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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얼마 안 남았네!” - 3.2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28 조회수465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3.28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이사50,4-7 필리2,8-11 루카22,14-23,56

 

 

 

 

 

“얼마 안 남았네!”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강물 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빛과 어둠이,

기쁨과 슬픔이,

희망과 기쁨이,

평화와 불안이 리듬처럼 교차하면서 흐르는 세월입니다.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이 빛이라면

주님의 수난복음은 어둠입니다.

 

어제 휴게 시간의 대화 도중

제가 한 말이 새삼스런 깨달음이었습니다.

 

“얼마 안 남았네!”

 

수도원 경내 가까이 있는 배 밭 일부를 정원으로 만들기 위해

정원수가 될 만한 나무들을 구입했습니다.

 

수도형제들이 각자 원하는,

관심을 갖고 돌볼 수 있는 나무 이름을 써냈고,

저는 별로 아는 나무가 없어 좋아하는 ‘소나무’ 이름을 써냈습니다.

 

“원장 수사님, 원하는 소나무 200그루를 사왔습니다.”

 

한 그루가 아닌 200그루,

그러나 순간 잘 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30년 돌보면 많이 크겠지요.”

 

말하고 나서 즉시

제 나이에 30을 보태 봤더니 92세였고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 와서 순식간에 22년이 지났는데 30년도 곧 지날 것이고,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고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이 ‘얼마 안 남았네!’였습니다.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정신에 번쩍 들었고,

순간 긴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짐을 풀었을 때의 홀가분함을,

마음의 경쾌함을 느꼈습니다.

 

한번 넉넉잡고 90에서 자기 나이를 빼보셔요.

바로 이게 살날입니다.

 

40대에 접어들면 반환점을 돈 셈이자 서서히 내리막길이요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에 곧장 손님처럼 찾아오는 죽음입니다.

 

서서히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죽음의 시련과 고통을 통해 들어나는 쌓아 온 내공의 실력입니다.

 

마지막 최종 시험 죽음 앞에 벼락치기 공부는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본보기로 삼아 평생 공부하는 것이

최고의 죽음 시험 준비 공부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기도와 섬김의 삶을 배우는 것이 최고의 죽음 준비입니다.

 

 

“너희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

 

섬김의 삶보다 더 좋은 죽음 준비의 삶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평생 삶의 요약이 ‘섬김’입니다.

지극 정성으로 하느님을 섬겼고 풀뿌리 민초들을 섬겼습니다.

 

우리에게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 하나뿐이요,

영성이 있다면 ‘섬김의 영성’ 하나뿐입니다.

 

우리 사부 베네딕도 성인 역시

수도원을 ‘주님을 섬기는 학원’으로 정의합니다.

공동전례기도를 통해,

또 형제들을 섬김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 전력하는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입니다.

 

이래야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섬김의 삶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셔요.

 

예수님의 고립무원의 처지가 너무 외롭고 고독해 보입니다.

완전히 혼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시 환호하던 군중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폭도로 돌변했고,

십자가 옆의 죄수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조롱했고,

고뇌에 싸여 간절히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모두 잠들었고,

세 번 이나 변심하지 않으리라 맹세했던 베드로도

그 맹세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의 세 번째 부인 후

베드로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잊혀 지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하는 순간에 닭이 울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연민 가득한 주님의 눈길을 주체할 수 없어

밖으로 나가 슬피 운 베드로였습니다.

 

평소 섬김의 삶에 충실하였기에

이런 고립무원의 처지에서도

주님은 흔들리지 않고 의연할 수 있으셨습니다.

 

이런 부정적 인간 모습들만 있는 게 아니라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인들,

주님의 십자가를 져 준 시몬,

예수님의 임종 모습을 지켜보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백인대장,

예수님의 시신을 곱게 모신 착하고 의로운 요셉의 모습도 있어

다소 마음 밝고 따뜻해지는 느낌입니다.

 

과연 이 주님의 수난 현장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까요?

 

 

섬김의 삶에 항구할 수 있는 비결은 기도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은 단연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를 통한 하느님 아버지와의 깊은 친교가

외롭고 고독한 수난 현장에서도

유혹에 빠지지 않고 흔들림 없이 하느님의 길을 가게 했습니다.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세상 유혹 한 복판에 살고 있는 우리들,

기도하지 않으면 악마의 무수한 유혹에서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다음 수난 복음의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평생 삶과 쌓아 온 내공의 깊이가 잘 들어나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평생 화두로 삼아 묵상하고 배워야 할 위의 주님의 기도입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

이런 예수님에게서 1독서 이사야서의 고난 받는 종을 발견했고,

하느님의 자기 비움을 체험했으며

이의 감동적인 고백이 바로 2독서 필리비 찬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죽음은 평생 삶의 요약입니다.

 

기도해야 섬김의 삶에 충실할 수 있고

아름다운 선종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사실 기도와 섬김의 삶에 항구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죽음 준비도 없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우리 모두 기도와 섬김의 항구하게 하십니다.

 

백령도 인근에서 초계함 침몰로 실종된

46명의 군인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주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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