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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제243 - 248항)
작성자장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9 조회수517 추천수3 반대(0) 신고
 

4. 강생의 신비에 대한 특별한 신심


243. 

그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 거룩한 노예들은 말씀 강생의 위대한 신비(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에 대해 특별한 신심을 가져야만 한다. 

실로 말씀의 강생은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 신심에 가장 들어맞는 신비인데 그것은 이 신심이 성령에 의해 고취되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기꺼이 마리아께 속해 있기를 원하신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예속을 공경하고 본받기 위함인데 그 예속은 특히 예수께서 마리아의 가슴에서 사랑스런 포로이며 노예로서 있었던 것과 예수께서 모든 것을 마리아께 의존했던 이 신비에서 드러난다. 


둘째로는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베푸신 비할 데 없는 은총들에 대하여, 그리고 특히 마리아를 그분의 지극히 거룩한 어머니로 선택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때의 선택은 이 신비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이 마리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지닐 두 가지의 근본적인 목적이다.

 


244. 

내가 "마리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마리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예속"이라고 말한 것에 주의해 주기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앞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나도 "마리아의 노예", "거룩한 동정녀께의 예속"이라고 말하겠다.  하지만 보기 드문 분별력과 완전한 신심으로 유명하신 성 술피스 신학교의 총장 트롱송 신부님이 이 문제로 그에게 의견을 구하는 이들에게 권했던 것처럼 "마리아 안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245. 

첫째, 우리는 지적인 자만심이 높은 시대에 살고 있으며 우리들 주변에는 콧대 높은 학자들과 자유 사상가와 비평가들이 많이 있으므로 그들에게 쓸데없는 비판의 기회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낫겠다. 

그래서 이 신심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요 수단인 마리아로부터 이 신심의 명칭을 취하기보다는 최종 목적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 신심의 명칭을 취하여 우리는 "마리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의 예속"이라고 말하며, 우리 자신을 마리아의 노예라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부르는 것이 낫겠다. 

내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비록 실제에 있어서는 그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지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앙브와제의 길로 가고 있다거나 또는 투르로 간다고 할 때, 그는 앙브와제로 가고 있다거나 또는 투르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혹은 그는 앙브와제에 가는 여행자이다.  투르로 가는 여행자이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표현들에 있어 앙브와제는 단지 투르로 가는 직선길일 뿐이며 그의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투르라는 차이점이 있다.

 


246.

둘째 이유는, 우리가 이 신심으로써 찬양하고 공경하는 근본적인 신비는 강생의 신비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오로지 마리아 안에서 예수를 볼 수 있으며 마리아의 가슴에 있는 예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 마리아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님, 저희 안에 오셔서 당신 거룩함의 정신으로 사시옵소서"와 같은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기도에서 볼 수 있듯이 마리아 안에 자리 잡으시고 마리아 안에 군림하시는 예수님, 마리아 안에서의 예수님의 예속에 관하여 말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247. 

또 다른 이유는 이러한 방법이 예수님과 마리아 사이의 긴밀한 일치를 더욱 강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마리아께서는 매우 긴밀하게 일치되어 있기에 예수께서는 마리아 안에 계시고 마리아께서는 예수님 안에 계신다고 할 수 있으며, 또는 마리아는 더 이상 존재치 않으며 마리아 안에는 예수님 홀로 계신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마리아를 떼어놓기보다는 태양으로부터 빛을 분리하는 것이 더 쉽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마리아의 예수", 마리아를 "예수의 마리아"라고 부르게 된다.



248. 

마리아 안에서 사시고 군림하시는 예수의 신비, 즉 말씀의 강생의 신비의 훌륭함과 위대함을 설명하려니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단지 이러한 짧은 말로써 만족하려 한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신비, 즉 가장 감추어져 있고, 가장 고결하고, 가장 덜 알려진 그 신비에 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예수께서 마리아와 일치하여 "하느님의 비밀의 방"(성 암브로시오)이라고 불리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모든 선택된 사람들을 부른 것은 바로 이 신비 안에서이다. 

예수께서 "그는 세상에 들어오면서 '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히브 10, 5 - 9) 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그분이 만드시고 받아들인 그분의 일생의 모든 다른 신비들을 행하신 것은 바로 이 신비 안에서이다.

 


그러므로 이 신비는 다른 모든 신비들의 요약이며 모든 이들의 의지와 은총을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신비는 하느님의 자비와 자유와 영광의 옥좌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는 예수께 말씀드릴 수 없고 그분을 볼 수 없기에 이 신비는 우리에게 있어 하느님의 자비의 옥좌가 된다.  어머니의 말씀에 항상 귀기울이시는 예수께서는 당신의 은총과 자비를 불쌍한 죄인들에게 주신다.  "그러므로 신뢰를 가지고 은총의 옥좌로 나아갑시다"(히브 4, 16). 


새 아담이 이 참된 지상낙원에 거하시는 동안에 천사들도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비밀스런 기적들을 행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마리아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의 옥좌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마치 하느님께서 단지 마리아 안에서만 관후하신 것처럼(이사 33, 21 참조) 모든 성인들이 마리아를 '하느님의 관후'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신비는 아버지 하느님께 그분 영광의 옥좌가 되시는데,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 대하여 분노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잠잠케 하신 것은 마리아 안에서이고, 사람들이 지은 죄악들이 그분으로부터 빼앗아 갔던 영광을 보상하신 것도 마리아 안에서이며, 예수께서 당신의 의지와 당신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사람들로부터는 결코 받지 못하셨던 무한한 영광을, 구약의 희생 제사가 드렸던 것보다 더 큰 영광을 아버지 하느님께 드린 것도 마리아 안에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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