 세상이 작아진다.
  비록 영혼이 창조주의 빛을 그금만 보더라도
  창조된 모든 것은 그 영혼에게 축소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의 능력은 내적 관상의 빛 안에서 커지게 되며,
  세상을 초월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뵙는 영혼도 자기 자신을 초월하게 된다.
  영혼이 하느님의 빛 안에서 자신 위로 이끌려 올라갈 때
  내적으로 확대되며,
  자기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래에 있었을 때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얼마나 작은 지를 깨닫게 된다.”

진정 하느님을 체험할 때 넓어지고 깊어지고 높아지는 마음임을 깨닫습니다.
 
전에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되던 것들이 참으로 작고 시시하게 생각 됩니다.
 
말 그대로 영적고공비행의 삶입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커보이던 시골 마을이나 집이나 방이
어른이 되어 찾았을 때 얼마나 작아 보이던 지요.
 
하느님 체험으로 마음이 넓어지고 높아지고 깊어지면
그렇게 크고 좋게 보이던 세상의 부귀영화가
다 그렇게 작고 시시하게 보일 것입니다.
오늘 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는
바빌론에 포로 생활 중에 하느님을 잃어버려
낙심으로 무너져있는 백성들을 하느님을 믿고 일어서라 격려합니다.
 
눈을 높이 들고 하늘의 별들을 보며 누가 창조했는지 생각해 보라하십니다.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다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렸다’고
하느님 원망하지 말고
잊어버린 하느님을 찾으라 격려하는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마치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 같습니다.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 없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이사40,28-29).
바로 이게 하느님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런 좋으신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매일 생명의 미사 잔치에 초대해 주십니다.
 
세상사에 지친 우리들을,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초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9).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을 찾는 이들,
아마 내면에서 이런 주님의 초대 말씀을 듣고
방문하여 미사에 참여할 것입니다.
 
주님의 다음 말씀도 얼마나 큰 위로요 힘인지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베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11,29-30).
매일 좋으신 주님은
미사축제에 우리를 초대하시어
당신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 평화를 누리게 하시며,
우리의 불편한 멍에는 당신의 편한 멍에로,
우리의 무거운 짐은 당신의 가벼운 짐으로 바꿔주십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할 줄 모른다.”(이사40,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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