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9월 9일 야곱의 우물- 루카 6, 12-19 묵상/ 사도들을 기다리는 군중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9 조회수524 추천수2 반대(0) 신고
사도들을 기다리는 군중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주었기 때문이다.
(루카 6,12-­19)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뽑으시기 전 밤을 새워 기도하셨는데, 그만큼 ‘사도들’의 직무가 중요했음을 말해 준다. 그들의 직무는 왜 중요한가? 바로 그들을 기다리는 ‘군중’, 곧 ‘길 잃은 양들’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는 누구보다도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도들의 직무와 권위가 존중받는 것은 이들의 손길과 발걸음이 미치고 있는 이름 없는 군중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군중에게 파견되고 있는 사도들의 수는 넉넉한가?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선정하시고 나서도 여전히 ‘목자 없는 양들처럼 기가 꺾여 있는 군중’을 보시고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수확할 밭의 주인에게 일꾼들을 보내달라는 청을 하신 바 있다. 그리고 이런 당부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신학전문대학원에는 연륜도 지긋하고 덕망도 높은 어른들이 수도자나 젊은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신학을 배우고 있다. 이분들의 신앙의 열정과 진지함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이런 분들에게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목자의 권위를 부여하고 수확할 밭의 일꾼으로 파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이러한 시도에서 생기는 부작용이나 교회 내적 진통을 미리 염려하면서 ‘평신도 사도’라는 개념에 난색을 표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사실상 평신도 사도들에 의해서 시작되지 않았는가? 충분한 연륜과 경험, 인간적 재능과 신앙의 덕목을 두루 갖춘 분들이 하느님을 갈망하는 군중에게 다가가 예수님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이러한 비전은 다른 가상적인 어려움을 이겨낼 만큼 무게 있게 느껴진다.
 
‘사도들을 기다리는 군중’을 먼저 생각한다면, 밤을 새우고 숙고하신 예수님처럼 우리 교회도 더 많은 사도들을 뽑을 방도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종진 신부(예수회)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