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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08 조회수511 추천수4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 - 윤경재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마태 1,16-17)



  오늘 9월 8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보면 성모 마리아에 관한 기사가 여러 군데에서 나옵니다. 맨 처음 기술된 것으로는 갈라디아서 4장 4절입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생전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초점을 부활하신 예수님을 선포하는 데에 맞추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인간을 구원하시러 오셨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의 어리석음을 통해 부활하셨으며 그것이 모든 것을 확증한다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를 낳은 한 여인으로 기술될 뿐이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구세사의 연결고리에서 예수님께 도달하는 마지막 매듭을 장식하는 중요한 인물로 그렸습니다. 남성으로 연결된 구세사에서 마리아라는 여인을 언급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까 염려하여 다말, 라합, 룻, 바쎄바 등 네 명의 여인들을 함께 기술하였습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주님의 모친을 그린 화가’라는 별칭에 걸맞게 성모 마리아가 등장하는 삽화를 여러 개 삽입하였습니다. 특히 예수님 탄생 예고 이야기는 루카 신학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차지합니다. 루카저자는 성모님을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신 분으로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의 모범이며 교회 공동체의 원형으로 묘사합니다. 특히 루카저자는 마리아를 깊이 사색하는 인물로 묘사하거나, 깊은 신앙심과 발생한 사건을 겸손하게 관찰하는 한 인격체로 묘사합니다.(루카 1,38. 2,19. 2,52.)


  요한 복음서에서는 더욱 상징적으로 묘사됩니다. 요한저자는 성모님을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과 마지막을 열고 닫아 주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구세사에서 핵심 되는 예수님을 낳으셨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뛰어난 어머니로서 이미지에 부합하며 실제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예수님께서는 어머님께 모든 제자의 대표인 요한을 돌보아 주시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요한을 비롯하여 제자들은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모시고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저는 성서 못자리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 봉사를 할 때 자주 질문받는 대목이 있습니다. 성모님과 관련된 대목입니다.


  루카복음 1장 34절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와 1장 18절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는 대목입니다.


  이 두 구절을 보면 두 분 모두 천사에게 ‘어떻게’라는 의문사로 시작하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즈카르야는 천사에게 불신을 지적당하고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벙어리가 되는 벌을 받게 되었으나, 마리아에게는 천사가 엘리사벳의 예를 들어가며 친절한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 두 결과를 보면 어떤 의문이 생긴다는 질문입니다. 또 마리아가 신앙인의 표본으로 존경을 받게 되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응답을 하게 된 것도 이렇게 천사가 설명한 결과가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문맥을 잘 살펴보면 천사에게 반문하는 속마음이 서로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는 즈카르야의 질문은 어떻게 자기가 알 수 있겠습니까하고 확증을 요구하는 태도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원인과 결과를 알려달라는 질문입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게 합당한 논리로 증명하라는 요구입니다. 거기다가 합리적으로 볼 때 전혀 가능성이 없지 않으냐는 이유를 들이대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비해서 마리아의 의문은 놀라움을 나타내는 경이의 표현입니다. 어떻게 그런 놀라운 일이 자기 같은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자격이 안 된다는 말도 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주 하느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에게 열려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바로 성모님의 태도입니다. 어떤 사건을 경이로 바라볼 줄 아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자신에게서 벌어진다는 것에 겸손함을 나타내는 자세입니다.


  어른이 되면 새로움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 적 호기심과 경이를 잃어버리고 순수 대신에 논리와 합리만을 따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경지가 엄연히 존재하고 그 경지가 더 중요한대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스승이 오랫동안 가르쳐온 제자들에게 마지막 수업을 하러 들판에 나갔습니다. 빙 둘러앉은 제자들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들판에는 잡초가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이 잡초를 없앨 수 있겠느냐?”


  제자들은 학식이 뛰어났으나 한 번도 이 점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건성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삽으로 땅을 갈아엎으면 됩니다.”

“불로 태워버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뿌리째 뽑아버리면 됩니다.”


  스승은 머리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수업이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서 말한 대로 마음속의 잡초를 없애 보아라. 만약 잡초를 없애지 못했다면 일 년 뒤에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자.”


  일 년 뒤에 제자들은 마음속에서 무성하게 자란 잡초 때문에 고민하다가 다시 그곳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잡초가 무성했던 들판이 곡식이 가득한 밭으로 변하였습니다. 스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마지막 스승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우리도 마음속에서 갖가지 의심과 불신이 싹틀 수 있습니다. 신앙은 마음의 밭에 잡초를 없애고자 선한 곡식을 심어 가꾸는 일입니다. 제때에 열심히 씨 뿌리고 땀 내어 가꾸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햇볕과 땅과 물과 공기를 통해서 우리도 모르는 새에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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