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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운명적인 관계 - 1.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02 조회수46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2.1.2 월요일 성 대 바실리오(330-379)와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330-390) 주교학자 기념일자 기념일

 

1요한 2,22-28 요한1,19-28

 

 

 

 





운명적인 관계

 

 

 

 




주님과 요한 세례자는 운명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오늘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성 바실리오와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 역시

주님 안에서 절친(切親)의 운명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리 역시 주님과의 운명적인 관계에 있으며

주님 안에서 운명적인 도반들로 수도원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운명적인 만남, 운명적인 관계에 관한 묵상을 나눕니다.

 


얼마 전 읽은 노자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

즉 ‘하늘 그물이 성긴 듯해도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늘에 죄를 짓고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입니다만


저는 성소와 관련하여 자주 묵상합니다.

아무리 봐도 달아 날 곳이 없는

주님 안에서 삶이 나의 성소라는 자각입니다.


하느님 그물을 빠져 나갈 수 없는 불림 받는 이들의 운명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시편 139장의 두 구절입니다.

 

“당신의 얼을 떠나 어디로 가오리까.

당신 얼굴 피해갈 곳 어디오리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는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이런 자각이

지금 여기를 충실히 살게 하며 주님과의 운명적인 관계를 깊게 합니다.


주님은 세례자 요한의 운명이듯이 우리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누구요?”

 

세례자 요한뿐 아니라 우리를 향한 물음입니다.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예언자도 아닌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주님의 증언자로 자기의 신원을 밝히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이 없는 세례자 요한을 상상할 수 없듯이

주님이 없는 우리들 또한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이런 주님과의 운명적인 관계가 우리의 성소이자 신원입니다.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는다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요 죽어도 주님의 것이라는

사도 바오로 고백 역시 주님과 하나 된 그의 운명을, 성소를 밝혀 줍니다.


주님의 애제자인 사도 요한 역시 주님이 그의 운명이었음을 봅니다.

 

“그 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연거푸 세 번이나 자신처럼 주님 안에 머물러 살라는

요한 사도의 간곡한 권고입니다.


주님 안에 정주(定住)하면서 주님과의 관계를 깊이 하는 것만이

정체성 확립의 지름길이자 우리의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님께서는 성령의 기름 바름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바로 매일의 미사은총입니다.

기름 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니

주님 안에 머물 때 영원한 생명이요 진실하고 거짓 없는 삶입니다.

 


이래야 우리는 주님이 나타나실 때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내림(來臨)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의 운명이신 주님은

당신 안에 머물러 정성껏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모든 것을 가르쳐 깨닫게 하시며

당신과의 관계를 깊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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